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강화나들길 1코스, 심도역사 문화길

자어즐 2021. 10. 3. 09:38

승섭아 토요일 계획없으면 강화나들길이나 해볼까나 하니 거절을 모르고 무조건 OK다. 접근성이 좋진 않지만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으로 해결해 볼 참이다. 그래서 검단사거리역으로 약속을 잡는다. 오늘 1코스가 시작되면 20코스가 있는 강화나들길 전코스를 언제쯤 끝낼지는 몰라도 시작이 반은 맞다. 두번의 토요일은 계약이 되어 있으니 하 달에 한두번이면 일년은 걸릴 듯하다. 코르나의 거리두기가 위드 코르나로 되었을 때의 얘기고 단체로 만나는 것이 계속 통제되면 단축될 수는 있다.

 

나들길은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을 뜻하고 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이 1906년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아 강화가 품고 길러냉 자연과 땅 위의 모든 것을 연결한 길이다. 강화도에 14개코스, 교동도와 석모도에 각 2개 코스, 주문도, 불음도 등 20개 코스 310.5km의 코스로 되어 있다. 나들길에는 바다가 있고 호수가 있고 생태보고의 세계5대 갯벌을 품고 있다. 섬 길마다 꽃피운 문화유산, 섬마다 사연이 담긴 섬, 역사의 섬 강화도의 모든 것이 강화나들길에 있단다.

 

강화버스터미널 관광안내소에 강화군의 보조금으로 지원제작되는 강화바른언론 9월 30일자 8절지크기의 16쪽 짜리 신문이 비치되어 있다. 그기에 배상복의 우리말 산책 코너에 코로나가 퍼뜨린 외래어를 정리한 것이 재미있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뜻하는 '팬데믹pandemic'은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감염병 세계적 유행'인데 말이 길어서 우리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듯하다. 머리좋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등장 시킨 검사방법 '드라이버 스루drive through'는 '승차검진' 으로 바꿔 부를 수 있고, 사람간의 접촉을 줄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많이 듣게 되는 '언택트untact'는 이제 비대면으로 입에 많이 익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기 어려워 이제는 더불어 살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따라 나온 개념이 '위드 코로나with corona'인데 국어원은 '코로나 일상'을 선정하고 있다. '브레이크수루 인펙션breakthrough infection'은 '돌파감염' '부스터샷booster shot,은 '추가 접종'으로 우리말이 자리를 잡았다. Corona blue 코르나 우울, post corona 코로나 이후, N차 감염은 연쇄감염, 코호트 격리는 동일 집단 격리, 스니즈 가드는 침방을 가림막 등등... 공공용어나 정책용어는 쉬울수록 효율성이 올라가게 마련이라 가급적 쉬운 우리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한다.

 

1. 누구가 : 승섭이랑 둘이

2. 언   제 : 2021. 10. 02(토)

3. 어디로 : 강화나들길 1코스 강화버스터미널 - 갑곶돈대

4. 얼마나 : 7시간 54분[휴식, 식사, 유적지 돌아보는 시간 포함]

 

▼ 이동경로 : 강화버스터미널 - 강화풍물시장 - 동문 - 성공회강화성당 - 용흥궁 - 진무영순교성지 - 고려궁지 - 강화향교 - 은수물 - 북문 - 북장대터 -

               대산침례교회 - 대산2리마을회관 - (박진화미술관) - 연미정[월곶돈대] - 옥개방죽 - 염주돈대 - 갑곶순교성지 - 갑곶돈대 - 버스정류소[현대아파트]

강화나들길 코스안내의 선과 실제 리본이나 방향표지판이 같지 않는 곳이 두세군데 있던데 변경되었으면 수정을 하면 좋겠고, 전반적으로 리본 등이 잘 표시되어 있지만 우리가 놓친 곳이 두군데가 있어서 헤매기도 했다. 

