둘레길

강화나들길 15코스. 고려궁성곽길

자어즐 2022. 11. 12. 21:52

어제저녁, 내일 비가 예보되어 있지만 오후 6시에 온다고 해서, 나 홀로 강화나들길 15코스 갈려고 마음 먹고 김여사의 의도를 떠본다. "제일 높은 곳이 남산 222.5m, 그다음이 북산 140m 여서 전체 길이 11km나 되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어렵지 않은 코스다"는 얘기에 콜 사인이 온다. 게다가 강화풍물시장 장날이 맞물려서 장날 구경은 덤이어서 좋다. 강화도의 장날은 강화읍이 2,7일(강화풍물시장), 온수가 4,9일(온수공영주차장), 화도는 1,6일(화도공영주차장)에 선다고 한다. 혼자면 버스인데 둘이어서 차를 가져간다.

주말이나 휴일은 강화도가 차가 밀리는 것이 오늘내일의 얘기가 아닌데다 장날까지 있어 일찍 갔다 일찍 빠져나오는 것이 장땡이라, 적어도 07:30에는 출발하자했구만...

 

310여 km 강화나들길 20개 코스 중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은 제1코스 심도역사 문화길, 제2코스 호국돈대길, 제7코스 낙조보러 가는 길, 제9코스 다을새 길, 제11코스 석모도 바람길 그리고 오늘 가볼 제15코스 고려궁 성곽길이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1232년(고종 19) 강화로 수도를 옮겼을 때 처음 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에 개축, 파괴, 보수, 확장을 거처 강화산성의 되었다. 훼손된 문루가 남문은 1975년에 복원했고, 2003년 동문이 새로 세워지면서 모든 성문이 복원됐다. 고려궁 성곽길은 강화산성을 따라서 남문 안파루(晏波樓), 서문 첨화루(瞻華樓), 북문 진송루(鎭松樓), 동문 망한루(望漢樓)를 잇는 코스다. 성곽을 따라 한 오름하고 숨 크게 쉬면 낙엽이 주단을 깐 푸근한 길이고 또 호젓한 길이 이어져 그 길에 마음을 비우니 시름도 없다. 내내 묻어 나오는 가을 색이 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1. 누구가 : 김여사랑 둘이

2. 언   제 : 2022. 11. 12(토) 흐린 후 비

3. 어디로 : 강화나들길 15코스, 고려궁 성곽길. 남문-서문-북문-동문

4. 얼마나 : 3시간 53분(휴식, 간식시간 포함)

 

▼ 이동경로 : 동문주차장 - 남문 - 선화골약수터 - 청하동약수터 - 암문 - 남장대 - 국화저수지 - 서문 - 정수장 - 강화여고 뒷숲 - 북문 - 북장대터 - 고려궁지 - 강화성당(진무영순교성지) - 용흥궁공원 - 동문 - 강화풍물시장

 

동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문으로 이동한다. 걸어서 10분 거리다. 남문은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되었던 4대 문 중의 하나로 안파루(晏波樓)라 불리며, 조선 숙종 37년(1711) 유수 민진원이 건립하였다. 남문은 1955년 5월 호우로 붕괴되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했고,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江都南門’ 편액을 썼다. 남문 옆으로 MBC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 표지판이 서 있다.

 

10:01 강화나들길 15코스 고려궁성곽길 들머리 남문 출발.

남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남장대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 있다. 대략 3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무리가 가지 않는 길이다. 나들길은 바로 성곽을 오르지 않고 부조고개 압구 방향 남산마을로 향한다.

 

찻길을 5분 걸으념 선화골약수터 방향을 표시하는 나들길 이정목이 있다.
10:14 선화골 약수터.

빛깔 좋은 단풍나무가 시선을 잠시 잡아둔다. 매달 수질 검사하는 것으로 표시된 게시판에는 한 달 전 수질검사 성적서에 적합 도장이 찍혀 있다. 

