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아홉골짜기 기암괴석 품에 둔 도명산 오름길

자어즐 2014. 7. 22. 19:13

 

화양구곡 산책길에서 도명산 산길까지

 

7월 정기산행으로 등산&피서를 겸해서 도명산(화양구곡) 가는데 삼겹살과 0가 대기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조기 마감 우려가 있으니 날래날래 신청해 놓으라 한다. 아침에 약속장소로 나가야 하는 부담 적은 것이 좋은 점 중 하나인 동네출발 산악회에 산행동참을 신청해 둔다.

버스 한대로 부족했는지 승합차 한대가 더해져 아침6시가 넘어서자말자 출발한다. 평택제천고속도로의 안성맞춤휴게소에서 한숨돌리고는 증평IC를 나와 괴산 화양계곡으로 데려다 놓는다. 세번째 동행이라 서먹함이 줄어들어서 지난번 보다는 월씬 낫다.

 

1. 누구가 : 김여사(집사람)랑 두리서 인천 금호 산악회를 따라

2. 언   제 : 2014년 7월 20일(일요일)  흐림.

3. 어디로 : 화양계곡 도명산[道明山 643m]

4. 얼마나 : 4시간27분(간식,휴식시간 포함) 탐방지원센터 원점회귀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도명산은 총 길이 6km에 달하는 화양구곡의 시원한 절경을 끼고 있어 여름철 계곡 산행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도명산은 국립공원 속리산에 속하여 있으며 그 중에 예로부터, 천하 절승지로 이름난 화양동계곡 남쪽을 가로 막고 서있는 명산으로 화강암의 바위봉과 기암석벽이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9부 능선 정도 낙양사가 있었다던 낙양사터에 마애석불이 있다. 마애석불은 도명산 제1 경승지로 손꼽힌다. 고려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최고 30m나 되는 수직암벽에 각각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부처님의 발끝에서는 물이 샘솟고 있다.

정상은 크고 작은 바위 다섯 개가 하나로 정상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북쪽 아래로는 화양동 계곡과 군자산, 칠보산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대하산, 남쪽으로는 낙영산, 주봉산, 멀리 속리산 능선과 문장대가 들어온다. 주변에는 분재처럼 자란 소나무가 정취를 더한다.

화양동계곡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절경이 아홉 곳이나 된다고 해서 '화양구곡'(華陽九曲) 또는 '화양동 소금강'으로 불린다. 이곳은 경치가 너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조선시대의 조선조 대유학자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이 조정을 물러나와 은거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우암 선생은 이곳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닮았다 하여 스스로 제1곡부터 9곡까지 이름을 붙이고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등의 바위에 글씨를 새겼다.

 

▼ 이동경로:탐방지원센터-운영담-금사담-첨성대-도명산정상(643m)-마애삼존불-장군바위-학소대-와룡암-능운대-탐방지원센터

 

 

▼ 09:11  3시간 남짓 달려서 팔각정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다른 산악회 버스 5대가 우리보다 먼저 와 있다. 화양제1곡 경천벽은 주차장

   못미처에 있어서 지나치며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하늘을 치솟은 바위가 이름마냥 장관인데 대게가 우리와 같은 처지일 게다.

 

▼ 산을 오르기 위해 준비운동으로 몸풀기. 하산후 이 주위에서 자리잡고 식사와 물놀이를 할 예정이란다.

 

▼ 출발전에 단체 찍은 사진 하나 가져온다.

 

▼ 09:22 주차장을 나오는 곳에 자리한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동 안내도로 보면 첨성대-도명산-학소대가 6km이고 여기서 첨성대와 학소대의

   거리 4km를 합쳐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모두 약10km인 셈이다.

 

▼ 09:24 탐방지원센터.

 

▼ 왜 화양동이냐고?  화양동은 원래 황양목이 많아 황양동이었다. 그러다 우암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이곳에 살면서 중화의 화(華)와

   일양래복(一陽來復·흉함이 가면 길함이 다시 되돌아온다는 주역괘의 한 구절)의 양을 따서 화양동으로 고쳤다고 한다.

