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서울둘레길 8-5(+)코스

자어즐 2021. 11. 6. 22:21

오늘은 서울둘레길 157km의 전구간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지난해 초에 시작할 때만 해도 한 달에 한번 걷는 친구들과 일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출발한 것이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꼽빼기로 걸렸다.

작년 팔월 4코스인 대모산-우면산 코스를 걷던 중에 만난 소나기에 속 옷도 무사하지 못하고 빗물이 옷을 타고 들어와 양말도 축축하게 젖었던 적이 있었고, 몇 개월 건너 뛰어 7코스 봉산 앵봉산 코스를 가려고 모인 장소, 가양역에서부터 빗방울이 시작되더니 거칠줄을 몰라 중도에 친구 사무실에 죽치던 기억, 그 때 불광천 물줄기를 꺼꾸로 올라오는 잉어들의 사투도 인상 깊었다. 뒷풀이 하려고 들어간 식당 마다 쫓겨나와 어쩔 수 없이 네명이 조를 맞춰 각각 다른 식당으로 가야했던 요상한 상황도 있었다. 서울둘레길 스템프북을 두고 와서 재탕한 북한산둘레길 구름정원길...

 

11월 1일부터 변화된 정책이 실시된 위드코르나 1단계를 오늘 실감한다. 도봉산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도봉산역으로 가는 길과 식당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코르나 이전의 모습이 이것이고 정상적인 일상인데 마음 한 구석에는 656일의 코르나 상황이 우려를 만든다. 일부는 제외지만 영업 시간이 풀리고 사적 모임 인원도 10명이어서 오늘 뒷풀이는 눈치 볼 일이 없다. 서울둘레길에 평균 13명이 참석해서 오늘 더 많이 왔다해도 오후 4시 동기 혼사에 갈 친구들이 빠지면 문제가 없었는데.

그 이유로 출발시간을 1시간 앞당겨 공고가 된다. 

'With Corona'는 우리만 아는 Konglish다. Living with coronavirus로 표현하는 게 맞겠지만 콩글리시면 어떠랴 쓰기 편하면 되는 거지.

 

1. 누구가 : 대건이륙산친구 아홉. 덕우, 병희, 석준, 수혁, 승섭, 윤배, 재석, 재현, 나.

2. 언   제 : 2021. 11. 06(토)

3. 어디로 : 서울둘레길 8-5(+)코스 : 북한산둘레길 소나무숲길, 왕실묘역길, 방학동길, 도봉옛길

4. 얼마나 : 4.19민주묘지역→도봉탐방지원센터.  4시간 7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 : 4.19 민주묘지역 - 솔밭근린공원 - 손병희묘소 - 봉황각 - 북한산우의역 - 왕실묘역시작점[스템프] - 연산군묘 - 쌍둥이전망대 - 무수골 - 도봉사

                 - 도봉탐방지원센터[스템프] - 간이식당 - 창포원관리사무소 - 도봉산역

 

4.19민주묘지역 2번출구에서 솔밭근린공원 입구로 가는 한길에는 도봉산사령부가 마중한다.

1번 출구로 잘못 나와서 큰길을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승섭이와 덕우가 손 흔든다. 요즘 결혼시즌이고 위드코르나로 못간 여행에 봇물 터지는 격이라 여덟이 만났다. 지금시간 09:08분 지난번에 마무리한 솔밭근린공원으로 이동한다.

 

09:13 솔밭근린공원

북한산둘레길 중 1구간은 유난히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 숲길이다. 특히나 여기 덕성여대 맞능 편 주택가에 조성된 솔밭근린공원에는 곶곶이 혹은 비스틈히 하늘을 향한 소나무들이 빼곡하여 멋진 쉼을 만들어 준다. 무려 천 그루에 가까운 소나무가 멋을 내고 있다. 실제 971그루의 소나무라는데 한가한 양반은 한번 헤아려 보시라.

 

솔밭근린공원을 지나면 메이츠화재 연수원 담벼락을 따라 길을 잇는다. 이용문장군묘소입구라는 팻말을 지나 백m 거리에 소나무 숲길을 알리는 아치가 있다. 서울둘레길 1구간 소나무숲길은 우이 우이령길 입구에서 솔밭근린공원 상단까지 3.1km 거리에 난이도가 낮은 코스다.

 

조용하고 아늑한 숲길이다. 관상용 소나무가 아니어도 좋다. 무심코 걷다가 맑은 공기, 가을 색을 보며 사소한 것에 대한 반가움을 느낀다. 100m 앞 포토포인트라는 이정표를 지나서 찾은 곳은 소나무가 둘러 싸고 쉼 벤치가 있는 공간이다. 소나무랑 한장 박는다.

