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돌기

교동대교 넘어니 화개산이 보인다.

자어즐 2014. 9. 1. 19:36

 

 

교동대교가 개통된지도 두달이 지나가고, 한번 가볼려고 마음 먹은지도 한참되었으니 이번 행선지는 교동도로 정하고 앞서간 발자국을 찿아본다. 공통적으로 시간이 정체되어 있는곳이고, 황해도가 육안에 있어 해병의 검문을 받아야 교동대교를 넘을 수 있고 그리고 교동향교와 교동읍성 연산군유배지등등의 역사가 잔존하는 곳으로 기술되어 있다.눈으로 몇번을 익혀 두는데 정클에서 북한산 비봉능선-의상능선을 번개한다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암릉길이 많고 산행시간이 재법되니 김여사가 반대라 이번 주에는 양보하란다.

 

1. 누구가 : 집사람(김여사)이랑 두리서

2. 언   제 : 2014년 08월 31일(일요일) 구름,시계불.

3. 어디로 : 교동읍성-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대룡시장-남산포

4. 얼마나 : 교동도 체류 6시간

 

 이동경로 : (차량)-교동대교-고구저수지-교동읍성(남문)-교동향교주차장P-(도보)-교동향교-화개사-문무정-봉수대-화개산정상-

                   북벽망루-효자묘.화개약수-천화문-한증막-연산군유배지-교동면사무소-대룡시장-교동우체국-교동향교주차장P-(차량)-

                   남산포-월선포-교동대교

 

 

 

 

 

 

▼ 09:51 검문소에서 출입증을 받아들고 지난 7월1일에 개통된 교동대교(다리길이 3.44km)를 넘는다. 지리적 여건으로 어쩔수 없이 출입시간   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 마음 편치만은 않다.

 

▼ 고구저수지와 교동면사무소옆을 지나고 우체국도 지나와서 교동읍성 안내판을 보고 우회전을 했는데 입구를 지나쳐서 잠시 헤메다가    동네분에서 물어서 찿아왔는데, 보이는 상태에 실망스런 생각 든다. 관리 좀 잘하지 에~잉.

 

 

 

▼ 그래도 교동읍성 (喬桐邑城)은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단다. 둘레는 430m, 높이는 약 6m라고 하는데.,.

   1629년(인조 7)에 축조된 읍성으로 동남북 세 곳에 성문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세워졌는데, 동문은 통삼루(統三樓), 남문은

   유량루(庾亮樓), 북문은 공북루(拱北樓)라 하였다. 1753년(영조 29) 성곽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 성문을 다시 세웠으며, 1890년

   (고종 27) 동문과 북문을 다시 세웠다. 현재 동문과 북문은 남아 있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홍예(虹霓)만 남아

   있다.

 

 

 

 

▼ 다시 도로를 나와 우회전하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교동향교,화개사를 가리키는 안내판을 만난다

 

 

 

 

▼ 도로에서 교동향교로 들어서자 말자 보이는 것이 읍내리 비석군이다. 화개산 정상의 정자와 산불감시탑도 보이는 정도니 멀진 않다.

 

 

▼ 10:20 홍살문입구에 하마비가 있으니 옆의 주차공간에 주차시켜 두고 하마는 아니더라도 하차는 한다.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28호로 지정되어 있고,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148에 자리 잡고 있다.

 

 

교동향교[喬桐鄕校]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서울의 각 읍에 조상이나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 외삼문

 

 

▼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학생들을 가르친 명륜당이 있다. 

 

 

▼ 학생들이 기거했을 동재 앞에서 관계자가 한팀을 대상으로 교동향교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해설해 주고 있어 귀동냥한다.

 

 

▼노룡암[老龍巖]

 

 

 

 

▼ 김여사 뒤에 있는 문이 내삼문.

 

 

 

 

▼ 성현 25위의 위폐에 우리나라 최초로 공자의 초상을 봉안하고 있다는 대성전은 문이 잠겨서 내부는 구경을 못하니 수박 겉햝기다.

 

 

 

 

 

▼ 나가기 전에 동재 마루에 잠시 걸터 앉았다.

 

 

 

 

 

▼ 초등학교시절 외가에 들어서면 대청마루 옆 안방과 연결된 부엌은 배치는 조금 틀리지만 가마솥 걸어두고 아궁이에 불 넣어 불수시게로

   조정하던 광경이 눈에 어린다.

 

 

▼ 10:39 교동향교에서 16~7분 구경하고 나오니 이정표가 화개사방면을 오른쪽으로 가르킨다.

 

 

 

▼ 잠자리 한마리가 줄기 끝에 앉았길래 보다보니 뒤에 안내판 하나가 있어 그냥 지나치기 찜찜하니 확인 한번 해 보자.

