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경계를 넘나 드는 청계산

자어즐 2022. 11. 5. 23:00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대로 이른 시간의 기온은 영하를 가리킨다. 늦가을, 겨울로 가는 날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하다 해도 하필 오늘인 게 불만이다. 지난 주와는 달리 목에 워머를 두르고 안에 조끼를 덧입는다. 추울 때 등산복은 얇은 것을 여러 겹 입고 겉에 바람막이나 눈비에 강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산행에 몸이 더워지면 하나씩 벗고 쉬면서 추우면 입어 체온을 유지해야 하고, 워머나 모자는 체온을 3도가량 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철 준비해 두는 것이 만사 불여튼튼이란다. 집 근처나 도심 주위의 산행에는 융통성을 부려도 누가 뭐러고 하랴. 그런데 아침에 집은 나설 때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산행하기 좋은 모드로 맞춰진다.

 

늦가을 산행으로 북한산 숨은벽 능선이 머리에 맴도는 데 지난 산행에서 다음 산행지로 얘기가 나온 청계산으로 이륙산우들 산행지로 정한다. 10:00에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에서 만난다. 가까이 원터골로 출발하는 코스가 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앞사람 엉덩이를 보고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이곳을 자주 찾는 친구의 권유로 옛골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이동에 버스로 4 정류장, 7,8분 소요된다. 

청계산 등산의 출발점은 서초쪽 양재트럭터미널, 원터골, 청계골과 성남의 옛골, 능안골, 하우고개 그리고 과천의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가 있고 의왕에서도 청계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청계산의 매력은 남여노소가 산행할 수 있을 만큼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암릉이나 위험한 구간이 없고 경사가 있는 곳은 계단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점심 먹고 출발해도 산은 기다려주고 신분당선의 지하철역이 있고 양재에서 대중교통이 많아 접근성도 양호한 편이다. 오늘도 십여 명의 친구들과 살아가는 재밌는 이야기하며 느긋하게 걸어볼 참이다. 

 

1. 누구가 : 건호, 국진, 병오, 상윤, 석준, 수혁, 승섭, 윤배, 재현, 정수, 종철 11명

2. 언   제 :  2022. 11. 05(토) 10:00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

3. 어디로 : 옛골 - 매봉 - 이수봉 - 옛골

4. 얼마나 : 5시간[휴식, 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 : 청계산입구역 - (버스) - 옛골버스정류장 - 정토사 - 원터골 갈림길 - 헬리포터 - 돌문바위 - 매바위 - 매봉 - 혈읍재 - 헬리포터 - 청계사갈림길 - 이수봉 - 봉오재 - 정토사 입구 - 은행나무집 - 옛골버스정류장

 

청계산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열 시에 약속을 했나, 아니면 원래 이렇게 붐비나 역을 빠져나오는 데도 줄을 섰다. 겨우 약속 시간에 도착한다. 꼴지로 도착해서 먼저 온 친구들과 인사하자 바로 출발이다. 예고 없던 윤배와 정수는 따로 출발해서 모두 열한 명이다. 오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오는 친구들의 코스를 따라가기로 한다. 원터공은 사람들도 많고 계단도 많다고 옛골로 이동한다. GS25에서 곡차를 수급하고 청계산의 사계 벽화가 그려진 더라 맡을 통과 정토사로 걷는다.

 

10:25 정토사

정토사 들어가는 길 옆 건물에 '고씨네국수' 집이 있다. 간혹 와서 주인장과 안면이 있는 친구가 나중에 11명이 앉을자리가 있겠냐고 물으니 다른 곳에 가라고 하더란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예상한 답이란다. 국수뿐만 아니고 미나리전 두루치기가 이 집의 대표고 호박전, 홍오전도 맛있다고.

 

정토사 옆으로 가는 길에 옛골양어낚시터가 보이고 길바닥 보수 공사를 한다고 금줄을 쳐 놓았다. 금줄 아래로 통과하여 좌로 잠시의 포장도로는 부대 앞에서 우측 등산로로 이어진다.