 

▼ 오랜세월 화양계곡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느티나무들.

 

▼ 느티나무 참나무 숲이 포장도로이긴 해도 싱그럽게 다가온다.

 

▼ 화양2교와 그 위를 지나며 보는 계곡.

 

 

▼ 다리를 지나 맞은편에 기암이 폭포마냥 흘러내리듯 서 있는데 이 곳이 제2곡 운영담(雲影潭) 이다. 경척벽에서 약 1.2k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이름했단다. 왼쪽바위가 얼굴을 닯은 모양인데 혼자만의

   생각인가..

 

▼ 지금은 물의 색상이 탁해서 운영담이라 하기는 좀 그렇지만 주위 풍광의 기세에 모두들 사진 한장씩은 담아둔다.

 

▼ 그림의 오른쪽 바위 아래에 예서체로 운영담(雲影潭)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

 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

 려는 정신이 깃든 곳일 뿐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한때는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이다.

 

▼ 만동묘로 들어가는 외삼문 양추문.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운 명나라 황제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곳이다.

 

우암 송시열의 유적 앞에 있는 제3 읍궁암(泣弓岩).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읍궁암에서 매일 새벽과 효종 (孝宗,

  1619~1669)의 기일에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암은 효종과 함께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

  (청나라를 정복론)을 도모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효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그의 대업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한이 바위에 서린

   것일까? 읍궁암 곳곳에 사람이 앉은 자리 크기의 움푹 팬 데가 여러 곳이다.

 

▼ 괴산 화양서원의 묘정비.서원의 건립취지와 그 서원의 주인,모시는 인물에 대한 문장등을 기록해 두는 것이다.서원이 철폐되면서 땅 속에

   묻힌 것을 광복 후 다시 찿아 세웠단다.

 

 

구곡의 중심이된다는 제4곡 금사담(金砂潭)과 암서재(岩棲齋)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

   (金砂潭)이라 불리우며, 조선 숙종(肅宗, 1661~1720)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계를 은퇴한 후 이곳 바위들이 호위

   하는 반석위에 집을 지어 이름을 암서재(岩棲齋)라 하고 이곳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였다. 이 서재도 우이산에 있던 주자의

   운곡정사를 따라 한 것이다.

 

▼ 09:44 첨성대 들어가는 입구의 안내도.도명산 코스는 보통수준으로 3시간 30분이 예상 된다

 

 

▼ 등산로로 들어가기 전에 화양 제3교 위에서...

 

 

▼ 돌들 틈에 나무뿌리들이 살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들이 애처럽다.

 

▼ 김여사 그쪽은 탐방로가 아님이여. 좌틀!

 

▼ 금사담 암서제가 앞에 있는데 날씨가 화창하면 계곡과 잘 어우러 질텐데...

 


▼ 10:23 위치목 07-07 통과

 

▼ 날씨와 더불어 은근한 오르막에 땀을 서너말 쏟아내어도 기분은 나쁘진 않다.

 

▼ 암석들이 흘러 내린 암괴류의 흔적을 찿는다.

 

 

 

▼ 10:42 도명산 1.2km

 

 

▼ 나무가지 사이로 보이는 주차장을 찿았는데 사진으로는 희미하게 잘 표시되지 않는다.

 

▼ 11:00후미조로 도착하니 쉬고 있던 선두조는 출발하는데 바로 따라 갈려다가...

 

▼ 정상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 곡차 한잔 풀어 놓는다. 닭가슴살과 김치, 포두부 묻힌 것 안주하여 이런 저런 얘기 곁들이니 맛이 그만이다.

 

▼ 한번 충전으로 5시간 간다는 목걸이 선풍기,얼음에 물을 넣어 분무되는 물통, 재미있는 물건도 구경하다 보니 25분여가 순식간에 지난다.

 

▼ 돌에 뚫린 구멍은 어떤 용도인지 모른다.

 

 

▼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이웃사촌 부부,처형이랑 동행하는데 어쩌다가 같은 조가 되었는데 인상들이 참 좋다.

 

▼ 육산이었는데 꼭데기만 바위를 올려 놓았는지, 만들어진 바위길이 심심치 않게 해주어 괜찮다.

