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여행

가을. 성당여행 풍수원 성당

자어즐 2018. 10. 30. 23:47

김여사가 어느날 주보에서 봤다며 횡성 풍수원 성당으로 성지순례 따라 가고 싶어 한다. 이 가을에 아름답고 오래된 성당여행을 못 이긴척 떠나보자. 근데 하필 오늘 새벽에 천둥번개가 요란을 떨게 뭐냐. 아침엔 그나마 소강상태여서 우산을 준비하고 나선다.

인천교구 가톨릭노동장년회에서 년중행사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임을 버스에 오르며 안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가톨릭 사도직 단체다. 누가 주관하던 내겐 그리 관심사가 못된다. 지인DL 선물한 '하루쯤 성당여행'이란 책 속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어서 가보고픈 호기심이 크다.

두시간 남짓 달려 산골짜기 깊속한 외진곳에 소박하지만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堂에 도착한다. 가을의 옷으로 이쁘게 치장하고 우리를 맞아 주는 성당은 110여년을 지켜온 때묻은 모습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오는 중에 차안에서 책 읽듯이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자리잡고 있는 풍수원성당은 순교성지가 아닌 신앙의 유적지로 국내 최대 천주교 순례지다. 19세기 초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쫓겨온 천주교 신자 40여 명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 수목이 울창하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관헌의 눈을 피할 수 있어서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이곳에 자리잡았다. 이렇게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끼리 모인 공동체는 한편으로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 생활을 이어갔다.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교우들은 처음 풍수원으로 찾아든 이래 무려 80여 년 동안을 목자 없이 오로지 평신도 들로만 신앙 공동체를 이룬 채 믿음을 지켜 왔던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제서품을 받은 정규하신부가 지난 1907년 신자들과 벽돌을 함께 구워 풍수원 성당을 만들었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전북 완주 되재성당(고산성당·1896년),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지어졌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란 역사성을 갖고 있어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건립된 지 100년이 훌쩍 넘었으나 성당은 아직까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횡성의 옛이름은 횡천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강은 종으로 흐르는데 이곳은 동서 횡으로 흘러서 붙여졌다. 이것이 이웃고을 홍천과 발음이 비슷하여 조선시대에 橫城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풍수원의 豊水는 이름 그대로 물이 풍부해서 불리어 진 이름이고 조선시대 관리의 숙소인 院이 있던 곳이라 풍수원이 되었다.

 

오늘 날씨는 정신이 없다. 파란하늘도 잠시 보이다가 비가오고 싸래기 같은 우박도 내린다. 바람도 불어 이쁘게 물든 단풍 다 떨어질까 걱정스럽다. 그래도 자연의 섭리는 이맘 때 잎들이 낙옆되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괜한 마음씀이다.

열한시에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본당에서 미사를 보고 식당을 들렀다가 주변을 구경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다. 설설 시간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 평일에는 인적 없이 조용할 이곳을 순레자들의 발걸음이 활기를 채운다.

▼ 1888년 풍수원성당 유적지 표지석.

1888년은 본당이 설립된 해이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르 메르(Le Merre)신부가 부임하였다

▼ 200m의 작은 언덕 너머로 크지 않는 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예전에 고교 교정에 있던 성당의 모습도 저러했던 것 같은데.

 성당으로 오르는 길 오른편의 마을회관위 산타는 장난기가 다분하다. 

 붉은 빛과 회색빛의 조화에 검은 빛은 덤이다. 주요 건축재료는 돌출된 버팀벽과 창문, 춮입구 테두리는 회색벽돌이다.

▼ 여기 사용된 벽돌은 주위의 세 군데 가마에서 구운 것을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각 가마마다 조건들이 다르고 초벌,재벌로 구운 횟수   에따라 강도가 달트니 부식정도가 달라진다. 각각의 벽돌 색상은 같은 것이 없다.

 4층의 종탑부가 전면에 돌출되어 있고 그 위에 팔각의 첨탑이 얹혀 있다. 서울 약현성당()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나 첨탑    네 귀퉁이에 소첨탑이 잇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 성당 뒤쪽 측면의 경사지에 자리 잡은 구 사제관. 지하1층,지상2층 건물이다. 성당 준공 후 3년 뒤에 착공하였기에 벽돌의 균일도가 본당보다 낫다고 한다.

▼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흉상이 있고 현재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는 입구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된 표지가 붙어 있다. 내부는 나중에 보기로하고 미사시간이 될 때까지 한바퀴 돌아 보자.

▼ 성당 뒤편 天主堂의 성모상.

▼ 유물전시관 입구에 항아리,멧돌,다듬이 탑 절구통이 나래비 서 잇다.

