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여행

전동성당과 전주 한옥마을

자어즐 2017. 9. 7. 21:31

 

전통의 기와처마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조용한 곳으로 새벽이 찾아 온다. 상념 속에 강한 빛을 내리는 해가 어둠을 밀어내고 어느새 산위로 오른다. 한 쪽에는 흩어지지 않고 남은 안개가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 위 애띤 파란 하늘에는 웃는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오늘은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 기다린다. 여기 남원 산내에서 전주를 거처 인천에 갔다가 대구행 해야하는 강행군이다.

도로가 협조를 해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1층에서 식사를 하고 8시 40분경에 전주로 출발한다. 

전주는 국내 최대규모의 한옥이 도심권에 마을을 형성하여 있고 도심권에 후백제와 조선시대, 근대문화유적지가 다 모여 있에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한다는데, 미안하게도 다른 이유로 스쳐지나기만 했지 구경차 방문은 처음인 듯하다. 한옥마을과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비빔밥,콩나물국밥,한정식...한국을 대표하는 맛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니 한가지는 맛보고 가리라. 전동성당도 궁금ㅎ다.
한옥마을 주위에 있는 자만벽화마을, 젊은 남부시장의 야시장과 덕진공원도 보고프다만 전주막걸리와 함께 다음 기회로 미룬다. 

 

1. 누구가 : 김여사와 아들 셋이서

2. 언    제 : 2017년 09월 03일(일)

3. 어디로 : 전주한옥마을,전동성당

4. 얼마나:

 

▼이동경로 : 한옥마을 임시주차장 - (셔틀버스) - 오목대정류장 - (태조로) - 전동성당 - 경기전 -최영희문학관 - 오목대정류장

 

▼ 아침풍경.



▼1층 파밀리아레스트랑에서 조식뷔페로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 하는데 관계인이 사진 찍어 준다기에...


▼11:02 태조로 입구. 남원분기점에서 순천완주고속도로로 올려야했지만 김여사 이야기에 팔려 지나치는 바람에 순창까지 와서 27번

  국도를 타니 25km둘러 온다. 시간도 25분을 더 잡아 먹는다. 전동성당을 입력시키고 와서 보니 주차장이 없다. 한옥마을 주차장을 찾아

  한바퀴 도는데 모두 만차다. 해서 임시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수시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로 태조로 입구 오목대 정류장으로 왔다.


▼ 11:21 태조로릉 따라 곧장 오니 전동성당이 나타난다. 오는 길 좌,우로 들어서 있는 가게들로 인해 내가 상상하던 한옥촌의 그림과

   는 많이 멀어 보인다. 기대가 컷기 때문인가...한옥 기와들 사이에 고색의 아름다운 이색적인 성당 건물의 부주화 속 조화가 위안한다.

   풍납문에서는 전동성당이 한옥마을의 입구가 된다.   


 전동성당을 들어서면 모등 것을 포용할 듯한 예수그리스도상이 순례객들을 맞이한다

  

옛날 한 젊은이가 지혜 있는 노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르신, 저는 지금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스트레스로 인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저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노인이 젊은이에게 가방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정원을 가꾸어만 되니 기다려 주게나. 그리고 이 가방을 좀 들고 있게."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방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 시간이 지나자 어깨가 쑤셔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멈추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 이 가방을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 그러자 노인이 젊은이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무거우면 내려놓으면 되지!"
바로 그 순간 젊은이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들고 있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려놓으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지는데 젊은이는 무엇이든 꼭 움켜잡고 가지고 있으려 해서 힘들고 어려웠던 것입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명동성당, 계산동성당과 더불어 3대성당

  으로 손색이 없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우리나라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도 든다. 호남지역의 서양

  호남지방의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

  로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 성당 중앙의 12개의 창이 있는 종탑부와 좌,우 팔각돔은 이 성당의 아름다운 상징물이다.


▼ 직선과 곡선의 조화도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전주 전동성당은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워졌다. 이 건물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신유박해(1801년) 때는 이곳에서 유항검(柳恒儉)과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순교의 뜻을 기리고자 1891년(고종 28)에 프랑스 보두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았다.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중국에서 벽돌 제조 기술자를 직접 데려 오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공사 시작 7년 만인 1914년에 완공했단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온전한 고을이라는 뜻을 지닌 全州 한옥마을은 대여해 주는 한복을 입고 추억만들기 하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젊은 이들이 한복으로 멋지제 치장하고 사진을 담는 모습이 활기차고 아름답다. 새삼 한복이 이뻐 보인다.



