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강화나들길 13코스. 볼음도 길

자어즐 2022. 7. 31. 22:10

천연색에서 무채색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든 사물들이 재색깔을 가지고 있더니 한순간에 바다도 하늘도 산자락도 모두 회색으로 변했다. 색상이 변해서 보기 싫은 것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 운치는 있고 본질은 살아 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는 고정된 색이고 그 색은 언제나 바뀐다. 

오늘 일기예보가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 12시부터 비 그림이 그려져 있던 그대로 비가 내린다. 우산을 챙기지 못해서 강화터미널에서 싼 것으로 하나 구입한다. 해변을 지날 때는 이것이 효자노릇 하더니 숲길에서는 나뭇가지에 걸려 힘없이 살대가 꺾이고 나중에는 걸레가 되어 버리니, 역시나 싼 게 비지떡이라 옛말 그러지 않더라.

 

주문도행에서는 차를 가지고 갔지만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다. 혼자 이기도 하지만 휴가철이라 선수항 주변에 주차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예상 때문이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7시 45분발 선수행 47번 버스를 타려고, 두 시간 전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정시에 출발한 47번 버스에는 기사와 나 외에 아무도 없다. 한번 정차하는 외포리에서도 손님이 없다. 8시 30분 도착 예정시간보다 5분 일찍 선수선착장에 도착한다. 나 홀로 승객이어서 괜히 미안타. 비 예보여서 움직이지 않은 것인지, 모두 차를 가지고 온 것인지 모를 일인데 이래서야 이 버스 운송업체 운영이 되겠나 싶다. 나올 때도 승객 4명이 전부였다.

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판단을 후회했다. 두배 이상 걸리는 시간은 그렇다치고 나올 때 4시간가량(배 55분, 버스 지하철 3시간)을 에어컨 빵빵 틀어 놓아서 비 맞은 데다 추위에 떨었다. 

 

불음도로 들렸는데 볼음도다. ‘볼음도’라는 독특한 이름에는 조선 인조 때 장수인 임경업 장군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어느 날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피해 이 섬에 들렀을 때 보름달을 봤다고 해서 ‘보름도’라 불리다가 나중에 한자어로 ‘볼음도(乶音島)’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 섬을 오는 데 보름이 걸려서 보름도라는 설도 있다. 볼음도는 강화군 서북부 해안에 있는 섬으로 크기는 작지만 농경지가 많아 들판이 넓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북쪽 해안의 저수지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를 비롯해 수십여 종의 철새가 날아드는 생태계의 보고다.
볼음도에는 저어새 외에도 유명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800년에 달하는 볼음도의 은행나무는 저어새의 서식지인 저수지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1. 누구가 : 나홀로

2. 언  제 : 2022년 07월 31일(일요일) 

3. 어디로 : 볼음도

4. 얼마나 : 4시간 [13.2km, 휴식시간 포함]

 

▼ 이동경로 : 볼음도선착장 - 물음곶 - 조개골해수욕장 - 영뜰해수욕장(영뜰전망대) - 소나무숲 - 광산전망대 - 서도은행나무(볼음도전망대) - 볼음도저수지

              - 봉화산 - 당아래마을 - 부고개 - 볼음도선착장

 

08:25 선수선착장에 도착. 주문도 갈 때 주차한 곳에 한두 대 주차공간이 있는 걸 보고 차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러면 3시간 정도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08:50분 발, 볼음도에 데려다 줄 삼보 12호 차도선은 이미 정박해 있다. 승선신고서를 작성하고 신분증과 함께 승선권을 구매한다. 승선권 발급 및 승선 시에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승선신고서는 해병대 군인에게 제출한다. 배 시간과 요금은 주문도길 편에 자세히 기록해 두었으니 참조하자.

 

배는 11코스 때 들렀던 석모도 어류정항을 지나고 주문도 살꾸지 선착장도 지난다. 갈매기들은 계속 배 주위를 맴돈다. 볼음도까지 따라 올 모양이다. 서검도 미금도 사이로 교동도가 있고 왼쪽으로는 북한 땅이 멀지 않다. 뱃길 물자욱 뒤로는 석모도가 눕었고 마니산도 가장자리에 있다.

 

09:51 볼음도 도착. 강화나들길 도장함은 대합실 옆에 위치안내판,강화나들길 13코스 안내도와 나란히 붙어 있다.

저어새가 들려주는 볼음도 이야기에는 갯벌에 1km 이상의 그물을 쳐서 물이 드나들 때 걸리는 고기를 잡는  건강망(개막이), 백합을 캐는 그레질, 신선이 살았고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이 있었는데 빨래를 하는 바람에 부정을 타서 지금은 물이 말랐다는 신선봉 선녀탕, 볼음도 은행나무 등등 볼음도 곳곳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었다.