 

토성길을 만나 좌로 정상 방향으로 오르다 이정표 하나를 만난다. 직진이면 정상이 440m인데 나들길은 돌아 오르게 리본이 달려 있다. 호젓한 기분 좋은 길 잠시 걸다 보면 아동스러운 조형물이 있는 곳을 지난다. '아이의 숲'으로 이름 지은 곳이다. 육각과 원통형 파고라에 징검다리 어린왕자 조형물이다.

 

10:30 청하동 약수터.

2 주전 강화도령 첫사랑길에서 분위기를 이미 맛본 청하동 약수터가 더 가을스럽게 깊어져 있다. 강화도령 원범이 봉이를 처음 만나 사랑이 익어가는 것만큼이나 감상적이 모습이 된다.

 

청하동약수터에서 14 코스랑 잠깐 동행하다 헤어져 암문까지는 제갈길 가고 다시 합류해 잣나무숲으로는 함께 간다. 침엽수림의 숲 바닥은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는데 주위에 활엽수의 생장이 어렵다. 그것은 침엽수가 다른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저해하는 물질 즉 타감물질을 뿌리 등에서 분비하기 때문이란다.  

 

10:39 암문

여기서도 산성길로 곧장 남장대로 오르지 않고 암문을 통과하여 잣나무숲을 경유하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다. 숲길 입구에 계절을 착각한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날씨가 좀 푸근했기로서니.

 

잣나무 숲

확실히 14코스는 남장대를 15코스에게 양보하고 잣나무 숲에서 직진하고 15코스는 남장대로 가기 위해 좌로 방향을 바꾼다. 여기서도 감각 잃은 진달래를 또 본다. 잎은 가을이고 꽃은 봄이로다. 갈림길에서 남장대까지는 5분 거리다.

 

10:54 남장대.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을 때 도성으로 쌓은 것으로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졌었다. 내성은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린 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았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다시 파괴하여 조선 숙종 3년(1677)에 크게 넓혀 고쳐 쌓았다. 강화산성 내성은 동서남북으로 난 대문 4개, 비밀통로인 암문 4개, 물이 흐르는 수문 2개, 관측소이자 지휘소인 남장대와 북장대가 있었다. 장인대(丈人臺)라고도 불린 남장대는 1745년(영조 21) 강화유수 황경원이 세웠고 위치상 가장 중요한 장대라 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서해안의 방비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수행했다. 2010년에 복원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협조를 하지 않아 북한 땅이 더욱 멀리 있다. 가끔 미사일을 쏘는 김정은이 때문인지 눈에 뵈는 게 없다.

잣나무숲 갈림길로 원위치하는데 18분이 걸렸다. 날씨가 받쳐줬으면 사방 경치에 정신이 빠져 더 많이 걸렸을 게다. 14코스가 사랑의 숲 방향으로 틀어야하니 여기서부터 완전 남남이 된다. 이쁜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발길이 주저한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엄마의 품처럼 평화롭고 기운을 북돋운다. 

 

낙엽에 미끄러질라, 돌이 있으니 잘 디디라고 서너 번 반복되면 잔소리가 되는데. 작은 컨테이너 크기의 아기자기한 집은 백 평 정도면 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세컨드 하우스로 괜찮을 것 같다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샛길의 끝 집이 수풀림 하우스 펜션이다. 길 건너면 국화저수지다.

 

11:39 국화저수지.

국화저수지 뚝길에서 강화 석수문까지는 5코스 고비고개길에서 만나본 안면 있는 길이다. 5코스는 강화터미널에서 외포여객터미널까지 강화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는 코스다. 국화저수지는 1978년 축조되어 강화군의 식수원으로 사용할 만큼 물이 깨끗하며 3.3km의 생태문화로가 조성된 공기 맑은 저수지다.

 

강화석수문, 11:58 서문

연무당 옛터 주차장 옆 동락천에 세워진 아치형 석문, 江華石水門은 조선 후기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된 세 개의 아치형 水門이 있다. 주차장 길 건너 서문이 옆으로 폼 잡고 있다.

