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

자어즐 2022. 10. 29. 22:25

전날 사진만 올려놓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고 그만큼 일찍 눈이 떨어진 새벽녘인데 김여사도 깨어 있다. "Miriam이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네. 서울에 참사가 났다는 얘긴데 뭔 내용인지 모르겠네. 봐봐요" 한다. 며칠 전에 독일로 돌아간 조카에게서 오전 3:13에 온 것이다. 'We heard about the catastrophe in Seoul - is everyone in the Family ok?'. 뭔 참사가 일어났다고 그러지 하고 뉴스를 검색해 본다.

핼러윈 파티가 절정에 이른 어제 밤 10시 30분경,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에 초유의 압사 참사가 일어났다는 속보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코르나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에 핼러윈을 맞은 이태원 '아비규환' 수십 명 사망 '대형참사'란 제목 다음으로 사망자가 146여 명에 부상자가 150명에 이르고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뉴스가 이어진다.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이 나라에 어찌 이런 일이. 가슴 이픈 안타까운 죽음에 할 말을 잊는다. 못다 핀 꽃들을 나라가 국민이 어찌 감당하려나.

김여사가 'We are okey' 'We were asleep so we didn't know it' 'I am sad about this tragedy'라고 답한다.

 

전날로 돌아 가자. 행사가 없는 오늘 승섭이도 없도, 김여사도 없고 나 홀로 강화나들길 오랜만에 연결하러 나선다.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다. 준비 없이 갑자기 왕위에 오른 강화 도령 원범이 즉위하기 전 5년 동안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만난 첫사랑 봉이와의 이야기가 숨은 길이다. 강화도령 첫사랑 길은 철종의 잠저(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거처하는 집)였던 용흥궁에서 출발해 두 남녀가 처음 만난 장소로 추정되는 청하동 약수터’로 이어지고, 약수터에서 산을 오르면 강화산성 남장대가 나온다. 이북 땅도 손에 잡힐 듯하다. 남장대를 내려와서 찬우물약수터를 지나 길은 철종의 외숙인 염보길이 살았던 철종 외가까지 이어진다.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은 강화도에 유배 왔다가 여기서 세명의 부인 중 용성대부인 염씨를 부인으로 맞았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철종이다.

 

1. 누구가 : 나 홀로

2. 언   제 : 2022. 10. 29(토)

3. 어디로 : 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길, 용흥궁 → 철종외가 

4. 얼마나 : 11.7km, 3시간 25분(휴식시간 포함)

 

▼ 이동경로 : 강화버스터미널 - 성송회 강화성당 - 용흥궁 - 중앙시장 - 성산아파트 - 청하동 약수터 - 거북바위 - 남암문 - 남장대 - 호텔 에버리치 - 명진웨딩부페 - 나무들의 집 - 찬우물 약수터 - 바다의 별 요양원 - 신원초등학교 - 철종외가 - 대장간마을버스정류소

 

1900년 한옥으로 지어진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버스로 강화터미널 정류장에 도착 한 시간이 오전 10:33이다. 풍물시장 노외 공영주차장을 지나 강화군청 정문 앞을 통과하여 성공회 강화성당에 도착한다. 1.5km, 16분이 소요된다. 지나는 길에 의례히 들런다.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탑 요한복음 1장 1절 19절이 양각된 교회에서는 특이한 종.
용흥궁내에 있는 가옥형 정자 사랑채.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0호

성공회 강화성당 정문 외삼문으로 나오면 바로 용흥궁 북쪽 문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서면 용흥궁 사랑채다. 그 옆으로 과거 초가 집터를 알리는 잠저구기비각(潛邸舊基碑閣)이 있다. 거기서 문화관광해설사가 철종의 일생사와 과 용흥궁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초가집을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기와집 새로 고쳐 짓은 집이다. 강화도에서는 5년간 살았다. 국왕의 장자로 태어나 왕세자가 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사정으로 임금으로 추대된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고 하고, 궁(宮)은 왕이나 왕족이 살았던 곳을 단순히 일컫는 말이다. 왕이 살았다고 해서 용흥궁으로 부르지만, 궁이라 부르기에 무색할 만큼 일반 양반집보다 훨씬 소박한 한옥이다. 

 

'용흥궁(龍興宮)'이라는 현판 아래 있는 대문을 통과하면 행랑채를 마주하고 안채가 있다.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元範)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44년(헌종 10) 회평군(懷平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 살았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강화도령'이 조선시대 25대 왕(재위 1849∼1863)되는 순간이다. 왕족이지만,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희박하던 사람이 왕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이었다. 그러나 철종에 대한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시중에는 온당치 않은 말들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철종이 일자무식이었다거나 나무를 해서 먹고살았다고 하는 말들이다. 왕이 된 후에 사가(私家)에 있을 때의 교육 정도를 묻는 질문에 '소학'까지 배웠다고 철종은 답해서 일자무식은 아니었을 거라고 해설사가 얘기한다.

