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가기

정지용 생가 및 문학관

자어즐 2016. 3. 3. 23:04

 

장령산 한바퀴 돌고 휴양림에서 하루밤을 같이 하며 질펀한 회포를 푼 동무들과 놀이 길 나선다.

주위에 암봉이 700m 병풍 쳐진 부소담악이나 호반을 걸으며 시비와 향토전시관을 구경할 수 있는 장계관광지가 구미가 당겨도

시인 장지용의 생가와 문학관을 찿은 것은 시를 사무치게 사랑해서가 아니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니 갈 길 먼 우리에겐 시간상 적당한 이유가 더 컸다.

그런데 집앞에 개천이 흐르는 초가의 시인 생가도 구경하고, 그양반의 시와 삶을 보니 오히려 잘되었다 싶은 생각이 드는게 희한하다. 정지용.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자...

 

1. 누구가 : 패로우즈 친구들과 함께

2. 언   제 : 2016년 02월 28일(일) 비,눈 오락가락.

3. 어디로 : 시인 정지용 생가 및 문학관

4. 얼마나 : 

 

시인 정지용( 1902~1950)은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서 1902년 5월 15일(음력)에 태어났다. 정지용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생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의 죽향초등학교)에 다녔으며, 14살 때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지용의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집이 들어섰으나, 1996년 7월 30일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이동원,박인수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 더욱 사랑을 받게 된 정지용의 시 ‘향수'는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진 고향의 정경을 오롯하게 담아낸다.

 

향 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체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연마다 후렴시행이 따라와 음률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지용이 1923년 3월에 쓴 「향수」이다. 그러니까 휘문고보를 졸업하던 무렵이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향리를 생각하며 지은 시일 법하다. 그러나 넓은 벌 동쪽 끝은 다만 지용의 고향을 가리키는 장소만은 아니다. 그 누구의 향리라도 붙일 수 있는 우리의 국토 조선 땅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로부터 대륙에서는 우리를 東夷라 하지 않았던가. 그 동쪽인 것이다. 잔물결 반짝이며 실개천이 느리게 흐르는 곳, 옥답을 일구어주는 착한 얼룩백이 황소가 앉아 쉬며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늙으신 아버지가 편안히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고향에는 넉넉한 인심과 잔잔한 평화가 있고 때묻지 않은 꿈과 동경의 유년시절이 있다. 먼 신화와 전설을 그대로 간직한 순결한 이 땅, 짓밟히지 않은 우리의 향리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 누이, 앞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땋아 귀 뒤로 치렁치렁 넘긴 어린 누이가 있다. 누구도 거뜰떠보지 않는 노동에 시달리지만, 지친 마음을 푸근하게 받아주는 늘 편안한 아내가 있다. 그 살붙이 피붙이들이 도란거리며 욕심 없이 사는 초라한 지붕 위로 성긴 별들이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간다. 「향수」의 마지막 연에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짓밟혀 순결을 빼앗긴 조선 땅, 고향마을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엷은 근심이 깔려 있다. 그러나 화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조국,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고 순결하게 살아가야 할 향리 그곳을 잊지 말자고.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고. 지용은 일본놈들이 무서워 조선시를 쓰지 못하는 시대에 민족어와 풀뿌리말을 찾아내고 만들어 갈고 닦아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민족시인이다.
(이 시에서는 해설피「참하」함추름「휘적시든」서리 까마귀 등이 보이는데, 지용은 시어 선택에 있어서 어형을 변화시킨다거나 두 단어를 합성한다거나, 양성모음으로 바꾸어 쓴다거나 또는 우리말에 새롭게 의미를 첨가하여 강조하는 등의 언어적 기법을 최대한 활용한 시인이다).


 


1902년 6월 20일(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沃川) 하계리(下桂里)에서 약상(藥商)을 경영하던 정태국(鄭泰國)과 정미하(鄭美河)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연못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해서 아명(兒名)을 지룡(池龍)이라고 하였고, 이름도 지용(芝溶)이라고 하였다. 가톨릭 신자로 세레명은 프란시스코이다.
 

 


 

보통의 경우가 장독대는 뒤란에 위치하나, 정지용 생가의 장독대는 우물가 담장 밑에 다소곳하다. 우물 옆의 낮은 굴뚝도 눈여겨 볼일. 민가의 굴뚝은 그저 연기만 토해내면 그만이라 돌과 흙을 되는대로 쌓아 만들거나 깨진 항아리나 판자로 굴뚝을 만들어 뒤란에 두는 것이 보통이나, 어쩐지 이곳은 우물가 옆이다. 낮은 굴뚝의 연기는 바로 흩어지지 않고 집 마당을 휘돌아 나가기 마련, 연기는 소독기능도 한다하니 그 지혜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시인 정지용의 생가임을 알리는 표지판

 

 

정지용 생가는 방문을 항상 열어두어 찾는 이에게 그의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였음을 가구()로 알리고 있으며, 시선가는 곳 어디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않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향수'의 시어 따라 방안에 배치된 소품 질화로와 등잔은 자연스럽게 ‘향수'를 다시금 음미하게 하고 있다.

 


 

얼골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정지용은 대학 시절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잡지에 「카페 프란스」, 「이른 봄 아침」, 「바다」, 「향수」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신선한 감각과 이미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진정한 한국의 현대시는 정지용에게서 시작되었다’라는 견해가 있을 만큼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정지용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홀연히 서울에서 사라졌다. 북한군 문화선전대에 참여했다고도 하고 북한군의 폭격에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학계와 가족들은 정지용이 납북된 것으로 보았으나 정부에서는 월북 작가로 분류하여 그의 작품이 어둠 속에 묻혀버렸고 학계에서는 연구조차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1988년에 와서야 비로소 정지용의 시가 해금되면서 1989년 5월 14일 옥천읍 한가운데 있는 관성회관 옆 공원에 정지용의 동상과 시비가 세워졌다.