 

서문은 숙종 37년(1711) 당시 강화 유수를 지냈던 민진원이 세우고 첨화루(瞻華樓)로 이름 지었다. 그 뒤 낡아서 무너진 것을 정조 20년(1796)에 유수 김이익이 다시 고쳐 세웠으며, 지금의 모습은 1977년에 수리한 것이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풍수대로 서쪽의 위풍당당 호랑이 포효가 어둠을 몰아낸다.

 

GS25 벽에 그려진 강화나들길 고려궁성곽길 안내도.

포털 사이트 지도는 서문을 통과해서 성곽과 같이 걷도록 선이 그려져 있다. 그것이 머리에 있어 서문 뒤편에서 리본이나 표지목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돌아 나와 서문 앞 길에서 표지석을 찾았다. 잘못 그어진 포탈 선, 선입견이 잘못을 인정한다. 

 

GS25와 서문 사잇길 끝에서 좌로 틀고 강화서문교회를 끼고 정수장입구 안내판의 방향으로 향한다. 계당길 아래 포장도로에서 이정목을 잘 보고 숲길을 찾아든다. 토성으로 된 구비를 넘는다.   

 

강화여고 뒤 숲길. 여기는 강화나들길 1코스와 공유한다.
12:57 북문

사적으로 지정된 강화산성 북문, 진송루(鎭松樓)다.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 숙종 대 석성으로 만든 문이다. 성을 출입하는 석문만 있었으나 1783년 정조 7년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올리고 진송루라 이름 붙였다.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선생은 강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역사와 문화, 풍물을 담은 ‘심도기행(沁都記行)’을 남겼는데 북문에 대한 시 한 소절도 여기 있다.

진송루 성문 아래서 한참을 머물러 보니/ 산은 고려산에서 굽이쳐 흘러왔고/ 눈 아래는 일천 채의 초가집과 기와집/ 연기 그림자 속에 절반이 티끌이네

전쟁으로 석축만 남았던 것을 1976년 강화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정비하면서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뒤쪽에는 문루에 현판이 없고 현무 그림도 없다. 성 밖으로 난 길도 색이 화려하다.

 

13:13 북장대터

남장대와 달리 북장대는 터만 덩그러니 남겼다. 들 넘어 북한의 개풍이 가까운데도 시계가 좋지 않아 더 멀리에 있다. 주위에 쑥이 엄청 많아서 김여사 심보기라도 한 양 소리의 톤이 높다. "봄에 쑥 캐러 다시 옵시다"

 

1코스와 찢어지고 계속 앞쪽 남산의 남장대를 보며 성곽길을 따라간다. 사각 정자 옆 이정표에 동문이 좌를 가리키는데 나들길은 그것을 무시하고 더 가라 한다. 고려궁지 이정표가 이제 목표가 가까워짐을 알린다.

 

고려궁지 뒤 키기 엄청 큰 느티나무를 지나 고려궁지 담장에 접근하는 순간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아직 비가 올 시간이 아닌데 기상예보 컴퓨터가 잠깐 졸았나. 지나가는 비인 듯 비를 피하고 우산을 편다. 강화유수부 동헌인 명위헌(明威軒)의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한 탐방객의 모습이 담 너머로 보인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 19)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궁궐터이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최우(崔瑀)가 군대를 동원하여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松岳)이라 하였다고 한다.

 

강화성당으로 들어가 ‘진무영 순교성지’에 들렀다 나간다. 진무영(鎭武營)은 조선 시대에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던 군영으로, 병인양요(1866년)를 촉발시킨 서울 애오개 회장인 최인서(崔仁瑞, 요한), 장주기(張周基, 요셉) 성인의 조카 장치선, 박순집(朴順集, 베드로)의 형 박서방, 조서방 등이 이곳 진무영에서 순교했다. 이중 최인서와 장치선은 병인박해로 수많은 성직자 및 신자가 처형되자. 생존 성직자 중 한 명인 리델(Ridel) 신부를 배로 천진으로 탈출시키고, 상해까지 다녀왔다는 죄로 처형되었다.

