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서울한양도성길. 흥인지문,남산구간

자어즐 2022. 5. 7. 22:13

오늘은 대건이륙 친구들과 한양도성길 이어가는 날이다. 10:00에 동대문역 7번 출구에서 만나 남산으로 걸으려고 한다. 남산은 서울의 지리적 중심이고 서울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휴식처이다. 많은 역사가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남산을 고루고루 보고픈 마음은 있어도 지나 다니면서나 주위 산을 오르며 바라보는 대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시간을 조금만 내면 언제든지 갈 수 있기에 받는 불이익이고,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르는 재미가 없는 산으로 절하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외국에서 온 양반에게 서울 야경을 보여주러 N서울타워를 올랐던 게 몇 해가 되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내사산 안의 강북도심을 품은 남산의 도성을 따라 끊어진 부분을 이어 가며 친구들과 여유 있게 걸음을 즐긴다.

 

흥인지문 구간의 남소문 광희문은 인조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려고 빠져나간 문이다. 순조도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린 걸 보면 지금 러시아와 전쟁에서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사수하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아 대통령의 방어와 항전이 한양도성의 성곽을 따라 가는 걸으며 연상되게 한다. 금방 손들 것으로 예상했는데 두 달 반이 지나 장기전으로 가는 모양새라 지도자의 의지와 국민들의 단결이 굉장한 힘임을 보여준다.

 

한양도성의 축조 주목적이 외부 침략에서의 방어여서 괜히 우크라이나 상황이 소환되었다. 일곱이서 오붓하게 흥인지문을 출발한다.

 

1. 누구가 : 덕우, 병희, 성채, 승섭, 윤배, 철순이랑 일곱이서

2. 언   제 : 2022. 05. 07(토)

3. 어디로 : 서울 한양도성길. 흥인지문구간, 남산구간

4. 얼마나 : 3시간 50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 : 흥인지문 -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 광희문 - 장충체육관 - 국립극장 - 남산팔각정 광장 - 백범광장 - 남대문시장(막내횟집) - 숭례문 - 서울역

 

10:07 동대문역 7번출구, 경성궤도회사터 표지판, 보물1호 흥인지문(興仁之門)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큰 문으로 ‘동대문’이라고도 하는데, 1397년 도성을 쌓을 때 함께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세워졌으며 1452년에 중수하였다.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어 오다가 고종 6년(1869)에 이르러 전반적인 개축이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의 바깥쪽에는 무사석 한쪽에서부터 반원형의 평면을 이룬 옹성(甕城)을 쌓아 적에 대한 방비를 견고히 하였는데, 도성 내의 여덟 개의 성문 중 옹성을 갖춘 것은 이 문뿐이다. 이 옹성 역시 창건될 때부터 마련된 것이며, 고종 때 다시 개축되었다. 또한 숭례문(남대문)이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데 비하여,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천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사적제 461호 오간수문터, 동대문시장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에는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이 있었다. 이 부근은 서울에서 가장 지대가 낮아서 내사산에서 내려온 물이 모두 이곳을 거쳐 도성 밖으로 흘러나갔다. 성벽이 청계천을 만나는 위치에는 수문들이 이어져 있었다. 현재의 오간수문은 추정 재현하였고, 오간수문이 있던 자리만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길 건너 평화시장의 간판이 눈에 든다. 1905년에 우리나라 최초 민영(民營) 도시 상설시장 광장시장을 기점으로 동대문 시장 상권은 계속 동쪽으로 확장되어 현재는 청계천 물길을 따라 광장시장 · 방산시장 · 동대문 종합시장 · 평화시장 등이 늘어서 있다. 이 거대한 시장 지역은 의류, 패션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간수문

남산의 개울물을 도성 밖으로 흘려보냈던 시설로 2칸의 반원형 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간수문이라 한다. 오랜 기간 동대문운동장 관중석 밑에 매몰되어 있다가 2009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을 추진하면서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1925년 일제는 일본 왕세자 결혼 기념으로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었는데, 성벽을 이용하여 관중석을 만들었다. 경성운동장은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가 ‘88올림픽(제24회 서울 올림픽) 이후 다시 동대문운동장이 되었다.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엄청 인기 있었던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준결승 이상 올라가면 응원 버스를 동원하여 응원을 왔던 곳이기도 하다.