 

여름 장마의 흔적은 아직 그대로. 산객이 드물어 산행하기 좋은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겉옷 하나씩 벗게 되고 성남시와 서초구의 경계는 가끔 넘나 든다. 청계산은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과천시, 의왕시의 경계에 따라 위치해 있으며  매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경기도 청계산 지역과 동쪽의 서울시 청계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청계산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짐작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단다. 서울시 청계산 구역을 보면 혈읍재에서 옛골로 내려가는 하산길에 금토천의 발원이 되는 물만으로 청계라고 하기에는 과장이 아닐까 싶다. 청계산은 상봉인 망경대(618m)를 가운데 두고 북쪽 줄기에는 옥녀봉(375m)과 매봉(583m)이, 남쪽 줄기에는 이수봉(545m)과 국사봉(540m)이, 서쪽 줄기에 과천 매봉(368m)이, 동쪽으로는 천림산(봉수대, 323m)이 있는 등 많은 봉우리를 거느린 산이다.

 

원터골에서 올라오는길과 합류하여 3,4분에 헬기장 쉼터다.
11:26 헬기장 쉼터의 등산안내도. 그 옆이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아치문이 설치되어 있다.
돌문바위

옥녀봉에서 매바위에 오르는 길에 있는 ‘사람 人’ 모양의 돌문바위.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돌문을 통과하면 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얘기가 있어, 우리 친구들 여기를 세 바퀴 통과한다.

 

매바위를 보며 지나는 길에 1982년 6월 1일 전두환 대통령 경호를 위해 이동하던 비행기가 청계산 상공을 지나던 중 추락해 탑승한 특전사 53명 전원이 사망해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혼비가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매바위를 오르는 계단에서 뒤로 돌아보면 북한산군이 있고 롯데슈퍼타워, 구룡산 대모산, 인릉산, 남한 산성도 있다.

 

매봉을 만나기 100m 전 매바위.
11:43 매봉 582.5m

매봉 전망대에 산객들이 가득 들어찼다. 줄 지어 선 모양이 매봉 정상석과 인증샷을 하기 위한 꼴새다. 한참을 줄 서야 하는 이유가 없어 정상석만 사람이 교채 될 때 후다닥 찍고 뒤에서 폼 잡았다. 앞이면 어떻고 뒤면 어떠하랴. 정상석 뒷면에 새긴 것은 유치환 선생의 시 '행복'의 한 구절이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망경대 갈림길에서 망경대로 들어서니 일렬로 서서 가던 산객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다.
미리 마른 단풍이지만 가장 가을 분위기 나는 구간
11:59 혈읍재. 매봉700m 12분 / 석기봉900m 20분

피울음 고개라는 뜻의 혈읍재다. 조선 전기 정몽주, 김굉필과 함께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一蠹) 정여창 선생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 실현이 좌절되자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에 은거했다. 그가 은거지인 금정수에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鄭逑)가 혈읍재라 명명했다. 그 옆의 안내판에는 스승인 김종직 선생이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당했다는 소식에 은거지인 금정수로 가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넘어 다녔다는 고개라고 설명한다. 조금 다른 내용인데 어느 것이 맞는 건지.
정여창 선생은 1498년 무오사화로 함경북도 종성에 유배되어, 1504년(연산 10년)에 사사되었다. 그 해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시신이 찢기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 그가 머물렀다는 금정수는 청계산 최고봉 망경대 바로 남쪽 석기봉 절벽 100m 아래, 즉 신선대 왼쪽 골짜기 상단부에 있는 굴로 행정구역상 과천시 막계동에 속하며, 청계산 서쪽 벼랑이 된다.

 

만경대 정상은 국가 시설이 있어 오를 수가 없고 9년 전쯤에 망경대 가장 인접한 곳의 등로가 살아 있을 때 오른 적이 있는데 아주 좁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이름은 고려 말 충신 조윤이 이성계를 피해 이곳에서 막(幕)을 치고 지냈는데, 고려의 서울이었던 개성을 바라보며 망국의 한을 달래 망경대(望京臺)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망경대를 우회하며 만난 데크 쉼터에서 오늘도 식당을 차린다. 김과 같이 먹는 컵라면이 여기서는 별미다. 3종 전 세트와 문어숙회 안주에 걸맞은 곡차를 보고 여기서 합류한 정수가 "낙엽이 미끄럽던데 괜찮겠냐"한다. 각 1병 가까이 되니 걱정되는 투다. 에너지가 되는 곡차 정도는 괜찮은데 과해서 알코올이 되면 곤란하다. 지금까지 봤을 때 이 정도는 정량이다. 부드러운 것과 묵직한 맛의 두 가지 내린커피, 허브차도 있고 김여사가 만든 생강에 무청이 들어간 차도 인기가 있다.

