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인천둘레길 12코스

자어즐 2021. 2. 27. 21:36

한양에 나갈 일이 있으면 왠만하면 전철을 이용한다.
그래서 그저께도 조합 총회에 참석하려고 집에 차를 갔다두고 전철을 탔다.
환승을 해서 경로석 앞 통로에 서 있었다가 황당한 경우를 만났다.
복잡지는 않아도 다수의 객들이 서 있던 상황이다. 경로석에 중간자리를 비우고 두 어른이 앉아 있다.
연세 드신 한 양반이 자리를 앉을려고 하는데 그기 있던 할머니가 못 앉게 막는다.
국가가 거리두기로 자리 띄우기를 하는데 중간 자리에는 앉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텔레비젼도 안 봐요. 전부가 거리두기를 하잖아요. 지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 그기도 한사람 건너 앉도록 되어 있어요"하면서 막무가네다. 결국 못 앉고 더러워서 피한다는 듯이 자리를 떤다. 그러기가 재탕되는 걸 보고 내리는데 입맛이 씁쓸했다.
어느 것이 정답일까? 하나만 옳다고 외치는 저 할머니가 답인가 아님 치매 취급하는 상식이 통하는 다수가 답인가. 오늘 인천 12,13,14둘레길 걷기 위해 동인천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언듯 생각난다.

인천둘레길 12코스는 근대로의 시간 여행이다. 줄국, 일본등 외국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인천은 근대화의 중신이 되었고 개항장의 모습을 짚으며 답동성당, 신포시장, 홍예문,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제물포 구락부등을 한 걸음으로 돌아 본다. 그러다 보니 둘레길을 걷는 바쁜 걸음보다는 의미있는 건축물이나 장소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한다. 

1. 누구가 : 승섭이랑 둘이 
2. 언   제 : 2021. 02. 27(토)
3. 어디로 : 인천둘레길 12코스 성창포길
4. 얼마나 : 1시간 56분

이동경로 : 동인천역 - 전통혼수거리(중앙시장) - 배다리사거리 - 경동훼딩가구거리 - 답동성당 - 신포국제시장 - 홍예문 - 자유공원 광장 - 송원동동화마을 - 의선당 - 해안성당 - 인천개항박물관 - 제물포구락부 - 삼국지벽화거리 - 짜장면박물관 - 인천역

 

동인천역.
09:52 전통혼수거리(중앙시장)으로 인천둘레길 12코스 출발

전통혼수거리로 특화된 중앙시장 초입에 순대골목이 있는 송현자유시장은 일명 양키시장이고 도깨비시장이다. 예전에 부평미군부대나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로 부터 흘러 나온 외국 물품으로 없는 것이 없는 시장으로 명성이 있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의류등을 판매하는 그런 시장이 되었다. 한복, 침구류 등이 주 품목인 길가 가게들은 이른 시간 때문인지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많다. 

 

전통혼수거리. 초입 골목 길에 송현자유시장 간판이 남아 있다.
배다리사거리
개항면, 개항당, 마틸다.

고기 국물을 진하게 우려낸 국물 의 온면이 주메뉴로 하는 개항로 초입의 개항면, 그와 마주 보는 모든한 인테리어의 개항당 카페, 그리고 두세개 건물 옆으로 빈티지한 회벽 건물이 이탈리아 레스트랑 마틸다이다. 그리고 150여m를 두리번 거리며 길따라 가면 LP판에서 흐르는 추억의 음악과 옛 소품들로 복고 분위기를 만든 싸리재 카페와 나란히 붙어 있는 이슬옥은 오래된 건물에 그 분위기를 살린 젊은 술집이다. 오래된 이비인후과 노란색 벽돌 건물을 그대로 살린 브라운핸즈는 카페와 병원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애관극장 못 미치는 곳에 있다.

 

싸리재, 브라운핸즈

길은 브라운핸즈를 지나 애관극장 못미처에서 좌회전 답동성당으로 찾아 든다. 애관극장은 둘레길에서 건물 하나 밖이다.