 

09:30 버스터미널 관광안내소

검단사거리역 1번 출구에서 승섭이와 만나 길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90번 버스를 탄다. 바쁜 게 없는 버스는 1시간 10분 만에 강화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안에 있는 관광안내소는 코르나19로 7월 13일 부터 개점휴업이다. 강화나들길 도보여권이 여기에서 받을 수 있다는데...

버스가 정차되어 있는 정류장 뒤로 넘어서 풍물시장으로 들어간다. 

 

강화풍물시장

강화풍물시장은 상설시장인 동시에 2,7일 장이 서는 오일장이기도 하다. 오는 날이 장날이고 시장안이 분주하다. 고추, 밤, 땅콩은 물런이고 강화특산물인 순무김치, 노란고구마,화문석, 젓갈류 등이 주인을 기다리고 불로초 뿔영지와 같은 약초들 까지 없는 것이 없는 듯하다. 이쁜 빗자루도 보인다.

 

강화나들길 리본/강화역사속 10인의 안내판/강화우체국.

왕의 길은 강화 도령으로 불리던 조선 25대 임금인 철종이 완위를 잇기 위해 한양가덩 길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조성한 길이다. 강화남문 안길에서 고려궁지까지 약500m 구간이다.

풍물시장을 지나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강화역사속 인물 10인의 안내판이 객을 맞이한다. 장무공 황형 장군, 어재연, 이건창, 양현수...윤집, 김상용.

강화대로를 건너 좁아지는 길로 들어가면 견자산을 넘어가게 되는데 리본은 그 길을 안내하지만 강화나들길 코스안내는 강화우체국을 끼고 돌도록 되어 있다.

 

09:53 강화산성 동문 앞 스템프 날인 장소. 1코스와 15코스 스템프가 있다.

강화산성 동문은 팔작지붕의 누각을 설치했고 출입문은 홍예문으로 만들어졌다. 동문 현판에는 望漢樓, 북쪽 현판에는 江都東門이라고 적혀 있다. 2004년에 복원되었으면 새로 생긴 나이는 17살 밖에 안되었네.

 

강화나들길 코스안내의 지도를 따라 동문 옆으로 따가 가니 원불교 강화교당 정문 앞에 키가 엄청 큰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다. 그리고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옛터 안내판 3개가 있다. 표지목에는 1코스가 없고 15코스 뿐이다. 아마도 아랫쪽 사진의 견자산을 넘어와서 동문 북쪽에서 통과하여 직진 우회전하는 것이 안내목이 가르키는 1코스인 듯하다.

 

강화유치원 모서리에 있는 표지목. 우리가 움직인 곳이 15코스이고 1코스의 화살표 방향은 다르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24호. 1900년에 한옥으로 지어진 대한성공회 성당이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Corfe,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강화성당은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성당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서쪽에 출입문을 두어 서구 형태를 취하면서 전체적으로는 배 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성당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후미에는 사제관을 배치하여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적이다. 목재는 압록강에서 운반해다가 사용하였으며, 경복궁 공사에 참여했던 대궐 목수가 건축을 맡았다.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용흥궁 출구.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초거였던 것을 강화유수 정기세가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 행랑채를 갖춘 용흥궁의 구조는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하고 있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용흥궁 비각.
심도직물 터 / 김상용 순절비

용흥궁에서 공원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에 굴뚝이 보인다. 이 굴뚝은 1947년 설립하여 2005년까지 1200명의 근로자가 근무했던 심도직물이 있었던 곳에 남아 있는 흔적이다. 실제 굴뚝 높이는 30m인데 끝부분만 여기에 있다. 당시 사용되었던 직물기도 나란히 전시되고 있다. 그 앞의 비각에는 김상용 순절비가 있다.

 

용흥궁 공원
강화문학관

용흥궁 공원을 가로지르면 강화문학관이다. 강화문학관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화의 문학과 인문,전통을 정리해 놓은 문학사 박물관이자 강화 출신 수필가 고 조경희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기도 하다.

강화문학관을 끼고 언덕을 오르면 고려궁지가 나오는데 그전에 왼편에 진무영순교성지가 있는 강화성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강화초등학교를 지난다.