 

 

 

▼ 와서 보니 교동향교 서쪽에 위치한 성전약수란다, 아토피피부병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표지의 내용이지만 몇초에 한반울씩 떨어져 고인

   지금의 물 상태로는 마시기도 내키지가 않는다.

 

 

▼ 교동향교에서 화개사 가는 길은 숲길 반에 포장 길 반이다. 발길 옆으로 나래가막살이꽃이 지천이더라.

 

 

 

▼ 10:51화개사.읍내리에 주차할 공간이 어떨지 했는데 기우다. 향교입구도 좋고 화개사도 주차공간 괜찮다.

 

 

▼조금 더 가면 화개사 표지석이 있는 계단이 나올텐데 성급하게 먼저 나온 계단을 오른다.

 

 

▼ 잘 정돈된 잔디의 화개사 앞마당.

 

 

 

 

 

▼10:57 화개사를 가로질러 나오니 화개산 정상 1.5km 이정표랑 만난다.

 

 

▼11:02 문무정.어느 곳이 그 흔적인지 분명하지 않다.

 

 

▼화계사에서 여기까지는 임도로 대로이고 이제부터 소로로 변환되고 조금만 가면...

 

 

 

▼ 긴 구간은 아니지만 자갈길과 로프가이드 길이 교대로 지나친다.

 

 

 

 

 

 

 

▼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돌아가라는 붉은화살표 표지판을 따라 도니 화개산 봉수대라고 열평 정도 됨직한 돌을 쌓아 만든 자리가 있다. 

 

 

 

 

▼ 선명하지 못하지만 섬들이 떠있는 바다를 보며 걷기 참한 요런길 산책하 듯 걷는다.

 

 

▼11:29 정상 턱 밑에 이정목. 효자묘자리로 가지말고 강화나들길로 가야 정상구경 가능하니 옆으로 새지 말기.

 

 

 

 

▼11:30 화개산 정상의 산불감시탑과 정상목. 화개사에서 30분이면 충분하다.

 

 

▼ 정상의 팔각정 대운정[戴雲亭]. 구름을 이고 있는 정자에 걸맞게 주위 경관 멋지게 펼쳐지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먼저 진을 치고

  있는 팀이 있어 방 빠지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 본다.

 

 

▼ 안내판에 나타난 섬과 산을 실재와 하나씩 마추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 정자에 자리잡은 김에 주위를 안주삼아 곡차 한잔하고 점심까지 해치운다.

 

 

 

 

 

 

▼교동도를 들어와서 읍내리로 가면서 지나간 고구저수지. 뒷쪽은 가깝지만 너무 먼 북쪽이고 날 좋으면 개성의 송악산도 보인다는데...

 

 

 

▼ 산불감시탑에 올라보고 하산길에 드는데...

 

 

 

▼ 12:35 정상에서 어느새 65분이 흘렀고 처음보다 시계는 조금 양호해진다.

 

 

 

 

▼12:37 정상 인근에 성혈[星穴]바위. 성혈(바위구멍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적으로,하늘의 별자리,풍요와 다산[多産],

  장수, 태양또는 자연숭배,마을제단등 민간 신앙의 일종으로 바위구멍을 통한 주술적 행위희 흔적이다. 주로 고인돌에서 볼 수 있으나 자연

  암석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바위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은 지점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자연숭배 신앙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 12:42 북벽망루의 흔적

 

 

 12:47 안타까운 전설이 있는 효자묘[孝子墓]

 

 

 

 

 

 

▼효자터 근처에 있는 화개약수.육십 중반은 됨직한 한 양반이 어디서 왔냐며 말 건낸다.자기들은 고향이 이곳인데 모처럼 7남매가 모여 이곳

  을 찿았노라 하는 표정에 주체하지 못하는 즐거움이 묻어 있어 흐뭇해진다. 여기 약수가 참 좋으니 한잔하라고 덧붙인다...

 

 

▼13:04 벤치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쉼터를 거쳐 걷기 좋은 길따라 오면 만나는 천화문[天華門]도 지나고...

 

 

▼13:06 필란드쪽의 사우나만이 목욕문화의 전부가 아니고 옛적에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긴 한증막도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안쪽을 들여다보니 빈공간에 누군가가 촛불 하나 피워두었다.

 

 

▼ 13:10 연산군유배지150m 표지판이 있는 사거리 방향지시목을 보고 연산군유배지 보러 간다.

 

 

▼다른 시설물은 없고 공터에 연수 얼마되지 않았을 석비 하나 딸랑 자리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위리안치[圍籬安置]란 말의 뜻은 일정한

  태두리 안에 편안하 묘셔둔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귀양을 간 罪人(죄인)이 그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두는 모진 가택연금인 셈이다.