 

애관극장

인천의 애관극장愛觀劇場은 110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의 극장이다. 애관극장은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던 시점에 인천 경동 네거리에 協律舍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02년 황실에 의해 서울 정동에 세워진 協律社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선극장이며, 1907년에 개관한 종로의 단성사보다 무려 12년이나 앞선 것이다.
협률사는 잠시 개항장 인천의 이미지를 따서 築港舍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20년대부터 愛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애관은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름이 변화하면서 건물형태도 뒤바뀌게 된다. 초창기 단층 창고 형태에서 2층 벽돌구조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애관극장은 한국전쟁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0년 9월에 재건축되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애관극장(愛觀劇場)이라는 이름은 1960년 9월 재개관 때부터 사용된 것이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의 관객이탈로 인하여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역사를 지닌 애관극장의 매각설이 돌고 있다. 최초의 비누공장 애경사 같이 또 하나의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인천자모원을 도는 인도에 1883개항장 근대역사문화회랑이라 적힌 블록이 깔려 있다. 인천교구청으로 틀면 답동성당이다.

 

10:07 답동성당.

답동성당은 인천교구 최초의 본당이자 주교좌 본당이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제물포(濟物浦) 본당’이었는데, 그 후 ‘인천 본당’으로 불리다가 1958년경부터 ‘답동 본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889년 7월 1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7호로 지정된 답동 성당은 1897년에 완공된 옛 성당을 그대로 둔 채 1933년부터 4년간 시잘레 신부의 설계에 따라 외곽을 확장 개축한 310평 규모의 건물로, 초창기 교회 건축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아름다운 성당이다. 정면에 3개의 종탑을 갖춘 고전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인 답동 성당은 같은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전주교구 전동 성당과 겉모양이 매우 흡사하다.

 

성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아름다운 답동성당 내부.

답동 성당 건축미의 절정은 정면을 장식하는 3개의 종탑이다. 경사진 지붕을 날개로 단 듯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8각형의 중앙 종탑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안정적인 형태미를 더한다. 양 끝에는 작은 8각탑 2개를 두어 20세기 초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건축 양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성당 정면에서 눈에 띄는 장식은 한 가운데 형식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장미 문양의 장미창뿐이다. 또 성당을 빙 둘러싸고 있는 반원형 아치 형태의 창문들은 종래의 성당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교한 장식 대신 화강석으로 단순하게 처리됐다.

 

성당의 정면도, 6원항쟁 기념비도 있다.
신포국제시장.

신포국제시장은 인천 최초의 근대적 상설시장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개항이 시작되기 전에는 ‘터진개’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개항 이후에 ‘새로운 항구’를 의미하는 ‘신포’라는 이름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0년에는 ‘신포시장’에서 ‘신포국제시장’으로 개칭하였다. 신포국제시장은 입구가 여러 개이고, 다양한 품목 별로 구역을 나누어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다문화 음식골목, 수선골목, 생선골목, 칼국수골목, 청년몰 눈꽃마을 등이 있다. 신포국제시장에서는 닭강정, 공갈빵, 오색만두, 쫄면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있다. 시장 입구의 닭강정은 신포국제시장의 대표메뉴이고 공갈빵과 만두도 인기가 있다. 쫄면은 1970년대 초반 인천의 제면소에서 실수로 탄생한음식이다. 굵고쫄깃한 면발에 고추장 양념을 버무려 팔던 것이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이 곳에서 원조 쫄면을 맛볼 수 있다.

 

신포동 푸성귀 전의 조형물과 민어횟집이 있는 이곳들은 둘레길에서 옆으로 있다.

산동만두와 공강빵을 파는 중국식 가게를 지나 우로 틀면 앞쪽으로 기업은행이 있는 삼거리다.
그 삼거리에서 좌로 보면 70m 전방에 지구본의 조형물(사진)이 있다.
둘레길은 그곳을 가기전에 우측 메가커피 골목으로 들어간다.
짧은 골목은 신포스카이타워 아파트와 만나고 한 씨 방향에 인천감리서 터의 안내판이 있다.

인천감리서 터 안내판.
중부교회. 인성여고

중부교회 앞을 지나 인성여자고등학교에서 우로 틀면 홍예문이 보인다. 둘레길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주위의 대한성공회 내동교회의 모습이 궁금해서 홍예문 앞 사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잠시 다녀온다. 겉 모습만 보고 원위치 하는데는 10분이면 족하다.