 

섬세한 이미지 표현과 서정적인 언어구사로 한국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 정지용( 1902. 5. 15~1950. 9. 25)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문학관이다. 2005년 5월 15일, 정지용의 생일에 맞춰 개관하였다. 대지면적 1,217m², 건물면적 426m²의 지상 1층 건물로, 정지용생가와 이웃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밀랍으로 된 주인장이 의자에 앉아 찿는 이들을 맞이한다. 같이 사진을 찍도록 모델도 되어 주고...

 







 

 

192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휘문고보 영어과 교사로 부임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재임하였다. 1930년에는 박용철(朴龍喆), 김영랑(金永郞), 이하윤(異河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金起林)ㆍ이효석(李孝石)ㆍ이종명(李鐘鳴)ㆍ김유영(金幽影)ㆍ유치진(柳致眞)ㆍ조용만(趙容萬)ㆍ이태준(李泰俊)ㆍ이무영(李無影) 등과 함께 9인회를 결성하며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또한 그해에 새로 창간된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그곳에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李箱)의 시를 소개하여 그를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34세 때인 1935년 그 동안 발표했던 시들을 묶어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부터는 ≪문장(文章)≫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이한직(李漢稷), 박남수(朴南秀) 등을 등단시켰다. 이 시기에는 시뿐 아니라 평론과 기행문 등의 산문도 활발히 발표했으며, 1941년에는 두 번째 시집인 ≪백록담≫을 발간했다.

 







 

1910년대 현대시의 출발 - 1908년 최남선이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며 서구적인 신문학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 김억은 서구 문예이론과 작품들을 번역.소개하고, 주요한은 불놀이를 통하여 자유시의 시대를 연다.

 

1920년대 낭만주의 - 1910년대의 계몽적이고 논리적인 시에서  1920년대 시는 주정적이며 감상적이었다.

3.1운동의 좌절에 따른 방향 상실과 절망을 표현하며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은 오상순, 홍사용, 이상화, 한용운, 김소월 등이다. 한용운은 이상화와 함께 저항문학의 경지를 보여주었고, 김소월은 전통적인 정감을 민요적 율조로 구성하여 우리 민족의 한(恨)을 노래하였다. 1925년에는 김기진, 박영희, 조명희 등이 카프(KAPF)를 결성합니다.  <조선프로레탈리아예술동맹>의 영어 약자로  문학 자체의 순수성보다 사회 변혁과 무산계급혁명이라는 목표아래 문학 행위를 전개한 예술단체입니다.

 

1930년대 모더니즘 - 1930년대에는 시문학사의 전환점이 되는 “시문학” 동인이 발족되어 정지용, 김영랑, 박용철, 변영로, 신석정, 김현구, 이하윤 등이 감각적인 언어의 세계를 보여준다. 1933년 8월 반카프적 입장에서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구인회>가 조직되면서 이태준,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정지용, 조용만등이 참여하였고, 1935년에는

김유정, 김환태 이후에는  백석, 이상 등이 참여합니다.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려 문학적 완성도를 높였으며, 기계문명과 도시생활의 영향 아래에서 사물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갖게하였다.

 

1940년대 1930년대 말기와 40년대  -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오장환, 서정주, 유치환, 김달주, 함형수 등이 <시인부락>을

만들어 인간의 생명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그리고 정지용이 <문장>지를 통해 배출한 청록파 시인들(박목원, 박주진, 조지훈)은 자연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추구한다. 광복과 독립운동을 위한 저항시인으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있으며, 이용익, 김광섭, 박남수, 노천명, 모윤숙 등의 시인이 등장하지만 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친일 시를 제외하고는 작품을 발표할 수 조차없는 암흑기를 맞이합니다.

 

1950년대 해방과 이후의 현대시 -  해방과 함께 침묵했던 시인들은 생명파와 청록파, 좌익 진영의 시인들, 전위 시인들이 활동하지만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단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난다. 김춘수, 김수영, 박인환, 신동엽, 구상, 조병화, 박용래, 김종삼등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새로운 시인들이 특색있는 목소리로 시단을 이끈다.

 




 

정지용 시인하면 시 ‘향수’가 교과서에 실린 것뿐만 아니라 노래로도 유명해진 사실을 누구나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정지용 시인은 불확실한 최후 행적으로 인해 한 때 월북작가라 몰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정X용’ 시인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과 문인들의 오랜 노력에 의해 결국 1998년에 해금되어 그의 시 향수는 그의 이름 ‘정지용’석자를 내걸고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문학관의 곳곳에서는 ‘그가 한국전쟁 직후 납북되어 처형당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추정’일뿐 더 이상 진척된 사실은 찾을 수 없었다.

 





 

전통적 서정에 바탕을 둔 빼어난 시어로 한국 현대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정지용은 6.25전쟁때 납북되었다는 이유로 한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소외되어 왔다. 1988년 납북·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계기로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시와 시학사에서 1989년 이 상을 제정하였다. 심사는 한햇동안 발표된 중진 및 중견 시인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성이 뛰어나고 낭송하기에도 적합한 시를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현재 상패와 상금 2,000만원이 수여되고, 시와 시학사에서 발간하는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시학》에 특집 시인으로 다루어진다. 제1회 박두진이 선정된 것을 비롯하여 제14회 김지하, 제21회 도종환, 2015년 제27회는 이근배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꽁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이제사 고향의  반대방향 내 사는 곳으로 가야지........

가는 길에 늦겨울 눈발 엄청 내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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