근현대 한국 스포츠의 중심지였던 이 운동장이 헐린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벽의 일부와 이간수문, 치성(雉城), 하도 암으로 추정되는 건물 유구 등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이간수문은 원 자리에 있으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 있던 건물 유구는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이 자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내 동대문역사관에서 볼 수 있다. 동대문운동장을 기념하기 위해 남긴 야간경기용 조명탑 2기와 성화대도 자리한다.

 

10:25 한양공고앞 교차로.
10:27 광희문(光熙門)

광희문(光熙門)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문이다.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성광의 끝부분에서 우로 틀고 몇 발자국에 좌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한 친구가 이 돌은 도성의 성곽에 있었던 돌이 것 같다면 손가락을 가리킨다.

 

장충동 주택지역

광희문 성벽을 따라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서면 한양도성은 다시 자취를 감춘다. 1930년대에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이 일대에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으며, 해방 후 1960~70년대에 신축된 주택들도 성벽을 파괴하였다. 현재 성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10;43 장충체육관. 서울한양도성길 흥인지문구간 끝, 남산구간 시작

장충동 주택가를 지나면 한길 건너 신라호텔 건물과 그 앞에 장충체육관이 보인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 개장한 국내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2015년 1월 리모델링을 통해 재개장한 시립 체육시설이다. 체육관 규모는 지하 2층, 지상 3층 건물로 관람석은 4,507석이며, 체육관 외부는 원의 형태이고 돔으로 된 지붕을 가지고 있다. 체육관 내부의 원형 코트는 배구, 농구, 핸드볼 경기가 가능하고 각종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프로레슬링, 한국 최초 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 선수의 복싱, 체육관에서 대통령 선거 등의 경기와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장충체육관 뒤 성곽길

평지부의 석성은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으며, 상대적으로 큰 돌을 아랫부분에 놓아 균형을 유지한 형태의 성벽으로 대부분 세종 때 쌓은 것인데 장충체육관 뒷길에서 잘 볼 수 있다. 성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생(生)’ 자 (천자문 42번째)와 ‘곤(崑)’ 자 (천자문 47번째)가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찾을 수 있다. 이 구간의 성벽은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쌓았다.

 

각자성석

경산시면(慶山始面), 흥해시면(興海始面)로 새겨진 성돌은 경상도 경산현(경북 경산시)과 경상도 흥해군(포항시 흥해읍) 백성들이 공사를 담당한 구간의 시점을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축성에 관련된 기록을 새긴 성동을 각자성석이라고 한다.

 

성 밖에서 성 안 길을 걷는다. 민주통화자문회의 뒤를 통과. 신당동 약수동의 모습도 있다.
11:05 다산팔각정이 옆으로 보이는 전망대. 관악산이 멀리 보인다. 테니스장, 골프연습장 옆으로 데크 길은 이어진다.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
11:15 국립극장. 남산공원 글자 뒤 김용환 지사 동상. 재일 거류민 단장으로 동포의 단결과 조직 강화를 위해 힘쓰다 괴한의 습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한 지사.

1973년 장충동에 건립된 국립 공연, 예술 종합극장이다. 이듬해 광복절 경축식 행사 도중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해오름극장(대극장), 달오름극장(소극장), 별오름극장, 하늘극장(원형 야외무대) 등이 있다.

 

남산 동쪽 나무 계단길.

태조 시기에 축성된 성벽의 형태가 나무 계단 길 옆으로 가파르게 연결되어 있다. 숨 고르기 할 때쯤에 성벽을 넘어가는 전망대를 만난다. 전망대 계단을 오르기 전에 성벽의 축성시기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때의 축성 모양을 설명한 안내판이 있다. 태조 때의 축성한 성돌의 모양은 자연석을 거친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했다.

 

11:31 전망대에서

전망대에 서면 아래에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듯한 성벽의 모습이 있고 북으로 북한산와 강북의 서울이 있다. 남동에는 한강 넘어 롯데월드타워도 보인다. 지나온 신라호텔, 반얀트리, 국립극장도 눈으로 다시 더듬어 본다.

 

전망대를 내려서면 국립극장 600m / 목멱산봉수대 1.0km표지판이 서 있고 N서울타워가 얼굴 내밀기 시작한다.

남산공원길 포장도로로 나가기 전 정자가 있는 휴식공간 옆에 자리를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3S 총무의 전 세트와 문어숙회, 멍게가 입맛을 돋운다. 아침 일찍 십여 가지 속을 넣어 직접 말아 왔다는 친구의 두툼한 김밥도 맛있다. 거의 한 시간 곡차랑 얘기 나눈다.