 

대한성공회 내동교회[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51호]

內洞聖公會聖堂은 1890년 영국성공회에서 선교사로 온 교오한 주교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그러니 처음세워진 건물은 6.25전쟁 때 파손되었고 현재 건물은 195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본래 이 자리에 고요한 주교와 함께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랜디스 박사가 1891년 세운 인천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 있었다.
1902년 한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외벽과 주요 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중세풍의 석조건물에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하였다. 

 

내동교회에서 홍예문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자유공원의 모습.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인천 시내 남북간 교통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으며 처음에는 穴門이라고 불렀다. 各國地界 형성 당시 조선 정부의 계획에 반대한 일본인들은 조선과 만주 침략 계획과 인천으로 몰려든 일본인들로 인하여 거주공간 확장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地界의 확장을 꾀하게 되었다. 당시 교통사정이 매우 열악했으므로 일본 지계나 항구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서북 해안선을 따라 가야 했으므로 일본인들은 비교적 단구간인 현 송학동 마루턱을 깎아 만석동으로 통하는 길을 만듦과 동시에 화강석 홍예문을 쌓아 측후소 쪽으로 진출을 꾀하였다. 축조양식은 화강석과 벽돌을 混用한 아아치 구조로서 그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 및 재료에 대한 사료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다.

 

홍예문

길은 자유공원로를 따라 공원광장까지 간다. 그런데 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 이정표를 보고 살작 왜곡해서 장군을 만나고 광장으로 간다.

 

인천학도의용대호국기념탑.
맥아더장군 동상

자유공원은 인천항 개항 5년 만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지대가 높은데다 터가 넓고 숲이 울창해 산책하기 알맞다.정상엔 한미수교 백주년기념탑이 있다. 1882년 4월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조인된 한미수호 통상조약체결을 기념하기 위해 100주년이 되는1982년에 세운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맥아더장군 동상도 그 옆에 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7주년이 되는 1957년 9월 15일에 완공됐다. 자유공원 정상에서는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도 훤히 내려다보인다.

 

10:42 공원광장
송월동 동화마을

송월동 동화마을은 2013년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세계명작동화를 테마로 마을 전체에 색을 입히고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전래동화길과 같은 11개의 테마길이 조성되었다.

 

의선당입구와 벽의 팔선도

의선당은 원래 인천이 개항(1883)하기 이전인 1850년대에 화엄사(華嚴寺)란 이름으로 이미 문을 열었다고 한다. 개항 이후 중국인들이 계속 늘어나자, 그들의 정신적 단합과 교화를 위한 시설이 필요해졌고, 이에 1893년 황합경 스님이 ‘의를 지키고 착하게 살라'는 뜻인 ’의선당‘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정전은 觀世音菩薩, 龍王, 關羽, 媽祖神, 胡三太爺를 모시고 있다. 

 

의선당

외부 현판은 有求必應[유구필응: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物阜財豊[물부재풍:재물이 언덕만큼 풍요롭다] 慈雲均霑[자운균점:자비로운 구름의 비가 골고루 적셔준다] 義重千秋[의중천추:의리를 중하게 여겨 천년을 이어간다] 慈心濟世[자심제세:자비로운 마음이 세상을 구제한다]가 걸려 있다.

 

차이나타운 거리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가 중국 음식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은 초기 정착민들의 2세나 3세들이어서 1세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과거 화교가 가장 많이 살았던 곳이 바로 여기다.

 

해안성당

1960년대 지은 성당인데 당시 차이나타운에는 4000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었단다. 소수의 화교 카톨릭 신자들은 답동 성당을 다니고 있었는데 본당 신자들과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민족이질감으로 화교들만의 성당을 절실히 원했단다. 이에 미국 메리놀회에서 1960년 7월 이곳에 선린성당을 지었다.
그리고 중국 만주 등지에서 사목하던 고요셉 신부님을 초대신부로 임명하게 되고.. 현재 건물은 고요셉 신부의 노력으로 1966년에 완성하게 되었단다. 설립 초기에는 중국 화교를 위한 성당이었으나 그후 화교신자수가 감소하고 관할구역내의 한국 신자수가 증가함에 따라 1972년 해안성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한국과 중국 합동 성당으로 운영되다가, 그후 화교신자들이 감소함에 따라 완전히 한국 성당으로 바뀌게 되었단다.

