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내내 한파에 등이 시럽다. 작년에 한강이 얼지 않을 정도의 푸근한 겨울을 선사한 동장군이 존재의 유무를 확실하게 알린다. 전 날 서울 수은주가 영하 18도 아래로 내려가고 체감온도가 영하 28도나 되었다니 차긴 차다. 오늘도 최저기온이 영화 17도를 찍었길래 집콕해야 하나 하던 차에 번개 얘기가 나왔다. 계양산 둘레길이나 돌자고 네명 이하 모이라 했더니 승섭이랑 달랑 둘이다. 누구는 추워서 동태된다고 나죽집산이란다. 나가면 죽고 집에 있으면 산다는 말이란다.
집을 나서는 오후는 우려와 달리 공기는 싸늘해도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어서 기분은 상쾌하다. 나오기만 하면은 좋은 걸 문을 열고 나오는 한 걸음이 힘들다.
년말에 인천 종주길 걸었으니 이참에 둘레길도 처음부터 걸어 보자 싶어 시동 걸어 본다. 뒤 몇 코스 외에는 걸어 본 길이기는 해도 새로운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인천둘레길 1코스는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을 한바퀴 도는 코스다. 산성의 발달사와 계양의 문화와 역사를 알수 있도록 작년 5월에 개관한 계양산성박물관을 출발해서 목상동 솔밭, 피고개, 중심성, 계양산장미원을 거치는 숲길을 지나 인천문화회관 경인여자대학교를 지나는 도로 길을 따라 다시 계양산성박물관으로 원점복귀하는 코스다. 숨 가쁘게 오르는 길이 아니어서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그냥 힐링이 되는 좋은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의 발길을 끈다.
1. 누구가 : 승섭이랑 둘이서
2. 언 제 : 2021.01.09(토)
3. 어디로 : 인천 둘레길 1코스
4. 얼마나 : 2시간 22분 [식사시간 포함]
이동경로 : 계산역5번출구 - 야외음악당 - 임학정 - 청수수목원 - 목상동 솔밭 - 피고개 - 징메이고개 - 계양산장미원 - 인천문화회관 - 계양산성박물관 - 계산역
일반적으로 계산역 5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계양산 들머리를 연무정[鍊武亭]아라 부른다. 이삼년 전까지 국궁장 연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위에 계양산성박물관이 들어서서 이제는 활터가 없어졌다. 장소는 사라지고 없어도 습관적으로 불러오던 이름은 남아 있다. 여기서 인천둘레길이 시작되고 마무리 된다.
주부토[主夫吐]는 계양의 옛 지명이다. 고구려 장수왕 때 지어진 주부토군은 한강물이 자주 범람해서 길게 쌓은 뚝의 의미인 줄보둑이 변형된 것이다.
임학정 쉼터에서 갈림길이 대여섯이다. 계양산치유의숲, 임학공원, 임학약수터, 둘레길, 정상.. 리본 표지를 보고 인천둘레길을 찿는다.
인천둘레길 안내표시로는 여러사람이 함께 걸으며 방향을 표시하는 마스코트와 인천둘레길을 구성하는 산, 들, 바다, 길을 의미하는 로그가 있는 표지판, 안내리본, 닻 모양의 방향표시가 있다.
숲길은 木霜洞솔밭 쉼터에서 잠시 멈춘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곳은 골프장 개발로 사라질 뻔 한 것을 시민들의 노력으로 보전하게 되었다. 도룡뇽과 반닷불이 서식지가 있는 만큼 환경이 깨끗하다. 솔밭은 엄마의 자궁마냥 안락하고 포근해서 언제나 편안한 휴식처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 오늘은 객이 적어 휑하지만 추위가 가시면 구석구석 자리를 깔고 앉아 활기를 되찿게 된다.
요란한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잠시 오른길 오르면 피고개로 올라 선다. 옆으로 피고개산과 계양산 정상 길이 마주 보고 있다. 잠시 머물다 가려해도 앞뒤로 벤치는 빈자리가 없어 스쳐 지난다. 계양산 장미원까지 2km다.
피고개는 시천동과 검암동을 넘나드는 고개다. 옛날에 해주 정씨 형제는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억울하게 관직을 삭탈당하고 이 고개를 넘어오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전해지는 설화에서 피고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피고개에서 징메이고개로 5분 정도 가면 뽀족히 쌓은 돌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탑들은 팔구년 전 소씨라는 성만 알려진 당시 예순 중반의 평범한 가장이 이것들을 쌓았다. 돌을 쌓는 이유는 위암 수술을 하고 건강을 위하여 돌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심성은 백성들에게서 성 쌓는 자금을 거뒀고, 성을 수축하는 노동력은 백성들의 부역으로 충당된다. 한마디로 돈 있는 자는 돈으로, 돈 없는 자는 노동력을 제공했다.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완성한 성이란 뜻으로 부평부사 박희방은 무리 '衆'과 마음 '心' 자를 써서 衆心城이란 이름을 지었다. 지금 옛성은 사라지고 없고 터와 의미만 남았다.
징메이고개 생태통로가 인천둘레길 2코스 시작점이다. 둘레길1,2,3코스는 始終점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지 않고 각각 독립된 형태를 띠고 있다.
장미원에는 5월부터 10월말까지 봄, 가을 장미 67종이 피고 지고 한다. 금낭화 외 야생화 13종은 덤이다. 지금은 장수풍뎅이 무당벌레 같은 조형물들이 장미원을 지킨다.
코르나19 여파로 정자들이 모두 금줄을 두르고 있어 이규보 시비 옆에 비닐로 바람막이가 쳐진 곳의 벤치에서 승섭이 베낭을 푼다. 오뎅탕의 따끈한 국물과 고량주 한잔은 속을 훈훈하게 데워 주고, 야외에서 김치 한점 넣어 먹는 컵라면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장미원에 이슈보(1168~1241) 시비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문신으로 자는 春卿이고 호는 白雲居士 또는 止軒 그리고 술, 거문고, 시를 즐겨 三酷好 先生이라 했다. 명종 20년(1190) 문과에 급제하여 全州牧司祿兼掌書記 兵馬錄事兼修製를 거쳐 희종 3년(1207) 崔忠獻에 의해 權補直翰林으로 발탁되었다. 고종 6년(1219) 左司諫 벼슬에 있을 때 지방관의 죄를 묵인해 줬다는 혐의로 桂陽都護副使로 좌천되었다가 그 이듬해 중앙관직인 京職으로 승진되었다. 계양부사 재임 13개월에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기어 훗날 『동국여지승람』과 『부평읍지』의 기틀이 되고 또 부평고사연구에 큰 자료가 되고 있다.
호탕 활달한 시풍으로 당대를 풍미한 걸출의 시호(詩豪)였다. 벼슬이 바뀌어 부임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로 유명했다. 몽골군의 침입을 명문인 진정표(陳情表)로 격퇴하기도 했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 ‘국선생전’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동명왕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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