 

11:05 강화나들길 14코스 시점 도장함
숨은 그린 찾기 어렵네...
삼도직물 터와 김상용 순절비.

김상용순절비를 끼고 좌로 돌아 직진이다. 강화중앙시장 B동에서 강화대로를 건너 A동을 우로 두고 걸으면 시장 건물 끝에 솔터 우물이 있다. 예전에 이 물로 진전(眞殿.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 고려궁지에 있었던 장녕전, 만녕전)의 제사 때 섰다고 한다.

 

솔터우물 마주 보는 곳에 강화 신문리 양조장 안내판이 서 있다 옆의 골목에 양조장이 있었던 곳이다. 길 따라 두 집 옆에 한옥관광안내소를 지나 강화미술도서관이 있는 좁은 포장길로 진행하고 길잡이인 표지목과 리본만 따라가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성산아파트 옆 골목의 안내 리본 공원 산책로.

상신아파트 옆 짧은 골목길 끝에서 좌로 난 공원 산책길로 방향 전환한다. 반듯하게 난 길에 나른한 길고양이 한 마리가 길손을 본체만체 만사 귀찮은 표정이다. 

 

남산공원 재일 위쪽의 2층 정자.
강화읍 생태체험 숲 건강의 숲.

남산공원 정자를 등지고 들어온 숲에 소나무로 정화된 건강의 숲이다. 운동 기구가 설치된 공간도 있다.

 

11:39 청하동(남산) 약수터

남산약수터 수질검사 적합이라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킨다. 한쪽에서는 댕기머리 아이 한 명은 긴 꼬챙이로 고기를 쫓고 한 명을 그물망 반도로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반대쪽에는 아낙들이 머리를 감고 몸을 닦는다. 누군가가 숨어서 훔쳐보고 있을 법한 벽화가 그럴듯하다.

 

원범이 강화도에서 5년간 귀양살이 할 때 강화도 처녀 봉이와 처음으로 만난 곳이 청하동 약수터이다. 두 사람의 애틋한 추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남장대를 지나 찬우물 약수터까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었단다. 원범이 한양으로 떠나는 날 봉영단 행렬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후 봉이는 새벽마다 이 약수터 위 거북바위 앞에서 약수를 떠 놓고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고 전하는 얘기. 낙엽이 폭신하게 깔리고 주위의 나무들이 물들어 만든 호젓한 분위기의 가을날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가슴 콩당했을까.

 

용흥궁에서 2.2km, 남장대까지는 1km
강화나들길 14코스와 15코스가
봉이가 기도했다는 거북바위
11:51 강화산성 남암문

성곽에 문루를 세우지 않고 전시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사용하던 문. 강화산성에 4개의 암문이 있었으니 모두 헐리고 여기에 것만 남아 있다.

 

암문을 통과하도록 표지목의 화살표는 가리키고 있고 길은 산성을 따라올라 남장대로 갈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숲 길로 연결해 놓았다. 우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본을 따라 잣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생태체험숲 잣나누 숲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잣나무 사이로 걷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키가 작아진 기분이어도 마음은 자유롭다. 침엽수 잎만 깔린 숲의 바닥도 다른 맛이다. 그런데 이 숲을 지나면 남장대를 우회할 듯하여 중간쯤에서 남장대로 가는 길 흔적을 따라 경사를 오른다.

 

12:02 강화산성 남장대(223m)

성벽의 가장 높은 지점인 남산의 정상에 산불감시초소를 건너오니 둘레 7.1km의 강화산성 3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남장대가 나를 격하게 환영한다. 두 팔을 펼치고 나를 감싸 앉을 폼이다. 위치상 가장 중요한 장대라 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서해안의 방비를 담당하던 진무영에 속한 군사시설로 감시와 지휘소 역할을 수행했다. 누각 자체는 병인양요(1866) 이후 허물어졌던 것을 2010년에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남장대 앞에 서면 사방이 탁 트여 강화읍내는 물론이고 염하 건너 김포 땅은 물론과 오늘 같이 시계가 그런대로 괜찮은 날에는 북한의 개성 땅까지 바라보인다.

 

잣나무 숲과 남장대 합류 or 갈리는 지점.

남장대에서 내려서서 잣나무 숲과 만나는 지점의 표지목을 보니 강화나들길 14코스는 남장대를 거치지 않고 잣나무 숲을 통과하도록 설계변경이 된 듯하고 강화나들길 15코스의 길은 여기서 남장대를 갔다 복귀하는 것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잣나무 숲 중간에서 남장대를 오른 것은 선입견에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헷갈리는 부분이다.

 

사랑의 숲 방향으로 틀면 14코스 직진하면 15코스.
12:28 사랑의 조형물들이 설치된 사랑의 숲 구간의 쉼 공간.

강화도령 첫사랑 길 남산 사랑의 숲 아래로 내려오면 3성급 호텔 에버리치다. 호텔과 카페를 지나 주차장에는 어느 여고 동창생들이 타고 온 버스가 대여섯 대 주차되어 있다. 대형 컨벤션 센터와 세미나 실이 구비된 강화도에서 찾기 힘든 호텔이다. 그리고 남산 골프연습장 앞에서 우로 도로를 따라 걸으면 전원 주택가를 통과한다. 

