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구름속을 헤엄만 치다만 달마산

자어즐 2015. 4. 22. 23:07

이른시간에 일어나 친구 아들 결혼식 참여로 같이 못가는 김여사를 두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서 조용히 집을 나선다. 5시 조기 출발한 버스에서 비몽사몽하는 사이에 고인돌휴게소를 지난다. 설렘의 기다림이 무색하게 하루종일 비라는 예보에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랐지만 요즈음의 정확성에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 바다풍경과 기암괴석의 경관이 빼어나다기에 멀리 땅끝까지 찿아가는 길인데 우중이라니 참으로 애석ㅎ디. 보여달랜다고 무작정 보여 줄 수 없다고 새침하게 돌아선 여인네의 마음 마냥 투정부리는 달마산에 순응하며 다음에 다시 찿으면 속살까지 허락하라고 당부해 둔다. 달마봉에 가까워 질수록 나타나는 암릉길에 간간히 느끼는 스릴이 그나마 위안이다.

 

1. 누구가 : 홀로 인천 금호 산악회를 따라

2. 언   제 : 2015년 4월 19일(일요일)  비.

3. 어디로 : 해남 달마산[達摩山 489m]

4. 얼마나 : 5시간30분(간식시간 포함)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맥은 둔덕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뜨리지 않으며 이어진 다음 땅끝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야 갈무리하는 것이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 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소 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 를 일구었다고 한다.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 이동경로 : 도솔봉약수터-도솔봉-도솔암-떡봉-하숙골재-대밭삼거리-문바위재-달마봉(불썬봉)-미황사

 

▼ 10:37 도솔봉에 차량을 돌릴 공간이 있는지 택시로 확인하러 간 첨병이 위쪽에 없다하여 여기서 부터 걷기로 하고 하차하다.

 

▼ 뒤로가는 버스. 기사님 고생 좀 했을 게다.

 

 

▼ 11:09 40분 부지런히 올라 도솔봉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차량을 돌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우의를 입었으니 몸의 열기에 안경의 김이 없어질 줄 모르고.

 

▼ 돌로 쌓아 만든 벼랑  끝에 자리잡은 도솔암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어라.

 

땅끝천년숲옛길은 총52km로 이며 땅끝길(16,5km), 미황사역사길(20km), 다산초의교류길(15,5km)등 3코스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땅끝천년숲 옛길 전체 노선은 : 땅끝마을 땅끝 맴섬~ 땅끝탑~~ 땅끝호텔~ 도솔암~ 미황사~ 송촌1제~ 현산면 봉동계곡~ 덕흥리~ 대흥사

  ~삼산 구림리~ 용전리~ 산림리~ 나범리~ 중리~ 상가리저수지~ 옥천 용삼 삼거리~ 옥천면 청룡제~ 탑동(5층석탑)~ 세곡재로 이어진다.

 

 

▼ 도솔암을 들리러 왼쪽길로 든다. 거리표시가 좀 이상하다.

 

 

도솔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 당대의 고승 화엄조사인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천년의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께서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 도솔암에서 수행정진 하셨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암자이다. 
  그 후로도 여러 스님들께서도 기도 정진하였던 도솔암은 정유재란당시 불에 타 흔적만 남았던 것을 30년 전 부터 여러 차례 많은 스님들께서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인연이 되지 않아 불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후 생불로 알려진<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대종사>스님께서 도 한때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후 2002년 6월8일 오대산 월정사에 계셨던 현 주지<법조>스님이 연속3일간 선 몽의 꿈을 꾸고  찾아와 도솔암

  터를 보시고 해몽한 후 32일 만에 단청까지 복원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 도솔암은 미황사의 열두 암자 중에 하나로 달마산의 가장 정상부에 있어 “주변 풍광이 워낙 수려하며 일출, 일몰 및 서 남해의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으며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듯 한 느낌과 달마산의 새로운 선경의 세계를  느끼게 한단다. 아이고 아깝아라.

 

바위사이에 아슬하게 걸쳐앉은 암자인데 사방으로 둘러싸인 바위 사이에 크고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힌 석축이 견고한 요새를 연상시킨다.