 

한중문화교류의 활성화 및 관광객 휴식을 위해 중국의 4대 정원 중 拙政園과 留園의 양식을 주제로 조성한 쉼터인 韓中園

길은 대불호텔 앞으로 연결되지만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에서 한중문화원으로의 도로를 왕복하며 한눈을 판다.
나홀로 였으면 한중문화원 옆에 있는 제물진두순교성지를 답사했을텐데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한중문화원. 인천화교역사관
인천아트플랫폼 뒷길. 청일조계지 경계계단
대불호텔. 생활사 전시관

대불호텔은 개항 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들이 서울로 가기 전 묵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다. 대불호텔 전시관에서 대불호텔의 역사를 알아보고 호텔 객실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생활사 전시관은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 1960~1970년대 인천 시민들의 생활상, 당시 문화생활 등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전시 외에도 특색있는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카페와 사진관을 운영하는 곳이다

 

개항박물관

인천개항박물관은 옛 일본 제1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인천개항 역사의 모든 것을 담았다. 4개의 상설전시실에서는 1883년 개항 이후부터 일제 강점이 시작되는 1910년 이전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인천개항 역사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인천개항박물관은 개항기 인천을 통해 소개된 근대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개항 이후 근대 인천의 면모를 학습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일본에 의해 세워진 곳으로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이 있었던 곳이다.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18은행은 나가사키의 상인들이 상해에 수입되었던 영국 면직물을 수입하여 한국 시장에 다시 수출하는 중개무역으로 큰 이익을 거두자 1890년에 인천지점을 개설하였다. 일본제18은행은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계획되어 세워진 아픈 과거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에서는 근대 초기 건축물을 비롯하여 각 조계지의 풍경 및 소실된 근대 건축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구)일본 제58은행 지점. 중구청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은 1.1일부터 5개월간 공사중으로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가 대문에 붙어있어 앞의 제물포구락부로 건너띈다.

 

각국조계석. 제물포구락부.

제물포구락부는 개항장 주변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으로 서로 간의 문화를 교류하던 곳이다. 원래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었지만 클럽(Club)을 일본식으로 구락부(俱樂部)라고 표기한 것이 굳어져서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옛모습을 재현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에도 이러한 역사성을 고려하여 제물포구락부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재향군인회관, 미군장교클럽, 인천시립박물관, 인천문화원을 거쳐 207년 재물포구락부로 재탄생하였다. 

 

제물포구락부 가까이 있는 현존하는 가장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
삼국지 벽화거리.

삼국지 벽화거리에는 <삼국지연의>의 명장면과,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160개의 벽화로 펼쳐져 있다. 그림과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천천히 걸으며 감상하다보면 책 한권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와 적벽대전 등 우리가 잘 아는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 놓아 담장의 벽화를 따라가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국지의 줄거리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 박물관은 우리나라 짜장면의 발상지로 옛 공화춘 식당 건물이 헐린 자리에 지상 2층으로 건립되었는데, 화강암 석축 위의 2층 벽돌조 건물은 화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중국된장인 미옌장을 비벼 먹는 작장면과 달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적당히 유지하게 만든 짜장면을 초기 개발하여 판매한 공화춘은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중국요리집으로 큰 호황을 누렸다.

 

11:48 차이나타운 제1 패루. 인천역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면 여기부터 차이나타운임을 알려주는 패루를 볼 수 있습니다. 중화가(中華街), 선린문(善隣門), 인화문(仁華門), 한중문(韓中門), 4개의 패루가 차이나타운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예부터 동네 입구에 마을의 대문을 세웠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붉은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탑 모양이고 화려한 장식이 특징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과 화려한 채색이 시선을 잡아끄는데, 여기에는 귀신같은 부정한 것을 내쫓고 상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0여년전 우리나라에 최초로 짜장면을 소개한 공화춘의 후손이 원조의 맛과 역사를 이어간다는 신승반점을 찾아 짜장면 맛을 볼려고 했더니 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궂이 줄서서까지 짜장면 한 그릇할 필요까지 있냐는데 의견일치하여 인근의 중국집으로 들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탕수육+짜장면+짜장면을 세트로 주문했는데 맛있게 먹는다. 배가 어느 정도 차고 나서는 탕수육이 조금더 바싹하게 튀겼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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