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리브가 각본에 없는 대사를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면 오늘 삼성산 삼막사를 찿는 것이 그것이다.
업무의 틀을 벗어나 소통의 장을 만들자는 따끈한 제안에 계획에 없는 산행을 집행한다.
평일 아침에 베낭을 메고 나서는 게 흔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아들이 이상한 듯 묻길래 이차저차해서 9시까지 석수역을 간다고 하니
아침에 수원으로 일 보러 간다며 태워 준단다. 전철은 한 시간 으로 충분한데 차로는 체증을 감안하여 30분 일찍 집을 나선다.
그리해도 출발시에는 30분이상 여유로운 도착이 된다는 네비가 차츰 그 시간을 잡아 먹더니 약속시간도 위태롭게 만든다.
삼성산을 찿은 지도 꽤 오래된 듯하다. 2년 반 정도. 가까이 있어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같이 산에 오르면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기다려주는 배려가 바로 소통이니 달리 얘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오늘은 회사 주요인들과 산을 오른다.
1. 누구가 : 회사 주요인들과 같이.
2. 언 제 : 2016년 11월 01일(화) 맑음
3. 어디로 : 삼성산 삼막사.
4. 얼마나 : 염불암까지 4시간 35분(휴식시간 포함)
▼ 이동경로 : 석수역- 신랑각시바위- 석구상-거북바위-삼막사-염불암-(천연식당)-안양유원지
▼ 09:31 석수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마트에서 필요한 것 보충하고, 긑에서 우측으로 조금 돌아 들머리에 오다.
▼ 신랑,각시 바위. 몇번 통과했어도 보는 것은 처음. 계양산도 있고 고척 돔구장도 찿았다.
▼ 불영사 옆의 석구상.
▼ 삼성산 정상,삼막사,수리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명당자리로 찿아들어 막걸리 한 순배 돌린다.
▼ 관악산 사령부.
▼ 12:48 거북바위
▼ 13:00 삼성산삼막사 일주문. 빛깔은 고와도 지고 마는 것 이 世上 그누구 無窮하리오. 예전에는 이렁 글귀가 있었다. 過去에 함께
산 因緣과 現在에 만난 幸福으로...
▼ 좋은 곳에 태어나는 공덕 중에 1이 훌륭한 통치자를 만나고인데 이 나라가 이리 시끄러운 것이 좋은 곳에 태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최순실 때문인가....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주워담기가 어렵고 힘든다.
▼ 지난 일은 다 잊고 잘난 채 자랑하지 마소.
▼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너는 여왕이 될것이다.
▼ 조선후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池錫英)의 형 지운영(池雲英 1852 ~ 1935)이 이곳 백련암지(白蓮庵址)에 은거할 당시에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귀자를 새겨 놓았다. 삼귀자 좌측엔 「불기 2947년 경신중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란 명문이 있어
1920년에 쓴 것이며 서체는 전서(篆書)로 우측에는 「관음몽수장수영자」라 하여 꿈에 관음보살을 본 후에 글씨를 썼음을 알 수가 있다.
▼ 학우봉 능선.
▼ 13:22 삼막사 남녀근석(三幕寺 男女根石.경기도 민속 문화제 제3호)
삼막사의 남·녀근석은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토속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
했다고 하며, 이 바위를 없애지 않고 그 옆으로 칠성각을 둔 것은, 불교와 민간 신앙이 어우러진 우리 나라 민간 신앙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지금도 민간에서는 이 바위를 만짐으로써 다산과 출산에 효험이 있다고 믿어 4월 초파일, 7월 칠석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기원을 한다. 그 기원의 방법으로 동전을 바위에 문질러 붙이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크기는 남근석이 높이 1.5m,
여근석이 높이 1.1m 정도다
<시흥읍지(始興邑誌)>・<경기지(京畿誌)> 등 조선의 조정에서 편찬한 문헌에는 고려 말 불교계를 이끌던 지공(智空), 나옹, 무학이 이곳에 올라 각기 수도에 정진하였기에 이곳을 삼성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한다.
삼성산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각 시대마다 "삼성"의 유래가 임의적으로 정해진 듯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유래가 정확하다고 밝힐 수는 없다. 신라시대의 "삼성"은 "삼성"이 이 곳에 머물렀다기보다 그 "삼성"을 기리기 위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신라의 원효, 의상대사는 전국의 웬만한 사찰에서는 모두 차용하는 이름들이고, 삼성산 삼막사가 융성한 것이 조선시대이기 때문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삼성"은 역사적 기록물에 전하는 바에 따라 이 삼막사에서 실제로 수도한 것으로 보인다.
도선대사와 무학대사는 우리나라 풍수의 골격을 형성한 이들이어서, 이 삼막사는 풍수적으로 한양의 땅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이 후 많은 이들이 삼막사를 찾게 되었다.
삼막사는 태종(太宗)때 대중창이 있었으며, 현재의 삼막사는 조선 세조 때에 세워졌다. 조선 세조 때부터는 삼막사가 남서울의 으뜸 사찰로서 서울 주변 4대 명찰의 하나로 꼽혔다. 세조는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도성의 사방에 원찰(願刹)을 정했는데, 동쪽의 불암사, 서쪽의 진관사, 북쪽의 승가사와 아울러 삼막사를 남왈 삼막(南曰三幕)이라 하여 남쪽의 원찰로 한 것이다.
▼ 14:06 염불암.
▼ 꼬막무침에 막걸리 한잔으로 이 식당의 분위기를 맛보고 안양유원지로 내려가서 식사를 할 요량이었는데 한 곳에서 해결해 버리
자며 능이 오리백숙까지 더한다.
▼ 염불암 가까이에 이런 식당이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 이상할 뿐이고...
▼ 오늘 산행의 배려와 격의 없는 이야기들로 서로의 거리를 좁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슴에 감사하고 안양유원지로 걸음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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