  

09:57 대합실을 보고 왼쪽 포장도로로 강화나들길 13코스 볼음도길을 출발한다. 300m 남짓한 거리에서 마을 가는 포장길과 헤어진다.
물엄곶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사전적인 의미의 자유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완전히 나 홀로가 조심스런 걸음으로 돌길의 해변을 걷노라니 문득 자유가 떠오른다. 두 팔 벌리고 큰소리 한 번 질러도 눈치 줄 사람 없고, 모든 생각들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어서 오늘은 몸과 마음에 얽매임이 없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값비싼 감정인지, 이런 편안함이 힐링인가 싶다.

 

걷기 힘든 길이 끝나고 조개골해변의 백사장이 시작된다. 물엄곶을 돌아와서 35분가량 소요된다. 바로 잘라가면 20분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해안 방풍림이 해안을 길게 감싸고 있다. 앞 쪽 하늘의 구름 모양이 심상찮다.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삼천 원짜리 우산이 효자노릇 할 차례다.

 

10:32 조개골해변

건강망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 위를 시꺼먼 구름이 덮고 있다. 물먹은 모래사장은 단단해져 걷기가 많이 수월하다. 어제 올 계획이었는데 전날 인천 친구들과의 전주의 여파에 하루를 미룬 것이 비를 부른다.

 

조개골해변 중간 자점에 있는 바위. 여기에 걸터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겨도 좋겠는데, 4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과 날씨가 말린다.
빈속이 요기를 부르지만 정자는 이미 점령당해서 통과. 해당화가 남아 있고 메꽃도 꾸밈이 없다.
소곶을 짤라 가는 숲길. 파도막이와 퇴사울타리가 쳐진 해변
영뜰전망대 오기 전에 짧은 숲길이 하나 더 있다. 숲길 치고는 고속도로다.
10:53 영뜰전망대

볼음도에서 가장 큰 해변인 영뜰해변의 중간에 영뜰전망대가 있다.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층은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딸 내 식구들의 화기애애한 소리가 딸 없는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위층에는 민박한 두 사람이 마실 나온 듯 갯벌체험 나가는 트랙터 관찰하고 있다. 33분 식당 차리고 나니 빗줄기도 줄어든다.

 

트랙터의 뒷칸 모양도 가지가지, 서너 명 탄 것에서 한 분대가 탈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하다. 갯벌체험은 조개골해변 영뜰해변 모두 가능하지만 영뜰해변이 더 유명하다. 물이 빠지면 최대 6km까지 갯벌이 나타나서 20분 이상 트렉터로 이동하니 멀리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갯벌이 넓게 나타난다. 흔히 백합이라고 하는 상합을 채취하는데 조개 중에 최고에 속하고 해감을 하지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갯벌체험비는 인당 13,000원이라나.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루 자면서 그레질로 상합을 잡아 시원한 조개탕 맛보고 싶다. 

 

로프펜스가 설치된 소나무 숲길.

빗물 먹은 풀들과 낮은 아카시아 나무 가지가 갈길을 더디게 한다. 신발에 물이 들어가 찜찜하다. 영뜰 전망대에서 비닐로 공사를 해도 바깥에 이미 젖은 양말은 촉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소나무 숲길이 멋스럽다. 해당화 피는 5월쯤에 걸으면 가장 좋을 듯.

 

소나무 숲길
소나무 숲길을 나와 광산전망대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진입하는 길은 풀과 나무들이 막고 있어 겨우 찾아 들어간다. 로프펜스가 보일락말락한다..
11:57 잡초에 둘러 쌓인 광산전망대. 나무에 가려 전망이 신통찮다.

일제 강점기 시절 중석과 크롬철을 채굴한 광산이 있었던 섬이어서 광산전망대가 있는가 보다. 수지가 맞지 않아 폐광이 되어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단다.

 

광산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길도 사람이 다닌 흔적을 겨우 찾아서 어렵게 넘어간다. 비를 안 맞아도 나뭇가지와 풀을 헤쳐 지나옴에 옷은 다 젖었다. 땀 대신 빗물이 흐른다. 우산 살 서너 개가 가지를 헤치고 나오다 꺾였다. 아직은 그럭저럭 쓸만하다. 은행나무를 찾아서 좋은 길에  바쁜 걸음을 한다.

 

12:33 천연기념물 304호로 지정된 볼음도 은행나무. 은행나무를 한 그림에 넣을려면 뒷걸음질을 많이 하게된다. 볼음저수지가 따라 붙었다.
은행나무 전망대.

볼음도 은행나무 옆 계단으로 150m 떨어져 있는 전망대다. 망원경으로 북한의 집들이 잡힌다. 섬과 5.5km 떨어진 황해남도 연안군이다. 여기는 사계청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누가 하겠냐고. 젊은이들은 없고 나이 든 이들만 섬을 지키고 있는데 누가. 학교도 폐교가 되고 젊은 이라야 섬을 지키는 해병대 병사들 뿐이다. 결국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다.

