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강화나들길 4코스. 해지는 마을 길

자어즐 2022. 1. 15. 22:18

등산하는 게 아니고 둘레길 걷는 데는 허리에 매단 Sack이면 충분하다. 커피 내린 보온병, 따뜻하게 데운 사케, 물과 사과 1개가 들어 간다. 외포리 선착장 인근에 횟집들이 있으니 평소보다 볼륨을 줄이자고 해두었지만 섭이의 배낭 무게는 변하지 않고 어묵탕, 부침개, 두부, 쌀국수, 김은 기본으로 채워져 있을 게다.

지난번에 8시에 약속했을 때 700-1번 버스가 50분 후에나 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 오늘은 8시 30분에 만나기로 한다. 탁이가 동행한다고 콜이 왔는데 갑작스러운 대구행으로 오늘도 둘의 데이트다.

일주일 내 추웠던 날씨가 오늘은 많이 풀려 축복받은 기분으로 집을 나서면서 검단사거리역 인근 버스정류장의 버스시간을 검색한다. 내 전철 도착시간과는 여유가 있다. 그런데 이르게 도착한 섭이 왈 우리가 타려던 버스가 좀 전에 지나가 버렸다 한다. 버스시간 도착정보를 알리는 전광판에 다음 버스는 한 시간 후를 가리킨다. 나의 계산 잘못을 의심하게 되고 손님들이 없어 그냥 내달려 미친년 널 뛰듯 한 버스를 원망하지만 이미 버스 떠난 뒤다. 차를 가지고 나올 걸 하는 후회도 하며 차선으로 강화버스터미널을 경유하는 우회 경로로 변경한다. 

 

강화나들길 4코스는 안도면 능내리 가릉에서 외포리 망향돈대까지 11.5km, 3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는 코스로 강화나들길 코스 중에 짧은 구간이고 길도 평탄해서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해지는 마을 길의 별칭이 주는 이미지는 가을이고 붉은 해가 넘어가는 해안의 마을을 연상케 한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길일 게다.

오늘 이 길에서 겨울바다의 추위에도 선착장에 붙은 배들이 느긋해 보이는 건평항이 옆에 있고 앞에는 석모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천상병귀천공원에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는 귀천의 시구절을 읊어 보고, 도상으로는 찾기 어려운 건평돈대를 보러 길에서 살짝 벗어나고도 싶다. 외포리 젓갈의 짠내음은 어떨지 한번 가보자.

 

1. 누구가 : 3S랑 둘이

2. 언   제 : 2022. 01. 15(토)

3. 어디로 : 강화나들길 4코스[해지는 마을길]. 강화 가릉-외포리 망향돈대

4. 얼마나 : 4시간 30분[식사, 알바시간 포함]

 

▼ 이동경로 : 탑재삼거리 - 가릉주차장 - 강화가릉, 능내리 석실분 - [진강산으르 알바] - 갈멜산금식기도원 - 하곡 전제두 묘 - 아우약수터 - 이건창 묘 - 건평항 -

                   천상병귀천공원 - 건평돈대 - 외포항[수산물직판장] - 삼별초항몽유허비 - 망양돈대 - 외포리버스정류장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의 버스 운행시간표

한 번에 갈 수 있는 걸 강화 여객자동차 터미널에서 탑재 삼거리행으로 환승해서 본의 아니게 돈다. 환승을 위한 대기 시간이 길지 않아 그나마 대행이다. 검단사거리역에서 거의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초지대교를 건너는 것보다는 30분 더 걸린 듯하다.

 

12:23 탑재삼거리 버스정류장/ 10:28 가릉주차장 / 10:34 강화가릉

강화나들길 3코스에 지난 길을 다시 왔다. 버스정류장에서 십 분이 안 걸린다. 그날은 전면만 보고 지나쳤지만 오늘은 능내리 석실분도 구경하고 가릉도 한 바퀴 돈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江華 陵內里 石室墳]

능내리의 지명은 능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능은 강화 가릉을 일컫는데 그 옆으로 70m 떨어진 능내리 석실분도 주목할만한 능이다.

능내리 석실분의 현 모습은 발굴조사 이후에 복원이 된 경우로, 석실분은 크게 4단 축대로 조성되었다. 전체 규모로 보면 남북 40m, 동서 너비가 22m로 외형적인 형태로만 보면 마치 고려 고종의 홍릉과 원덕태후 유 씨의 곤릉과 유사하다. 능내리 석실분의 경우 누구의 안식처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릉급 고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 능내리 석실분에서 출토된 ‘은제도금 유물’을 두고 피장자가 남성보다 여성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구조는 석실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바깥으로 난간석과 석수가 지키는 형태이다.

 

강화 가릉

강화 가릉은 고려 원종(재위 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장익공 김약선의 딸로서 고종 22년(1235)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 해에 충렬왕을 낳았다. 지금의 자리에는 고종 31년(1244) 경 사망한 뒤 모신 것으로 짐작한다. 고려 원종 3년(1262)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무덤 주변의 석물은 부서져 없어졌고, 봉분도 무너진 것을 197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손질하여 고쳤단다.