 

진무영순교성지. 강화성당

진무영은 숙종 때 해안 방어를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와 그 주변 군사들을 함께 엮어 창설한 군영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를 계기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고, 양인과 내통한 혐의로 1868년 음력 5월 장치선, 최영준, 박 서방, 조 서방 등이 순교하면서 천주교 신자에 대한 처형지가 되었다. 특히 장치선과 최영준은 리델 신부를 안전하게 중국으로 피신시키고, 박해의 상황을 알려 프랑스 선박을 불러서 남은 신자들을 구제하고 천주교를 온 나라에 전파하고자 했다. 현재 강화 성당 구내에 진무영 순교성지가 조성되어 있으나 진무영 터가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옛 강화 농협 자리에 있는 은혜 교회부터 북쪽으로 약 200m 떨어져 있는 강화 성당까지를 진무영 터로 추정하고 있다. 강화 본당은 2004년 성당 구내에 성지를 조성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인천교구-

 

10:51 고려궁지 입구.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 19)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원종 11)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궁궐터이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최우(崔瑀)가 군대를 동원하여 이곳에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松岳)이라 하였다고 한다. 강화도에는 정궁(正宮) 이외에도 행궁(行宮)·이궁(離宮)·가궐(假闕) 등 많은 궁궐이 있었는데, 이곳 강화읍 관청리 부근은 정궁이 있었던 터로 추정된다. 정문의 이름은 승평문(昇平門)이었고, 양측에 삼층으로 된 두 개의 대문이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廣化門)이 있었다. 승평문의 위치는 현재보다 100여m 남쪽인 용흥궁 입구 부분에 위치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입장료가 있었는데 오늘은 매표소에 문이 닫혔고 공짜다.

 

조선시대 강화의 행정책임자 유수가 업무 보던 중심 건물인 강화유수부 동헌. 明威軒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강화의 고려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에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궁궐터에는 강화의 지방 행정관서와 궁궐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이 업무를 보던 이방청 등 조선시대 유적만 남아있다.

 

외규장각

外奎章閣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규장각이다. 정조는 외규장각이 설치되자 원래의 규장각을 內奎章閣이라 하고, 각각의 규장각에 서적을 나누어 보관하도록 하였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에 의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책과 문서 은괴가 소실 및 약탈 당했다. 현재 외규장각 건물은 2003년에 복원한 것이다. 의궤는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하고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행사를 기록이나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다.

 

강화동종
강화유수부 이방청.

고려궁지 정문인 승평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강화향교, 북문으로 다시 길을 찾는다. 100m 못미처에 V자 갈림길에서 아랫길로 들어서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이 보호수는 730살에서 3살 정도 빠지는 나이다. 강화나들길 안내선과는 다르게 리본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간다. 도로와 만나자 마자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표지목을 놓쳐서 도로를 따라 간다. 관청6리 노인회관이 나오면 안 되는데...

 

길로 왔어여 정상인데... 다시 찾은 1코스 표지석. 앞쪽에 보이는 강화여자고등학교 정문옆 왼쪽길로 나들길은 이어진다.
강화향교

강화향교는 고려시대 1127년 지어진 국립교육기관으로 강화여고 옆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성전, 명륜당, 내외 삼문이 있는데 최근에 복원공사가 이루어졌다. 처음에 고려산 남쪽에 세워졌던 것을 갑곶리, 서도면 등으로 이전했다가 1731년 현재의 위치인 강화읍 관청리로 옮겼다고 한다.

 

11:20 강화향교 서편에 위치하고 있는 은수물

강화향교 담벼락을 따라 좌로 돌면 은수물이 등장한다. 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은가루를 풀어놓은 듯 은빛을 띤다하여 은수물이라 부른단다. 강화군의 관리대상 7개 약수터 중에 하나로 음용이 가능하다.  강화향교에서 제사에 이 물을 섰다고 하고 아래쪽은 빨래터이다.