 

 

▼다시 내려오는 길가의 밤나무에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자의던 타의던 떨어 밤송이는 쪼개진 채 알맹이들은 외출하고 껍질만 길에

  즐비하게 널려있다.

 

 

▼13:23 연산군유배지 표지목 사거리로 다시 나오니 맞은편 고구리 방향에 이런 푯말이 서 있다. 대룡시장이 오늘 목적지 중의 하나라서 따라

  가다, 길이 수상하여 물어니 틀린방향은 아닌데 사거리로 원위치해서 면사무소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일러준다.

 

 

▼ 다시 온 이곳에서 면사무소 가르키는 쪽으로 잠시 따라가니...

 

 

▼ 13:33 주차장에 선 농산물 주말장터를 만나서 이천막 저천막 기웃거린다. 교동쌀,도토리가루,가지,감자,파프리카....

 

 

▼주차장 진입로를 따라 내려오니 오면서 차로 지나친 안면 있는 이 곳으로 튀어 나온다.

 

 

▼ 14:01 면사무소.주말장터를 거치지않고 직진했으면 등산로 안내판 옆길로 해서 면사무소로 들어 왔을텐데,판단착오로 괜히 포장도로로

  따가운 햇살 맞으며 돌아 온 느낌이다.

 

 

▼ 등산안내도에 교동도의 설명과 화개산 구간별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해 놓았다. 1개월 화개산을 등산하면 4.47kg 감량효과의 답까지...

 

 

 

 

▼ 대룡시장 어디로 가요? 가르켜 주는 손가락 방향으로 쫄쫄 길 따라 오면 100년의 역사를 넘긴 교동초등학교를 끼고 돌아 나온다.

 

 

▼14:08 시장의 풍경이 기억의 한 켠에 있는 것과 오버랩 되어지지만 어느 순간에 바뀌어 버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예전에 1박2일의 촬영지였던 교동이발관도 그대로란다.

 

 

▼ 성냥갑머냥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이 있는 시장 골목을 돌아 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안 걸린다.

 

 

 

 

▼ 김여사 천연염료로 무늬를 염색한 나염손수건 한장 시장구경 기념으로 구매한다.

 

 

▼14:18 시장을 나와서 처음 만나는 교동도의 주유소를 지나 포장길을 부지런히 걸어 차 찿으러 간다.

 

 

▼ 14:45 포장도로 30분 안되는 거리를 걷는 것이 엄청 멀게 느껴지고 지루해서 달갑지가 않더라.

 

 

▼ 14:55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 설치되었던 교동 남산포로 차머리를 돌린다. 첨에 교동읍성의 위치를 가르켜준 양반이 이 곳에

   먹거리도 있으니 한번 가보라는 권유가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 새우젖과 새우말린 것을 사고 꽃게튀김 한접시 맛 본다. 바싹바싹 껍질 채 씹는 맛이 괜찮은데 운전 땜에 처럼이 한잔 곁들이지 못해 섭섭다.

 

 

▼ 食 했으니 景 할 차례라서 주위 한번 둘러본다.

 

 

 

 

 

 

▼ 별립산

 

 

▼ 석모도 성주산 앞쪽에 상여바위...

 

 

 

▼ 이 동네가 네비가 지원되지 않는 지역이라서 감으로 방향을 잡아 오니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 강화도와 이어주던 선착장인 월선포까지 와

   버렸다. 예전에는 이 시간이면 많이 붐볐을 테지만 한산한 곳을 차창 너머로 보고 길 찿아 다시 나온다. 

 

 

▼ 15:51 별립산을 배경으로하는 교동대교를 건너 나온다. 정확히 6시간만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면적이 44.32㎢ 섬으로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는 지명을 부여받았고, 조선시대 강화도호부와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교동도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고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평야가 있는 북녘 땅이 지척인 곳

으로 6.25전쟁 당시 이북 황해도 및 인근주민들이 피난처로 임시 거주 하던 곳이다. 종전 후 북쪽 고향땅만 바라보며 돌아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실향민들의 60여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시간이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섬이다.

교동도는 작아 보이는 섬이지만 이곳에는 현재 17개리에 약 3,200명이 살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다. 섬은 간척사업을 하여서 인지 섬의 서쪽으로 제법 넒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교동도에서 재배된 쌀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 다녀 온 백령도의 경우에도 주민들 대다수의 주업이 농업인 것과 같이 섬에 의외로 농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활동되었으며, 특히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1506. 9. 2일 교동으로 유배되어 11.6일 사망 시까지 교동에 유배되어 위리안치 되었으며, 유배지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화개산의 명칭은 산정의 형태가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화개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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