▼ 이 그림만 놓고 보면 고풍스러움에 마치 유럽의 한 곳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낀다.


▼ 지금은 미사중이어서 김여사랑 아들도 참여한다고 들어가고 홀로 성당을 한바퀴 더 돌아 본다.



 

▼ 피에타상.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모사한 작품.숨을 거둔 예수를 안고 비통에 잠긴 성모의 얼굴에 어떤 것 보다 더한

   슬픔이 베어 있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이 피에타이다.

 

 

 

 

“신부 채희주는 꽤 괜찮은 의사입니다. 푸른 들판 같은 미래가 있고, 그 길로 곧장만 가면 그걸로 만사형통입니다. 어느 날 벼락을 맞더니 진구덩이에 빠집니다. 나오라고 했는데도 안 나옵니다.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혼자 남겨두고 떠난 게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하지만 이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저, 정말이지, 정말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영화 ‘약속’의 마지막 장면, 공상두의 대사)

상두와 희주는 텅 빈 성당으로 들어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둘만의 슬픈 결혼식을 진행한다. 개봉과 함께 큰 화제를 낳았던 영화 ‘약속’의 명장면이다. 영화 속 명대사들 또한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었고 아직까지도 회자하고 있을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약속’은 여의사와 조직폭력배 두목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신파성이 강한 멜로 드라마로 관객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1990년대 후반, 한국 멜로 영화의 흥행을 이어간 대표적인 작품이다.


▼ 영화 '양속'의 명장면이 연출된 성당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이 성스러운 분위기 연출에 일조하는 듯하다.


 내부 천장은 아치형이고 양옆의 통로 위 천장은 십자 형태로 교차된 아치형이다


▼ 천정의 베이지 색과 아치형으로 연결되어 천정을 바치는 벽면의 벽돌색 기둥과 보석같은 빛을 내는 조명이 조화를 이룬다.






▼ 11:49 전동성당을 나와 조선왕조의 발상지(태조의 본관)로 여기는 전주에 세운 전각 경기전을 구경하러 들어 간다. 2017년 독서

   대전의 행사가 있어 무료로 입장한다. 입장료가 인당 3,000원이면 재법 덕 봤다.




▼ 독서대전의 행사장.


▼ 어진박물관.태조어진을 전주로 봉안 600년을 맞아 2016.11.6. 개관하였고 태조어진을 비롯해 어진봉안시 사용된 각종 가마유물과

   경기전유물이 전사되고 있다.


▼ 태조 어진. 모사품. 태조 어진 26측이 있었다고 하나 경기전 태조어전이 유일하게 남아 있고 익선관과 청색곤룡포, 백옥대와 흑화

   를 착용한 전신상에 가슴과 어께에 왕을 상징하는 다섯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으며 1872년(고종 9)에 모사한 어진을 봉안하고

   낡은 구본은 물에 씻어 백자항아리에 담아 진천북쪽에 묻었다고 한다



▼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한 태조어진 봉안행렬. 300여명의 인원이 한양에서 전주까지 7박8일 소요되었단다.







사적 제 339호의 경기전은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태종 10년(1442년)에

  그 소재지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데 전주는 경기전으로,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종전이라 했다. 임진왜란(1592)

  때 모두 불탔고 경기전만 남았으나 경기전도 정유재란(1597)때 불타 1614년(광해군 6)에 다시 세웠고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

  을 나타내고 입구 하마비, 홍살문, 내삼문, 외삼문, 초상화를 모신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경기전에 모신 어진은 1872년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모본으로해서 새로 그린 것이다.

 

 


▼ 최영희문학관. 대하소설 '혼불'을 남긴 이 지방 출신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가 전시된 곳.




▼ 교동떡갈비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통과.




▼ 주차장에서 차를 가기고 비빔밥맛집을 검색해서 골른 것이 경기전 근처의 한국집이다. 주차장도 만차이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가족회관 비빔밥, 궁의 한정식, 삼백집 콩나물국밥, 반야 돌솥밥,한국식당 백반등등 맛집도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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