 

가릉을 지나 이정목을 따라가면 바로 만난 삼거리에서 우로 가도록 유도한다. 몸을 틀면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그곳에서 좌로 리본이 묶여 있다. 포탈의 지도와는 다르게 길은 아래 방향으로 이어지고 포장된 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군데군데 묶인 리본을 따라간다. 리본은 담 기둥에도 있고 경운기 적재함 부분에도 걸려 있다.

   

이곳은 하동정씨 선산이라는 안내판 옆에 갈멜산 기도원 방향표시가 있다. '친구야 직진이 아니고 좌로'. 방향을 꺾으니 리본이 촘촘히 걸려 있다.

 

서해랑길과 강화나들길의 표지가 새것으로 걸려 있는 그림을 찍고 나온 길에서 직진을 해야하는데 우측으로 무심코 도는 바람에 원위치에 40분이나 걸렸다.

방향을 잘못 잡은 길은 오르막이 많은 등로다. 아마도 진강산으로 오르는 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표지가 사라져 길을 의심하지만 행여 다시 올라와야 하는 황당함을 감당하기 싫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몸은 웬만큼 더워지고 돌아가는 길은 멀어진다. 앞 쪽에 낯 선 이들의 기척에 개 짖는 소리가 길을 막는다. 수십 마리는 되지 않을까 싶다. 사료를 주고 있는 양반에게 길을 물으니 진강산을 오르는 줄 알고 옆으로 터진 등로를 가리킨다. 결국은 후퇴다. 

 

엉뚱한 곳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
11:55 갈멜산금식기도원
12:00 조선 후기 학자이자 강화학의 태두인 정제두(1649~1736)의 묘

정몽주의 후손으로 양명학의 사상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했다. 어려서 이상익에게 배웠고, 10여 세 때부터 박세채를 스승으로 섬겼다.
1668년 초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연구에만 힘썼다. 이 무렵부터 공소에 빠진 주자학에 반대하고 양명학에 심취했다.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이 알려져 30여 회나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거절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1689년 안산에 옮겨 살며 양명학에 더욱 몰두했으며, 이 시기에 <학변>, <존언>을 저술했다. 1709년에는 주거지를 강화도 하곡으로 옮겼고, 1728년 우참찬, 1736년 세자이사로 임명되었다. -다음백과-

 

정제두의 묘 앞에는 아버지 겅상징과 어머니 한산 이씨의 합장묘다. 묘는 도로와 인접해 있다.

김취려[金就礪]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거란 군사를 강동성으로 쫓아내어 북방을 편안하게 했다. 사람됨이 정직 검약하였고, 군사통제에 엄격 공정하며, 진실로 충성되고 의로운 사람으로 문화시중을 지낸 이 양반의 묘 입구를 지나는 고개는 하우고개다. 이 고개를 넘어 왼쪽 길로 들어가면 아우약수터를 지난다.

 

독채 펜션 자전거탄풍경 이 있는 작은 고개를 넘으면 석모도가 눈앞에 나타나며 시야가 갑자기 넓어진다. 마을길 옆에는 건평리 다목적 회관이 먼저 보인다.
건평교회를 맞은편에 이건창묘 화살표 안내판이 있다. 도상으로는 이건창 묘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길에서 50m 정도에 이건창묘가 있다.
12:34 이건창 묘

이건창의 문필은 송대(宋代)의 대가인 증공(曾鞏)·왕안석(王安石)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정제두(鄭齊斗)가 양명학(陽明學)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학풍을 세운 이른바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학문태도를 실천하였다.

한말의 대문장가이며 대시인인 김택영이 우리나라 역대의 문장가를 추숭할 때에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라 하여 아홉 사람을 선정하였다. 그 최후의 사람으로 이건창을 꼽은 것을 보면, 당대의 문장가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대(全代)를 통해 몇 안 되는 대문장가의 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성품이 매우 곧아 병인양요 때에 강화에서 자결한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개화를 뿌리치고 철저한 척양척왜주의자로 일관하였다. 저서로는 「명미당집(明美堂集)」「당의통략」 등이 있는데, 비교적 공정한 입장에서 당쟁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기술한 명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평항
12:50 천상병귀천공원

천상병귀천공원에서 보면 선수로 내려가는 마니산 자락이 멀리에 병풍을 치고, 아래는 건평나루가 다소곳이 앉아있다. 앞에는 석모도가 자리해 해가지면 석양에 한 폭의 푸근한 그림이 되지 싶다. 강화나들길 4코스의 일부분이 된 공원에는 진강산 벌대총 전설 이야기가 있고 강화 출신의 작사, 작곡가가 만든 그리운 금강산의 노래비도 있다. 어린왕자도 바다를 보며 시선 고정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조각가 박상희의 '새가되어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천상병[千祥炳]은 문단의 마지막 순수 시인으로 평가되는 우리나라의 시인(1930~1993). 《문예》에 <강물>, <갈매기>가 추천되어 등단한 후, 많은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음주를 좋아하고 기행을 일삼아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 <귀천>, 시집 《새》 등을 남겼고, 유고 시집에 《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있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시인이 그리워하던 고향 바다를 여비가 없어 가질 못하고 강화도를 드나들며 향수를 달래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건평나루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끄적인 것을 고향 친구 박제상 시인에게 건네준 메모가 '歸泉'이다.

