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가기

육영수여사 생가

자어즐 2016. 3. 4. 06:30

 

정지용문학관을 나와서 인근에 있는 육영수여사 생가를 찿았다. 태어나서 결혼전까지 살았으니 생가는 분명하지만 한구석이 찜찜하다.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어 있어서 사실적인 자료에의해 복원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아니면 생가터로 하는 것이 어떠할찌...

예전에 한복차림의 단아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 상상 속의 여사를 만나러 교동집에 들어간다.

 

 

 

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다. 허물어진 채 생가 터만 남았다가 복원을 마치고 2011년 5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집은 조선 초기, 1600년대 김정승이 처음지어 살고 이후 송정승, 민정승 등 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알려져 있다.이렇게 삼정승이 살았다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리었던 이 집은 육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부친 육종관이 민정승의 자손 민영기에게 사들여 고쳐 지으면서 조선 후기 충청도 반가의 전형적양식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육영수생가1974년 육 여사 서거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생가는 폐가의 길을 걷는다. 육여사 서거 후 네 해째. 1979년 10.26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방치되어 오다가 1999년 유족들이 건물을 완전 철거하면서 생가는 기단과 초석과 함께 터만 남게 된다.

이후 옥천군에서 2000년 9월,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우고, 민간이 주체가 된 “육영수여사 생가복원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육 여사의 회고에 근거하여 2002년 생가지 지표조사를 마친 다음 2003년부터 2010년까지 37억 5천만 원을 들여 건물 13동을 복원했다.

 


 

생가는 육영수여사의 회고에 의하여 건물의 배치를 살펴보면,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마방이 있고, 대문과 마주보는 곳이 사랑채였다 한다.

사랑채 왼쪽에 건너채가 있었고, 사랑채를 돌아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가 집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안채에서 왼쪽으로 행랑, 오른편으로 연당사랑, 뒤로 돌아 별당, 후원에 사당과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집의 후원과 과수원을 합치면 26,400㎡에 대지 10,000㎡ 규모의 집이니 규모면에서도 보통의 집 수준을 넘어선다. 아흔 아홉 칸의 집이었다는 이야기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박이일을 마무리하는 시간. 다음 모임장소는 울진 쪽에 금강소나무숲길로 잠정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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