 

표지목을 흘리지 않고 우로 좌로 한 번씩 방향을 바꾸면 명진컨벤션웨딩부페 건물이 등장한다. 도로를 건너 태민이라는 회사 옆 약 240m 농로 끝에는 잘 정비된 작은 하천을 만난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다리 건너 나무들의 집이 있다. 이 건물은 서울 어느 교회에서 교인들의 휴식과 훈련은 물론 자연생태 체험장으로서 그리고 지역을 섬기는 작은 교회로서 건립한 것이다. 

 

뒤로 혈구산과 고려산이 조망되는 한적한 마을길을 한가하게 넘어간다. 바다의 별 요양원 앞 도로에서 좌측 언덕 70m에서 주차도와 나들길로 분리된다.

 

13:11 혈구산 등산로 입구 앞 운동기구가 설치된 쉼 공간.

사유지가 아닌 것 같은데도 깨끗이 잘 관리하고 있는 쉼 공간이다. 빗자루 삽 걸레 등 청소도구가 가지런히 비치되어 있고 분리수거토록 비닐 3 봉투도 그 옆에 함께 있다. 바람에 엄청 날리는 낙엽과 함께 하는 한 캔의 맥주가 오늘의 갈증을 날린다. 김여사가 준비해 준 떡과 사과, 육포가 안주다. 잠시가 35분이 넘어간다.

 

찬우물고개, 찬우물약수터

혈구산 등산로 입구 중의 하나인 찬우물 고개다. 여기서 혈구산 정상까지는 4.6km로 한 시간 반이 소요되고, 외포리로 넘어가는데는 총 9.8km, 고비고개까지는 6.7km 란다. 등로입구에서 1분 거리에 찬우물약수터다. 아주머니들이 약수터 앞에서 작은 시장을 열었다. 순무, 고구마를 위시하여 밤, 호박, 고추, 땅콩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강화도령 원범이 봉이와 청하동약수터에서 여기까지 오가며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강화터미널에서 선원면 불온면을 통과하여 초지대교로 나가는 중앙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으로 ㄷ자를 그리면 14코스를 잇는 숲 입구가 있다. 여기도 시원시원한 잣나무다.

 

선원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소트리팜 쪽으로.

종점까지 1.5km 지점에서 좌로, 우로, 좌로 길을 틀어야 하는데 리본을 못 보고 한번 더 좌를 직진했다가 리본이 없어 지도를 검색하고 돌아온다. 계속 가도 길은 만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 코스를 고집한다. 배에 천둥소리를 내고 몸이 급하다고 신호를 주어서 급한 마음이 시력을 약화시킨 듯. 철종 외가 보다 안에 보이는 화장실이 더 반갑다.

 

14:30 강화도령 첫사랑 길 종점 도장함

강화도령 원범이 용흥궁 집에서 선원면에 있는 외가를 방문하 듯 그 걸음에 맞춰 봉이와의 사랑도 곁눈질하며 기분 좋게 걸었다. 바닷가였으면 '나 잡아 봐라' 할 것 같은 청하동 약수터의 가을 분위기에 취해 보고,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지길 바라는 잣나무 가득한 숲길 나 홀로 걸으며 가을 남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사방이 터진 남장대에서 북한 땅 개성 쪽으로 시선이 머물다가 '개성 공단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괜한 생각도 해 보았다. 실제 강화나들길 14코스는 크게 기대하고 오진 않았는 않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괜찮은 길이어서 마음이 즐겁다. 이제 169년 전에 지어진 철종 외가를 둘러보고 보금자리로 돌아가야지...

 

인천문화재 자료 8호. 철종외가(哲宗外家)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의 외숙인 염보길(廉輔吉)이 살던 집이다. 1853년(철종 4)에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에게 명하여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안채와 사랑채를 좌우로 두고 H자형 배치를 취하고 있었으나, 행랑채 일부가 헐려 지금은 ㄷ자 모양의 몸채만 남아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一자형으로 연결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을 작은 담장으로 간단히 분리하였다. 당시 일반 사대부 집의 웅장한 규모와는 다르게 규모는 작으나 예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건물이다. 후원에는 염씨 집안의 묘가 있다는 강화군의 설명이다.

 

냉정 2리 마을회관을 지나에 있는 대장간마을버스정류소

선원면사무소 방향으로 향하는 대장간 마을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는 버스는 모두 강화버스터미널이 종점이다. 많은 노선 버스가 이곳을 지난다. 그런데 15개의 노선 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1,2대도 운행하는 것도 있고 배차시간이 2,3시간은 보통이라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3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를 할 수가 있다. 다행이 나는 도착하자 바로 4번 버스가 오길래 거기에 몸을 싣는다. 강화버스터미널까지는 약 15분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