 

볼음도 은행나무는 높이 25m, 가슴높이의 둘레는 8.96m이다. 어른 8명이 손을 작고 돌아야 겨우 닿을 수 있다. 약 800년 전 큰 홍수 때 황해남도 연안군에 있는 부부나무 중 수나무가 바다로 떠내려 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암나무가 북한에 살고 있다 하니 이 은행나무도 이산가족이다. 이 노거수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로 여겨지고 있다. 이 나무의 가지를 태우면 신이 노하여 재앙을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정월 그믐날에 모여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볼음도 저수지 방파제의 제방길과 조류관찰소.

강화나들길 13코스는 은행나무 옆 볼음저수지 방파제 제방길로 연결된다. 방파제 입구에서 종점까지 5.8km 남았고 현재시간 12시 48분이라 시간은 여유가 있다. 방파제는 약 970m 길이로 일직선 반듯하여 건너는데 빠른 걸음으로 10분가량 소요된다. 조류관찰소가 있는 걸 보면 여기에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얘긴데 지금은 연잎과 수초들이 저수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봉화산 입구를 이정목을 따라 찾아 가는 길. 노란지붕 집을 지나 고개마루에 봉화산 등로 입구가 있다.
13:16 봉화산 정상.

6분여 오름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삼각점 하나 달랑 있는 봉화산 정상[82.8m]에 오른다. 삼각점을 앞에 두고 인증샷을 할 때만 해도 우산이 재형태가 있었다. 그런데 하산길을 잘못 들어 없는 길을 만들어 내려오다 나뭇가지에 걸리고 찢겨서 우산이 걸레가 되어 있었다. 내려와서 보니 10여 m 옆에 나들길 이정목이 약 올리고 있다.  

 

볼음교회, 볼음진료소, 삼도농협, 볼음노인회관, 서도파출소(볼음분소)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을 당아래마을이라 부른다. 당집 아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빌던 무속신앙이 휴전으로 바다가 막히면서 힘을 잃어 그 자리를 교회가 대신하고 있다. 교회가 이 섬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농협 앞에서 보면 볼음교회와 볼음보건지소가 보인다.

볼음도에서 살고 있는 주민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여느 섬과 같이 병원 문제이다. 지금은 볼음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가 상주해 있지만 보건지소가 세워지고 공중보건의가 배치된 것은 4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볼음도는 민통선 지역이기 때문에 바로 헬기를 띄울 수가 없고, 행정선등으로 주문도로 이동해서 주문도에서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하니,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다. 

나들길은 마을을 통과하면서 볼음노인회관을 지나고 가정집 같은 느낌의 서도파출소 볼음분소도 우산 없이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스쳐간다. 

 

부고개를 넘어 출발할 때 지났던 물엄곶으로 가던 갈림길을 만나고 볼음도선착장에 도착하니 13:57분이다.

볼음도 대합실에 매표는 오후 02:00부터 판매한다고 적혀있어 몇 분을 기다린다. 주문도 발 14:30분이라서 40분 이상 여유가 있다. 대합실 옆 벤치에서 남은 맥주 한 캔을 음미하며 강화나들길 13코스를 마무리한다. 주문도에서 출발한 배는 불음도선착장에서 14:48에 선수선착장을 향한다.

 

볼음도와 말도 사이 맹곶수로는 다양한 어종과 새우잡이로 연중 몰려든 어선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섬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민간인통제선과 어로저지선이 그어지면서 어부들과 젊은 층이 섬을 떠나갔고, 아이들이 없자 하나 있던 학교마저 2019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주민들만이 갯벌과 논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는 볼음도이다. 자녀가 있어도 학교를 보낼 수 없으면 젊은 주민이 생활하기는 쉽지 않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볼음도는 나중에 어떻게 변해갈까...

볼음도는 둘레길 돌 듯이 한 나절 후딱 돌고 나오기는 왠지 미련이 남는 섬이다. 트랙터에 얹혀 30분 멀리 갯벌로 나가 가레질로 조개의 왕이라서 상합이라고 부르는 백합을 캐는 재미를 놓쳤기 때문이고, 저어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두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부 4쌍 정도 1박2일 이 섬으로 가면 딱이다. 그런 날을 기대해 보자. 

 

회색으로 변한 선수선착장. 47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볼음도선착장을 출발할 때부터 4시간 가량을 빵빵한 에어컨에 의한 추위와 맞장뜨며 집에 도착하니 김여사 눈초리가 사납다. 선수선착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에다가 내 핸드폰 밧데리가 다되어 연락도 안되니 비 온 날씨에 걱정 엄청한 모양이다. 둘이어도 걱정을 덜었을 텐데. 선사에 전화로 확인까지 했다는 얘기...  집나서면 식구들 걱정하지 않도록 재 때에 연락하자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