 

천상병 시인의 해맑은 웃음 아래 자리를 깐다. 어묵탕과 전에 따뜻한 사케가 몸 구석구석을 퍼져나가니 세상 부러운 게 없다. 여기가 하늘이다.

강화나들길 4코스를 망양돈대에서 가릉으로 거꾸로 가는 나그네들이 간간이 지나간다. 막걸리가 아니어서 떠오르는 시상은 없어도 기분은 최고다.

 

13:48 건평돈대[乾坪墩臺]

3,4분 도로를 걷다가 이정표 없이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이 있다. 건평돈대 가는 길인지 긴가민가하면서 무작성 들고 본다. 농막 같은 곳에 있는 주민에게 건평돈대가는 길을 물으니 오른쪽으로 굽어 오르게 가르쳐 준다. 작은 밭을 건너니 만들어진 돈대길을 만난다. 건평리에서 오는 길이 따로 있는가 보다.

 

인천시는 강화군 양도면 건평돈대(인천시 기념물 제38호)에서 16세기 이후 조선군의 주요 화포인 불랑기(佛狼機)가 모포 1문이 실전 배치된 장소에서 처음 확인되었다고 한다. 불랑기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일종으로 포문으로 포탄,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 화포다.

석모도 앞바다를 향해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이 돈대는 가로 36m, 세로 26m의 직사각형 모양이다.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 4문이 갖춰져 있다.

 

지금까지 본 돈대 중에 뷰가 좋기로는 손가락 꼽을만 하다.
찻길 옆으로 걷는 길에 좀전에 올랐던 건평돈대가 가파른 위에 올려져 있고 멀리 석모대교가 섬을 연결하고 있다. 발자국 소리에 놀란 오리들이 후다닥 날개짓 한다.
14:36 외포리선착장. 강화나들길 스템프가 있는 해양경찰서 강화파출소.

외포리 선착장은 석모도를 찾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던 곳이 2017. 06에 석모대교가 개통되는 바람에 주문도등 강화 부속섬을 출입하는 여객터미널로 변해 배편 운항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썰렁해진 모습이다.

 

외포항에 있는 젓갈, 수산물 직판장의 안과 밖. 젓갈과 말린 생선, 활어도 있다.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을 나와서 외포횟집, 강화횟집 간판 사잇길로 강화나들길 4코스 마지막을 향한다. 길지 않은 데크길에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망둥어 한두 마리가 박스에 들어 있다. 길의 끝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삼별초항몽유허비를 지킨다.

 

14:53 삼별초항몽유허비 인긍의 강화나들길 종점 이정목.
삼별초항몽유허비, 진도개상

삼별초가 강화도 어느 곳에서 출항했는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강화군은 삼별초의 출항지를 외포항으로 보고 있어 인근에 ‘삼별초항쟁비’가 설치하고 있다. 몽골 침략에 대한 삼별초의 항쟁을 기려 강화군민들이 1993년에 세웠단다. 항쟁비 앞에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三別抄軍護國抗蒙遺墟碑)’라 쓰여 있다.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 취지가 적혀 있다.

삼별초항쟁비 앞에는 진도군의 상징인 진돗개의 상이 있다. 진도군이 삼별초의 역사를 바탕으로 자매결연한 강화군에 2005년 기증한 것이라고.

삼별초가 강화에서 진도, 진도에서 제주까지 이동하며 여몽연합군이 무너질 때까지 항쟁한 기념으로 제주 돌하르방도 제주에서 한 쌍을 기증받았다.

 

14:55 망양돈대[望洋墩臺]

망양돈대에서 해안을 잠시 감시하다 외포항수산물 직판장으로 내려온다. 서울횟집, 천서리횟집, 강화횟집들의 맛이 아무리 좋다 유혹해봐야 배부른데 넘어갈 이유가 없다. 직판장 맞은편 길로 해서 외포리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강화터미널로 가는 62번 버스가 곧 출발할 듯 시동을 걸고 있다. 외포리에서 승하차하는 손님들이 적은 탓에 25분도 안 걸려 강화터미널에 데려준다.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하며 검단 사거리 먹자골목으로 발길이 향한다. 조개찜, 대방어를 먹은 전적이 있어 오늘은 '인계동껍데기' 간판을 찍는다. 향정껍데기를 먹고 부족해 벌집껍데기를 추가한다. 콩가루, 카레가루, 칠리소스와 곁들인 맛이 고소하고 쫀득하다. 가성비도 괜찮아서 다음에 다시 오자고 할 수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