 

▼ 도솔암을 구경하고 오는데 10분이 채 소요되지 않으니 지나치면 손해.

 

 

 

 

▼ 12:47 떡봉. 도솔암을 구경하니 후미에서 따라가고 선두조는 주위 경관을 볼 것이 없으니 사진 찍을 것도 없고 내 빼기 바쁜 모양이다.

 

 

▼ 12:59 하숙골재

 

 

▼ 안계바다에서 시계비행이 아니고 계기비행하는 꼴이다.

 

 

 

 

 

▼ 13:49 부도전으로가는 대밭삼거리.

 

 

 

 

 

 

 

 

▼ 삐쭉삐쭉 선 모양에서 장가계의 전경을 연상해 본다. 날씨 좋은 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 김여사랑 같이 왔으면 암릉에 밧줄코스인 여기쯤에서 애로사항 많았을텐데 궂은 날씨에 안오길 잘한 것 같다.

 

▼ 날씨와 코스가 악조건인 오늘 처음 따라 나선 산행길인데, 이 젊은 부부 내일쯤 알 밴 몸에 몇칠동안 고생하지나 않을런지... 

 

 

 

 

 

 

 

 

 

 

▼ 14:54 작은금샘 이정목. 달마산 정상 0.5km.

 

 

 

 

 

 

 

 

 

 

▼ 15:30 달마산 정상

 

▼ 봉화대

 

 

달마산 정상은 불썬봉(489m)이다. 불썬봉은 이곳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봉화대 상봉을 이르는 말이다. 정상 표지석이 서 있는

  남쪽 바로 옆에 봉화대가 있다. 암반 위에 있는데 유구한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고 한다.

 

▼ 정상주 한순배로 목만 축이고 미황사를 향하여 하산...

 

▼ 15:55 헬기장

 

▼ 16:05 미황사 경내로 들어선다. 정상에서 내려오는데는 30분이 남짓이면 충분하다.

 

미황사는 신라 35대 경덕왕 때인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한 절이다. 사적비 기록에 의하면, 의조화상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금인이 나타나 “나는 본래 우진국(인도) 왕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구하였소. 이 곳에 이르러 달마산 꼭대기를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오. 소에 경전을 싣고 가다 소가 누웠다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하시오”라는 것이었다. 의조화상이 소를 앞세우고 가는데 소가 한번 땅바닥에 눕더니 일어났고, 산골짜기에 이르러 이내 쓰러져 일어나지 아니하여 그곳에 의조화상이 미황사를 지었다고 한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가 하도 아름다워서 따온 것이고, `황`은 소를 데려온 금인의 황홀한 색에서 따와 붙인 것이라 전해진단다.  

 

 대웅전은 보물 제 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신라시대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명승 제59호로 선정된 해남달마산미황사일원[海南達摩山美黃寺一圓]

백두산에서부터 굽이치며 남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가지를 친다. 호남정맥이다. 호남정맥은 너른 남도의 평야를 가르며 내달려 이 땅의 끝에서 멈춘다. 달마산(전남 해남군)은 호남정맥의 끝이자 한반도의 끝산이다.달마산은 해발 489m로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기세가 출중해 예로부터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렸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동백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가을에는 정상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억새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기이한 바위 능선의 총총히 붙어선 암봉들 사이로 길이 나있다.성난 짐승의 이빨처럼 봉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처음 보는 이들은 그 기세에 질린다.

미황사는 고찰이다. 백제시대에 세워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기록상으로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됐다. 아담하고 오롯한 절이다. 단청이 벗겨진 대웅보전은 보물 제947호이고, 응진전은 보물 제1183호이다.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자리잡아 불교의 남방유입설을 증거하는 절이기도 하다. 절 마당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보는 풍광이 볼만하다. 고색창연한 절집 뒤로 달마산의 송곳 같은 암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 16:26 돌병풍을 등 지고 앉은 풍광에 감탄해야할 상황은 오늘은 없고 다음을 기약하며 달마산 미황사의 일주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