 

우미제일교회로 나오는 곳은 철망문으로 구획을 구분했고 그리고 숲길과 마을을 구분하는 아치 옆에는 제발 조용히 지나가라는 판넬이 붙었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손병희 선생이 3.1독립 선언을 앞두고 우이동 봉황각에서 천도교 간부들에게 한 말 중.

 

09:47 의암 손병희 선생 묘소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천도교 제3세 교주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출판사 普成社를 창립하고 普成 ·同德 등의 학교를 인수하여 교육·문화사업에 힘썼다.

 

문 잠긴 손 선생의 묘소를 나와 만난 도로를 좌로 틀면 왼쪽에 서울시 유형문화제 제2호 봉황각입구가 있다. 봉황각은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심어주는 한편 주권을 찾기위해 지도자를 양성시킨 곳으로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3.1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봉황각 길 건너의 북한산국립공원 우의분소를 끼고 돌아 우이천 지류인 백운천을 따라간다.

 

백운천 길의 가을. 우이구곡 중 명옥탄 안내판이 백운천으로 들어 온 초입에 있었다.
10:00 북한산우이역

같이 가던 친구들이 사라졌다. 우의분소를 돌아 백운천변을 혼자 걷는다. 혹시 도선사 방향으로 알바한 것은 아닌지 자꾸 뒤를 돌아 본다. 연락을 하니 북한산우의역이고 여기로 바로 온 재석이랑 만났단다. 손병희 선생묘에서 나와 봉황각 쪽으로 틀지 않고 우로 도로를 따라 바로 내려 왔단다.

쾌청한 날씨에 뒤로 북한산 사령부가 선명하다. 역 주변으로 산객들이 넘친다. 이렇게 복작대는 게 정상인데 비정상으로 보이는 건 수상한 시절이 만들어 낸 굴절이다.

 

10:11 황실묘역길 시작점. 서울둘레길 스템프가 있다.

북한산둘레길 20구간 왕실묘역길은 우이 우이령 입구에서 정의공주묘까지 1.6km로 짧은 구간이다. 연산군묘를 구경한다 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조선 열번째 왕인 연산군 묘와 한글훈민정음 창제에 기여한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 묘가 있어 왕실묘역길로 명명했단다. 

 

10:25 방학동 은행나무[放鶴洞 銀杏나무]

연산군 묘 맞은 편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국립산림과학원의 과학적 수령조사 결과 550±50년으로 측정되었단다. 지금은 10년 정도 더해야 겠지만. 서울시 소재 수목 중에서도 최고령에 해당하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 다음으로 수령이 오래된 것이다. 장수동 은행나무에 비해 아담한 편?이지만 수형이 아름답다.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시의 묘
정의공주 묘역 옆에 조선 10대 왕 연산군, 우리문화 지킴이 전형필, 한글창제에 숨은 공신 정의공주에 대한 얘기가 걸려 있다.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년 ~ 1477년 2월 11일)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딸로 문종의 동생이자 세조의 누나이다. 언니인 정소공주가 일찍 죽는 바람에 세종대왕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총명하고 지혜로와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믾은 기여를 했다고 전한다. 남편은 양효공 안맹담이다.

 

10:34 방학동길 시작점. 옆으로 사천목씨재실이 있다.

서울둘레길 19구간 방학동길은 정의공주묘에서 무수골까지 3.1km 거리다. 바가지약수터와 도봉산 유일의 전망대 쌍둥이전망대를 경유한다. 거의가 숲길로 되어 있고 일부 구간 오름길도 있는 걷는 재미가 솔솔한 길이다. 걷는 시간은 한 시간 가량 소요된다. 

 

야생 멧돼지가 내려오는 것을 막는 철책 울타리.

"승섭아 베낭 무겁제 일찍 식당 차려야 나중에 하산 뒷풀이가 되든 친구 결혼식 딋풀이가 되던 또 먹을 수 있지 않겠냐" 하니 바로 장소 물색이다. 베낭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걸 보니 무겁기도 했겠다. 홍어 두팩에 수육, 김치해서 삼합의 구색을 맞추고, 3가지 전 두부, 오뎅탕 그리고 컵국수까지... 먹는 친구들 입이야 즐겁다마는 준비하고 짊어지고 온 수고가 가당찮다.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덕분에 50분간 입이 바쁘다. 먹으랴 마시랴 얘기하랴ㅎ.