 

바위로 된 석기봉

1시간 10분가량 즐거운 시간 보내고 다시 출발이다. 약 200m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산길이 연결된다. 10분 남짓 부지런히 걸으면 석기봉 등로와 만나는데 이 길은 폐쇄되어 있다. 석기봉을 눈여겨보니 몇몇 사람에 꼭대기 주위에 움직이는 게 보인다. 석기봉 오르는 등산로가 따로 있는가 보다.

 

13:44 헬리포트
13:49 청계사, 과천매봉 / 이수봉 갈림길 (절고개 삼거리).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이동 매점. 청계산은 이것에 관대한 듯하다.

기척을 내며 지나치는 산악자전거를 탄 팀에게 파이팅을 외쳐 준다. 힘에 부치는 듯 고개를 못 넘는 라이더를 보며 한 친구가 지인이 육백만 원짜리 봉고에 수입 부품들로 직접 조립해서 이천 사백 만원의 값어치가 되는 자전거를 싣고 다니는 얘기를 한다. 몸이 좋지 않아 시작한 산악자전거가 치유를 해 주니 그 보다 더한 효자가 없고 좀 더 좋은 자전거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친구에게도 권유를 하더란다.

건강이나 권유나 어떤 이유든지 한 가지 운동에 미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전거, 오토바이, 트레킹 등등 어느 것이든 세월이 더 가기 전에...

  

14:02 이수봉(545m)

일두 정여창 선생이 그의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 등이 연루된 무오사화를 예견하고 이 산에 은거하여 두 번에 걸쳐 목숨을 건졌다 해서 목숨 수(壽) 자를 쓴 ‘이수봉(貳壽峰)’이라 불린다.
이수봉 남쪽에 있는 국사봉(540m)은 고려 말 이색(어떤 곳에서는 조윤)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봉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국에 많은 국사봉이 선비 사(士)를 쓰지만, 이곳 국사봉은 생각 사(思)를 쓴다.

 

동기들 산에 가는 날이면 이 친구 "나는 산에 재미도 없고 힘도 없어 못 간다. 뒤풀이 식당에서 기다릴 께" 하며 술 값을 계산 해주던 친구가 이제는 걷는 재미에 푹 빠져 제주도 30일 살기에서 한 트레킹 이바구를 재미있게 엮어내는 통에 하산길 지루한 줄 모른다. 걷다 보면 평범한 길에서는 날아다니다 시피 하는 사람이 작은 현무암 조각들로 된 해변 길에서는 후덜후덜거려서 케어하다 보면 어느새 친해져 있고, 영화에서나 찍을 수 있는 장면들을 눈치보지 않고 여러가지를 연출해 본 재미는 뭍에서는 느낄 수 없다고... 볼 일이 있으면 그 날들은 제외시켜 주어 꼭 한 달을 연속으로 채울 필요가 없는 장점이 있다고 하니 나도 해 보고픈 욕심이 생긴다. 

 

15:07 봉오재(봉오삼거리)에서 직진 3,4분 후 천봉산봉수지 갈림길에서 옛골로 좌틀.
낙엽 주단 깔아 놓은 길이 감성을 자극한다. 해서 잠시 혼자 놀기.
15:18 옛골로 들어서며 보는 청계산.
정토사 인근의 앵두나무집

뒷풀이 메뉴는 엄나무백숙이다. 먼저 밑반찬으로 나온 고사리, 가지 등 나물 맛에 반하고 나중에 누룽지와 깍두기의 마무리에 빠진다. 오랜 경력이 묻어 있는 할머니의 맛이다. 산에서 먹은 것이 있어 량이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괜한 것이었다. 바닥이 보이고서야 모두 배를 두들기며 잘 먹었네 한다. 오늘 리딩을 해주고 식당까지 안내한 친구가 자기 나우바리(?)라고 기어이 계산까지... 미안하고 감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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