 

 

▼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으로 통과하니.

 

▼ 왼쪽에 팔각정 주차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올라온 능선길 그린다.

 

▼ 좁은 철계단길 오르면

 

▼ 시야 트인 장소에서 베낭 풀어 놓은 산객들 더러 있고 멋드러진 소나무와 주위 산을 배경으로 사진놀이 하는 사람들 다수다.

 

 

 

 

 

▼ 정상 연결하는 마지막 계단길.

 

▼ 조봉산(687m)

 

▼ 정상표지석이 있는 얼마되지 않는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여서 내 순서 기다리며 한참의 시간을 죽인 듯하다. 정상석 옆에 있는 조망안내판.

 

▼ 11:56 순서를 가다려 기어이 인증샷하다.

 

 

▼ 최고 꼭데기는 이 바위 제일 위. 다섯개의 바위가 정상을 형성하고 있다.

 

▼ 앞이 낙영산, 그 옆에 뽀족 올라온  남산,뒤는 희미하여 보이지도 않는다.

 

▼ 정상석 있는 자리의 모습. 추억이 될 멋진 작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산객들...

 

 

 

▼12:00 하산시작

 

학소대 2.8km

 

▼ 아래 위로 정체가 너무 심하여 교통경찰이나 봉사요원 배치가 필요한 작금의 현상이다.ㅎㅎㅎ

 

▼ 12:10 공림사 갈림길.

 

▼ 12:12 마애삼존불상.생각보다 상당한 높이까지 조각되어 있다.

 

 

▼ 음용은 부적합한 것 같이 보이는 약수물, 주인 기다리는 바가지 한쌍이 애처럽다.

 

 

 

▼ 하산길 건너에 보이는 긴바위(?)와 코끼리바위

  

 

하산길에 경사도가 조금 있어서 곡차 한잔이상의 정상주는 자제를 요하는 사전안내 내용에 동의 한표.

 

▼ 12:37 장군바위 앞에서 모델이 되다. 바위 사이에 샘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보지만 확인은 못했다.

 

 

▼ 12:43 도명산1.7km,학소대1.1km 속리07-02 이정목

 

▼ 조금전 개울에서 세수 한번 했는데도 흐르는 땀 막지 못하고 부채바람도 더운 바람 난다.

 

▼ 13:07 학소대 다리도착. 첨성대 입구에서 도명산 넘어오는 6km에 3시간 24분이나 소요되었다.

 

▼ 철다리를 지나니 심상치 않은 풍광이 8곡 학소대 (鶴巢臺)이다. 큰 소나무들이 운치있게 조화를 이루며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학소대라 이름한다.

 

 

 

▼ 학소대에서 300m정도 거리에 있는 7곡 와룡암 (臥龍巖).이 바위는 화양구곡 중 제 7곡으로, "용(龍)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와룡암이라 부른다는데 설명판이 없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겠다.

 

제6곡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한다고. 전기선이 작품 망친다.

 

능운대를 지나자 말자 공기를 넘어지지 않게 블럭 쌓듯이 잘 올려 놓은 돌이 눈에 들어 온다. 이것이 제5경 첨성대 이다.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수 있다하여 첨성대라 부른단다.

 

▼ 오를 때 본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찿아 움직이는 모습이 전체를 활기차게 만드는 듯하다.

 

▼ 13:33 등산로 입구로 원위치한 것은 3시간 49분이 지난 후다. 

 

그리 커지는 않지만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른 듯한 연륜이 묻어나는 나무가 화양서원 묘정비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 13:51 탐방지원센터에 붙어 있는 화양구곡 소개게시판. 버스 창으로 본 경천벽을 본 것으로 간주하면 제9곡 파천만 못본 셈이다.

 

▼ 후미조 마지막으로 도착하여 삼겹살에 밥과 하산주 한순배 나누고는 팔각정 휴게소 뒤 계곡물에 휴대전화만 빼고 풍덩하다. 

 

▼ 여름산행은 이런 맛에 계곡이 붙어 있는 산을 찿아다니는 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오늘 산행 마침표 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