 

배부른 상태에서 칠팔분 오름길에 가쁜 숨 고르니 방학능선 이정목이 있다. 새들 무리가 앉았나 했더니 새가 아니고 신갈나무 잎이다.
12:08 쌍둥이전망대

나무 사이로 보이던 도봉산 사령부를 아예 대놓고 감상하라고 전망대를 깔아준다. 굵직한 두개의 철기둥에 나선으로 타고 오른 계단 위로 두개의 공간을 하나로 붙였다. 두 기둥의 모양이 같아 쌍둥이고 하나는 오르는 계단 다른 것은 내려오는 계단이다. 전망대에 올라보면 도봉산 신선대에 오른 것 처럼 사방이 모두 터졌다. 한쪽은 북한산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을 중심으로 보여 주고 다른 쪽에는 도봉산의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이 키재기 한다. 뒤로 돌면 수락산이 앞만 보지 말란다.

 

쌍둥이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파노라마

問余何事栖璧山 (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느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말없이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숭아꽃 물에 떠서 아득히 가고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이곳은 별천지 인간세상 아니어라

산이 좋아서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사는 이유를 물으면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그냥 웃는 것으로 말을 대신한다. 강가에 복사꽃 흘러 가는 이곳이 인간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곳인데 웃는 것 외에 달리 답이 있겠냐는 이백의 산중문답이다.

 

12:32 쌍둥이 전망대에서 15분 걸어면 도봉옛길 출발점 무수골이다.

북한산 둘레길 18구간은 무수골에서 다락원까지 3.1km코스인데 서울둘레길은 도봉계곡 입구 통일교까지 같이 가다가 헤어진다.

 

서울둘레길은 세일교를 건너 윗무수골로 이어진다.

무수골이란 마을 이름은 1477년(성종8년)세종의 9번째 아들 영해군의 묘가 조성되면서 유래되었다 옛 명칭은 수철동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무수동으로 바뀌었으며 무수(無愁)골은 ‘무수울’이라고도 한다.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는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 세종이 먼저 간 아들의 묘를 찾아 왔다가,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마을이 윗말(무시울), 중간말, 아랫말로 나뉜단다.

무수골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는 1.7km 떨어져 있는 거리다.

 

윗무수골 아치에서 숲길로 들어서니 사징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낙옆이 말그대로 우수수 떨어진다. 류양신도비.
도봉탐방지원센터 0.7km 표지목을 지나면 무장애 탐방로 목재데크길 편도 220m가 설치되어 있다. 반만 서울둘레길이다. 전망대 쉼터에 가보았지만 걍 쉼터다.
12:59 무장애탐방로 입구. 보문능선으로 해서 우이암가는 길과 만난다.
도봉사

천년고찰 도봉사에서 지나 단풍을 구경하며 5분을 내려오면 단풍보다 더 화려하게 금색으로 치장한 능원사를 만난다.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보통 사찰 지붕에는 용머리 조각이 있기 마련인데 이 건물에는 금시조가 동자승을 태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대웅전 대신 용화전이 중앙 법당 역할을 한 게 특이하다. 한국 불교계에 100여개의 종파가 있는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미륵 기도 도량 能園寺란다. 삼사분 더 걸으면 통일교를 건너고 북한산국립공원 표지판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산둘레길과 찢어진다. 

13:15 도봉산탐방지원센터. 서울둘레길 마지막 스템프 날인 장소
포장마차 같은 간이 주점 부안집

일부 구간은 산객들로 어깨가 부딪힌다. 잠시 후 오후 4시에 동기 아들 결혼식에 등산복 입고 참석여부가 엊갈린다. 옷 갈아 입고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또 위드 코로나 전 상황이면 왠만하면 참석하지 않는 추세였는데 애매하다. 한 시간 정도의 여유에 여기 포장마차 같은 주점에서 파전 안주에 칠친주를 돌리며 의견을 조율한다. 칠친주는 칠분만에 친구가 되는 술이란 의미로 소주, 맥주, 사이다를 배합한 조제주이다. 사전에 그 동기랑 등산복으로 와도 된다는 통화가 있었다기에 실례냐 아니냐는 얘기였는데 결국은 대표로 세명이 인사를 하러 먼저 가고 나머지는 조금 늦게 뒤풀이 식당에서 합류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여러분은 실례인지 아닌지 어떤 의견이신가?

 

도봉산옆을 통과하여 서울둘레길 출발 지점인 서울창포원 입구를 들어섬으로 서울둘레길 157km 전구간을 완주한다. 

 

서울창포원 방문자센터에서 완주인증서 발급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