 

은수물에서 북문 가는 길

은수물에서 숲길로 들어 간다. 300m 쯤 서문과 북문의 갈림길에서 북문으로 향하고 조금 앞에 있는 15코스와의 갈림길에서도 1코스 북문 화살표 방향을 따른다. 북문 가는 숲길의 이정목 위에 반사경이 붙은 것이 딴 곳과의 차이가 있는 데 뒤를 관찰하라고 달린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11:34 북문 앞에 있는 1코스 안내판.
강화산성 북문(진송루) 사적 제 132호

강화성의 북쪽에 있는 문으로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 숙종 대 석성으로 만든 문이다. 성을 출입하는 석문만 있었으나 1783년 정조 7년 강화유수 김노진이 누각을 올리고 진송루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전쟁으로 석축만 남았던 것을 1976년 강화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정비하면서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뒷쪽에는 문루에 현판이 없다. 강화나들길은  성곽길로 잇는다.

 

성곽을 따라 북장대로 오르는 길
강화산성 북장대터

북장대터에서 북으로 시계가 터이고 네모 반듯이 정리된 논 뒤로는 바로 북한 땅 개풍군이란다. 멀리 개성의 송악산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북장대에서 내려가는 길의 성벽 여장은 군데군데 훼손되어 있다. 가파른 숲길 내려가면 오읍약수를 만나 목축임을 해야하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지나치고 말았다.

 

숲길에서 포장길로 바뀌고 '선물같은 나날'의 간판을 단 카페를 지나치면 차도와 마주치는데 앞에는 대산침례교회의 종탑이 보인다. 강화나들길 안내에는 우로 도로를 따르다 대월초등학교 옆길로 선이 그려져 있는데 안내표지석은 직진을 가르킨다. 교회를 지나 간간히 코스모스 들국화와 같이 가다보면 48번 국도를 아래로 통과한다. 바로 대산2리 마을회관이 앞을 막는다. 

 

토탈공방 고당겔러기. 종이접기공방

다산2리 마을회관을 보고 우로 턴한다. 소나무 한 그루에 외로운 공방을 지나 10여분 도로를 걷는데 나들길 표시가 없다.

 

대산1리 입석이 있는 청기부락 버스정류소에서 헤메인다. 정류소 앞쪽 전원주택을 군데군데 짓고 있는 다온마을을 조금 지나가다 표시가 없다며 다시 돌아와서 대산1리로 들어 가니 박진화미술관이 있다. 왜 너가 여기서 튀어 나오냐 너는 나들길에서 벗어나 있는데... 다시 빽하여 다온마을을 가르키는 입석을 지나 나지막한 고개로 오르니 반가운 표지목과 리본이 보인다. 

버스정류소 230~240m 전에 우로 좁은 길로 들어가 작은 숲길로 들었어야 하는데 표시를 못본 건지 없었던 건지...  못 본 것이겠지ㅎ.

 

다시 찾은 리본과 표지목. 13,4분 숲길을 지나고 포장로를 따라가니 능가사다. 나들길은 능가사를 보고 우로 깎어 간다.
12:51 연미정 할머니 식당, 월곶 매점. 

민통선인지 군인이 지키는 초소가 코앞에 있고 작은 주차장주위에는 유일한 식당 할머니 식당, 매점이 있고 화장실과 오래 전에 사용되었던 포가 전시되어 있다.

 

연미정 입구에 스템프보관함의 스템프는 어디로 외출했는지 없더라. 황형택지를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면 2019.09.07일 태풍 링링에 의해 부러진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사진이 있다. 에이고 아깝어라. 일이십녀도 아니고 오백년을 버틴 나문데... 華南 高在亨은 강화도 일대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마을의 유래나 풍경,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상을 256수 칠언절구로 쓴 沁都紀行을 남겼다. 그 가운데 연미정에 대해 쓴 燕尾漕帆의 싯구가 있다. ‘연미정 두 강 사이에 높이 서 있네. 삼남지방 조운(漕運) 길이 난간 앞에 통했네. 떠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 어디에 있나. 생각컨대 우리나라의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12:57 강화8경 중 하나 인천시 유형문화제24호 연미정’(燕尾亭, 강화읍 월곳리)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한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고종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강화군청-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하게 보초를 세웠겠지만 링링이 저렇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하나였으면 그러려니 할텐데 혼자가 외롭다.