 

용흥궁공원에서 보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이 전 코스에서 들어다 본 용흥궁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내부는 그냥 통과다. 원불교 강화교당 담 옆 샛길로 따라가면 오늘 고려궁 성곽길의 종점 동문에 도착한다.

 

13:54 동문

강화산성 동문은 팔작지붕의 누각을 설치했고 출입문은 홍예문으로 만들어졌다. 동문 현판에는 望漢樓, 북쪽 현판에는 江都東門이라고 적혀 있다. 2003년에 복원되었으면 새로운 나이는 19살밖에 안되었다. 우청룡이라...

 

오늘 김여사랑 기분 좋은 걸음을 했다. 험한 산에 가려고 하니 안 간다 했는데 오늘 같이 숲길 좋고, 간간이 이쁜 단풍도 보고, 높지 않지만 오르내리막이 있어 땀 흘려 개운하고... 이 정도 코스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란다.

 

1849년 6월 조선 24대 헌종(1827~1849)의 왕위계승을 위해 강화도령 변(25대, 철종)을 모시러 오는 왕실의 행령을 그린 역사기록화.

풍물시장 장날 구경 가려고 노외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차들이 엉켜있다. 장날은 장날인 모양이다. 김장철, 김장에 쓰일 배추, 무, 파 등을 파는 천막이 주차공간을 점령하고 있어 더 복잡하다. 차는 남문 방향 길에서 노외주차장으로 도는 모서리에 강화도행렬도(江華島行列圖)가 있다. 

현재 조선미술박물관(평양)에 소장하고 있는 가로434cm, 세로 149cm 크기의 12폭 병풍이다. 이원범, 즉 철종을 봉영하는 행렬은 문무백관과 왕실, 군사를 포함해 500여 명이 나루터에서부터 강화읍까지 이어진다. 그 모양이 용을 그리려는 듯하고 주위의 세밀하게 그린 전경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맛집을 검색하지 않고 전에 봐 둔 기억으로 강화풍물시장 건물 2층 식당가로 늦은 점심 먹으러 들어간다. 가격과 메뉴는 거의 같아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서 밴댕이 정식을 주문한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맛있게 먹으며 나타나는 다정한 표정이 그 식당으로 유도했다. 밴댕이 정식은 밴댕이 회, 무침, 구이가 세트로 나오는 메뉴다. 밴댕이 무침을 밥 위에 넣어 쓱쓱 비벼 한 숟갈 입에 물고 젓국 한 모금 더하니 조합이 환상이다. 깻잎에 밴딩 회를 올리고 고추 마늘 조각으로 만든 쌈과 노릇하게 구워진 구이를 뼈를 두고 훑어 먹는 맛이 별미다. 게장과 순무김치까지 깨끗이 비우고 2인분 30,000원이 아깝지 않다. 다만 운전 때문에 알코올을 없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식후 식당가를 돌아보니 찐빵, 수수부꾸미, 국숫집 한두 군데가 섞여있고 밴댕이 식당이 주종이다. 희한한 현상은 출입구와 멀수록 손님이 없다시피 하고, 손님이 특히 많은 곳은 보니까 그릇이 다르다. 비비기 쉽게 비빔 그릇이 크거나 놋그릇을 사용한 곳이다. 같은 조건일 때는 장소와 아이디어가 수입을 주도한다는 것...

비가 와서 천막이 없는 사람들은 비닐을 씌어 두어 손님들이 없다. 그래서 오후 장사 재미가 없기에 표정들이 무겁다. 김여사 올 김장거리 여기서 장만한다. 전부 배추 3포기, 무 3개. 파 1단이다. 두 달 전에 배추 한 포기 만 원이 넘었던 게 3,000원이란다. 김여사 "마트에 2,000 원하던데 비싸네요" 하면서 깎으려 든다. 주부가 다 그런가 보다. "강화가 조금 비싸도 맛이 있어서 강화에 나는 것을 먹는 사람은 이것만 찾아요"라고 주인장이 답한다.  

 

토요일에 장날이 겹쳐서 역시나 강화를 빠져나오기가 엄청 힘든데 김여사 옆에서 잘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