▼ 풍수원 성당에 있는 유현문화관광지 내 유물전시관 입구.

▼ 이 곳에는 성당에 관련된 자료와 인물들의 기록 및 사료들과 성당에서 썼던 성물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썼던 농기구와 일상용품들을 빼곡히 전시하고 있다.

▼ 천주교 신자인 한 사람이 풍수원 성당에 유물전시관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한 뒤 천주교 신자로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대가 없이 수집해 놓은 1,100여점을 기증한 것.

▼ 미사시간이 다가옴에 성당으로 가는 길은 비가 흩날린다.

신부님의 강론은 버려야 할 것과 잡아야할 것에 대한 질문이다. 나무가 겨울에 나뭇잎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내린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지들이 부러지듯이 이 가을에 곱게 물든 잎들을 미련없이 버릴 줄 알기에 다음에 또 싹을 틔운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사물을 보기 위헤 필요한 것은 볼 수 있는 눈과 판단하는 마음과 그리고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이 없으면 까만 색깔로만 보일 것이다. 매일 많은 사물을 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해인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구상시인의 '마음의 눈을뜨니'에서 말하 듯 천천히 나를 돌아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불교 교리인 팔정도에 먼저 나오는 게 정견이다.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보는 것.사물의 진상을 바르게 판단하는 지혜를 말한다. 이런 시각으로 무엇을 보고 잡아야할지 생각을 해 보자. 돈과 명예를 쫒는다고 한 가지 색만 보는 것은 아닌지...

 

▼ 성당내부는 후러쉬 빛등으로 훼손됨을 방지하기 위헤 촬영을 못하도록 해 놓았는데 미사를 끝내고 한장 쓸쩍했다. 

▼ 내부는 나무가 주 재료인데 양쪽에 서 있는 기둥에는 벽돌로 보이도록 흰 줄눈을 넣었다. 천정의 원형아치 반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제관의 뒤태. 뒤가 식당이다.

문화해설사에게 이곳에대한 설명이 재법 길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예수상 에서 십자가의 길과 구 사제관 방향으로 나뉘고  십자가 길에서 예수상을 뒤로 돌면 유물전시관으로 가는 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오르신 골고다 언덕을 형상화한 이 곳 에는 14개의 비석이 있다. 판화가인 이철수의 재능기부로 세워졌다. 이철수(李喆守,1954년~)는 대한민국 판화가이다. 애석하게 비에 젖은 14처의 동화 같은 그림은 흔적만 남은 흑색돌로 동화되었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이 성당의 2대 정규하신부 와 3대 김학용신부의 묘소가 있다.

어느새 정상이다. 통나무로 만든 십자고상과 재대가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그 옆에 성모상이 있다.

우신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도 여기서는 기도소리로 들린다.

묵주형상을 한 돌들이 원을 그린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이 곳 십자가의 길을 대신해서 성당 내부에서 같이 온 일행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덕분에 김여사랑 둘이는 고저녁한 길에 유유자적 이곳의 향기를 맡는다.

본당의 신부와 수녀들이 기도를 하거나 묵상을 하는 골방기도실.

안은 바같모양과 달리 아늑하다. 골방 같은 느낌은 없다. 표리부동인가

재현해 놓은 가마터.

매년 성체현양대회가 열리는 성체광장. 풍수원 성체현양대회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을 기념해 성체성사의 신비를 되새기고 생명과 나눔의 정신을 나누는 행사로 1920년부터 6.35때 3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리는 국내 최대 행사란다.

본당 뒤에 비스듬히 서 있는 구 사제관.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곳도 들어가 보자.

▼ 1943년 선종하기 가지 47년을 풍수원 성당에서만 사목활동을 한 정규하 신부의 이력서가 나무판에 자세히 적혀 있다. 

▼ 10년 단위로 풍수원의 역사는 흘러 간다.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역사판.

▼  2층은 성체거동과 미사전레, 정규하 신부의 방이 전시되어 있다.

▼ 우리팀이 십자가의 길 기도가 이제 막 마친 듯하다. 내가 역사관을 구경하는 동안 잠시 떨어진 김여사가 안 보인다. 전화로 '김여사 어디여' 하니 '춥어서 아래 작은 도서관(순례자의 쉼터)에 있다, 한다. '앞에 교우들이 파는 농산물 가게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고추 말린 것 샀다' 말을 보텐다.

▼ 성당과 나이를 같이하는 느티나무에게 지금과 같이 오랫도록 동무하고 지켜주기를 부탁하고 성당을 내려 온다.

▼ 원례 학교였던 이곳에 학생들이 없어 폐교되고 주차장과 순례자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  차 한잔의 여유를 부려 본다. 차실은 수녀가 운영한다. 차값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성의껏 함에 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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