 

12:53 N서울타워 팔각정 광장

남산은 높이가 262m이며, 목멱산, 인경산, 마뫼로도 불렸다.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때 능선을 따라 도성을 축성했으나 현재는 성곽의 일부만 남아 있다. 남산타워라고도 하는 N서울타워가 솟아 있다.

 

광장 옆 전망대에서 안산, 인왕산, 북악산, 북도수불의 산과 앞의 건물군에서 건물 찾기를 한다. 청와대, 한국은행, 친구가 근무했던 L사, S사 건물이 어디인고 하니...
N서울타워. 사랑의 자물쇠.

남산 정상에 우뚝 솟은 탑은 전파 송출 및 관광을 위한 N서울타워다. 탑 높이 237m이고 해발 480m 높이에서 360도 회전하며 서울시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명소이다. 1969년 수도권에 TV와 라디오 전파를 송출하는 종합 전파탑으로 세워졌다가 1980년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남산타워, 서울타워로 불리기도 하는 이 타워는 2000년 YTN 방송국이 인수한 후 개보수하여 2005년 복합 문화공간인 N서울타워로 재탄생하였다. 2층에서 한양도성에 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목멱산 봉수대터

외적의 칩입이 있을 때 불을 피워 알리는 것을 봉(烽)이라 하고 땔나무에 불을 붙여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을 수(燧)라 한다. 곧 烽燧는 밤에는 휏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보를 전하는 통신 방법이다. 목멱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전국 팔도에서 올리는 봉수의 종착점이었다. 평시에는 1개의 봉수를 올렸으며, 변란이 생기면 위급한 정도에 따라 2개부터 5개까지 올렸다. 목멱산 봉수대는 세종 5년(1423)에 설치되어 1895년까지 500여 년 간 존속하였다. 현재의 봉수대는 1993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다.

 

남산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 잠두봉 포토 아일랜드

남산 서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 하여 예부터 잠두봉이라 불렸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신궁 배전(拜殿, 방문객들이 절하며 참배하는 곳)터. 시기별 축성 양식 변화를 확인항 수 있는 약 189m의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서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13:37 안중근 의사 기념관

見利思義 見危授命 [견리사의 견위수명.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

合成散敗 萬古定理 [합성산퍠 만고정리. 합하면 이루고, 흩어지면 패한다. 이는 만고의 정한 이치다.]

 

13:43 남산 백범광장(南山 白凡廣場). 백범 김구 선생,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

돈의문터(서대문) 강북삼성병원까지가 걸을 계획이었는데 S그룹 고위직에 있었던 친구가 예전이 이 근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간혹 들렀던 남대문 시장 내 횟집이 있다는 얘기를 흘린다. 가성비도 좋다고 한다. 모두들 은근히 여기서 끝내기를 바라는 눈치다. 산 정상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조금 적게 간다고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다음에 조금 더 가면 되는 것이라 걸음을 조금 줄인다. 

 

뒷풀이 장소 막내횟집

2층 계단을 올라 횟집 문을 여니 빈 테이블이 없다. 시끌벅적하다. 모처럼의 방문인데도 성격 화통한 사장님 친구를 반갑게 맞아 준다. 점심도 먹고 가끔 직원들 데리고 회식도 했다니 묶은 단골이라 그럴 만도 하다. 바로 자리가 나오자 친구가 "누님 모둠 대자 2개 주시요"한다. 우리보다 두 살이 많단다. 대 한 접시에 55,000원이고 회덮밥은 7,000원이라니 말 그대로 가격이 착하다. 유쾌하고 신나는 사장님의 영향인지 종업원들의 표정과 행동도 밝아서 좋다.

'처음 오신 손님은 처음이라 반갑고, 두 번 오신 손님은 구면이라 반갑고, 세 번 오신 손님은 단골이라 반갑고, 네 번 오신 손님은 가족이라 반갑습니다.' 식당에 걸린 포스터다.

 

숭례문[崇禮門].

사극에서나 봄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웬일인가 했더니 3월 15일부터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숭례문의 성문을 여닫는 개폐의식을 한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성문을 열고 오후 3시 30분에 닫는 옛날 한양 성곽을 지키는 파수의식의 하난데 시간을 봤을 때 막 성문을 닫는 의식이 끝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