 

배꼽시계는 고장난 시계가 아니어서 신호가 오는데 연미정 주위에서 자리를 깟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은 말짱 꽝이다. 정자 안이 아니면 마땅한 장소가 없다. 그기서는 택도 없는 소리다. 가는 길에 찾아보기로 하고 잰거음하자. 준비해온 것들이 없으면 할머니식당에서 먹는 게 답이다.

 

13:08 조해루

조해루(潮海樓)는 숙종 5년(1679)에 지어져 강화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검문하는 검문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복원된 조해루는 월곶돈대와 연결되고 남쪽의 외성과는 연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홍예식 성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지은 전형적인 성문 건축물이다.

 

조해루에서 종점까지 6.5km, 강화대교는 4.6km인 표지판을 보고 도로길을 따라 다시 길을 나선다. 강화나들길 1코스를 삼등분 한다면 각 구간이 다른 느낌이다. 

해안북로로 700m 내려오면 수로를 건너도록 표지목이 서있다. 수로 건너편 길로 철조망, 해안북로 수로랑 다음 표시가 있는 곳 까지 1km 가량 동행한다.

 

13:19 옥개방죽 13:31
13:38 만난 도로에서 2시 방향의 산길입구 / 지나 온 포장 농로
늦은 점심과 쉼

길이 헷갈릴 수 있는 산길이지만 벗어나도 그기가 그기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가방 비우기에 잠시 앉은 것 같은데 두시간이나 흘렀다.

 

16:06 예닮 전 숲길 / 16:26 대산공장
16:31 강화군 6.25 참전기념공원
16:50 염주돈대

해운사 입구에 염주돈대 안내판을 보고 호기심에 계단을 오른다. 8분 오름길에 영주돈대를 가르키는 안내판을 만난다. 터만 남아 있다.

 

17:07 강화대교 아래로 갑곶순교성지 뒷문.

갑곶순교성지 역역으로 들어오자 왼쪽에 작년에 복원된 진해루와 맞은 편에 우리나라 최초 근대 해군사관학교 였던 통제영학당의 옛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있다. 진해루는 강화외성의 6개 문루중에 하나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강화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구)강화대교 / 17:17갑곶순교성지 정문

1866년 병인양요 때 조선 정부가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자 바로 이곳 갑곶돈대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조선 군대의 격렬한 항전으로 결국 프랑스군은 후퇴했고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극심했던 박해의 하나로 기억되는 병인박해가 시작되었다. 갑곶 성지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이슬로 사라졌었다. 그리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5년 전 평양에서 조선인들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운 책임을 물으면서 조선 정부에 통상을 요구한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를 물어 강화에 살던 신자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이 갑곶진두에서 효수되었다. 성지에는 순교자 3위비가 세워져 그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문헌상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은 인천교구는 그 자리를 매입하여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였다.

 

갑곶순교성지
15:26 갑곶돈대입구/비석군/갑곶리 탱자나무/대포/이섭정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싶어 갑곶돈대를 들어가 본다. 코르나로 인하여 강화전쟁박물관은 폐쇄되고 있다. 현재 수령이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갑곶리 탱자나무(천영기념물 제78호) 옆 계단을 오르니 대포가 들어 있는 전각이 있다. 여기에 전시된 진품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잠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1398년 세워졌다가 오래전에 무너진 것을 1976년 강화 국방유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정자 이섭정을 지나 원위치 한다. 갑곶돈대(전쟁박물관), 고려궁지, 덕진진, 초지진이 2021년 7월 1일 부터 전적지 무료화 운영 실시로 들어가는데 공짜다.

 

다음 강화나늘길 2코스 출발은 여기에서 시작하고 초지진까지 호국돈대 길이다.

청소년수련관 버스 정류장이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지나치고 현대아파트 정류소에서 90번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