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서울한양도성길. 백악,낙산구간

자어즐 2022. 3. 6. 12:19

김여사랑 둘이서 아침 6시 10분에 20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사전투표소를 찾는다. 이곳 투표소는 이층인데 일층 입구에서부터 이미 줄이 이어진다. 사전투표는 어제와 오늘 이틀동안 가까운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가져가면 가능하다.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5년의 결정할 중요한 한 표다. 정치교체냐 아니면 정권교체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지선버스 7212번·1020번·7022번을 타는 버스정류소로 나온다. 7212번 버스가 바로 와서 몸을 싣는다. 10여분에 자하문 고개, 윤동주문학관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걸어서 2분이면 창의문이다. 서두른 탓에 약속 장소인 창의문 안내소 도착이 일러 윤동주 문학관 관람하려고 했더니 오픈 전이다.

오늘은 한양도성길 백악, 낙산구간 도보행이다.  

 

1. 누구가 : 병희. 수기, 승섭, 윤배, 호상이랑 여섯

2. 언   제 : 2022. 03. 05(토)

3. 어디로 : 서울한양도성길 백악, 낙산구간

4. 얼마나 : 3시간 50분 [휴식, 식사시간 포함]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한 곳이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大門은 흥인지문[興仁之門], 돈의문[敦義門], 숭례문[崇禮門], 숙청문[肅淸門]이며 4小門은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 이동경로 : 창의문 - 창의문 안내소 - 백악 돌고래 쉼터 - 백악 쉼터 - 백악마루 - 1·21 사태 소나무 - 청운대 - 백악 촛대바위 - 숙정문 - 말바위 안내소

               - 우수조망명소 - 와룡공원 - 경신고등학교 - 혜화문 - 가톨릭대학 뒷길 - 낙산공원 놀이마당 - 낙산정상 - 흥인지문

 

한양도성길 :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등 내사산 및 4대문, 한양도성을 잇는 내사산 둘레길 18.6km

1. 백악구간       : 4.7km, 3시간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숙정문, 말바위 안내소, 와룡공원을 지나서 혜화문까지 이르는 구간.

2. 낙산구간       : 2.1km, 1시간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낙산공원, 한양도성 박물관, 동대문 성곽공원을 지나서 흥인지문까지 이르는 구간.

3. 흥인지문구간 : 1.8km, 1시간    흥인지문에서 시작하여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광희문을 지나서 장충체육관까지 이르는 구간.

4. 남산구간       : 4.2km, 3시간    장충체육관에서 시작하여 장충체육관 뒷길, 나무계단길, N서울타워를 지나서 백범광장까지 이르는 구간.

5. 숭례문구간    : 1.8km, 1시간    백범광장에서 시작하여 숭례문, 소의문 터, 정동을 지나서 돈의문 터까지 이르는 구간.

6. 인왕산구간    : 4.0km, 2.5시간  돈의문 터에서 시작하여 월암근린공원, 인왕산 순성길을 지나서 창의문까지 이르는 구간.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자하문 고개에서 버스는 내린다. 창의문으로 가는 입구에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북한 124부대 무장공비 31명과 교전하다가 전사한 최규식 경무관(당시 총경·종로경찰서장)과 정종수 경사(당시 순경)의 동상과 흉상이 있다.

맞은편에 윤동주 문학관과 그 뒤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문학관 전시 시간이 10:00부터 여서 아직은 문이 닫혀 있다.

 

07:37 창의문(자하문)

글자로는 彰 [드러날 창] 義 [옳을 의], 옳고 바름을 드러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진 창의문이다. 자하문[紫震門]으로도 많이 불리는데,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였던 자하동과 비슷하여 붙은 별칭이다. 

 

보물 제1881호 창의문[彰義門]은 인왕산과 백악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1396년(태조 5)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서북쪽에 위치하는 문이고,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년(1741) 다시 세운 것이다. 영조 때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 이 현판은 지금도 그대로 걸려있다. 

 

10:12 창의문 안내소

안내소에서 출입 명패를 받아 목에 걸고 게이트를 통과한다. 예전에는 신분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간다. 괜히 신분증 잊지 말고 준비하라고 했구만. 

 

창의문 안내소에서 백악마루까지는 도성을 따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는 완만하다가 백악마루에 가까워질수록 가파르다. 숨이 차오를 때쯤에 쉼터가 있다. 돌고래 쉼터와 백악 쉼터 두 군데이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좌로 고개를 돌리면 왼쪽에서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이 펼쳐지고 가장 높게 보이는 보현봉에서 오른쪽으로 형제봉 능선이 이어지는 북한산 능선이 같이 간다. 뒤로는 인왕산의 성벽도 선을 만든다.

 

10:22 돌고래 쉼터
10:43 백악산 정상.

백악마루는 도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白岳山 海拔 342m’라고 적힌 표석이 서 있다. 처음 성을 쌓을 때 공사 구간을 97개로 나눴는데 각 구간의 이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붙였으니 시작 구간은 천(天), 끝나는 구간은 조(弔)였다. 이곳이 바로 천(天) 구간에 해당한단다.

 

1.21 사태 소나무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 1·21 사태 소나무가 있다. 수령이 200년 정도 된 나무인데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이 총탄 자국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 침투한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우리 군경이 교전한 흔적이다. 이곳에서 성 바깥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백악 사이에 자리 잡은 평창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선혜청의 부속 창고인 평창(平倉)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10:50 청운대

백악마루에서 260m 내리막 길 내려오면 전망이 좋은 청운대다. 경복궁, 광화문, 새종로, 관악산이 시원하게 터져 있다. 이 근방에 살고 있는 친구가 조선 건국의 큰 그림을 그리던 정도전의 의견에 한양이 건설된 설을 풀어놓는다. 백악을 주산으로 인왕산(우백호)과 낙산(좌청룡)을 호위하게 하여 도읍이 설계되었고, 좌 종묘와 우 사직, 유교의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이름 지은 사대문, 관악산의 화가를 한강과 해태상이 막는다는 등등의 야그...

 

소나무 호위를 받고 있는 海拔 293m의 청운대 표석
청운대에서 성벽을 넘어 성곽 바깥으로 잠시 나온다. 60cm가량의 반듯한 돌로 보수된곳은 순조(19세기)때의 성돌형태로 보인다. 40cm의 성돌 크기면 숙종시대다.
촛대를 닮았다고 이름 붙은 약 13m 높이의 촛대바위. 요정정치의 상징 삼청각[三淸閣]
11:23 숙정문

숙정문[肅靖門]은 한양도성의 북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며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여 '엄숙히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지어졌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숙정문 안내소에서 삼청각으로 갈 수도 있고, 일명 ‘김신조 루트’라고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과 하늘마루로 갈 수도 있다.

성문은 사대문과 사소문이 있다. 사대문은 유교에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사단(四端)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동서남북에 각각 대응시켜 동대문을 흥인문(興仁門), 서대문을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을 숙정문(肅靖門)이라 이름을 붙였다. 사소문은 대문 사이사이에 배치하였는데,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 서남에 소의문(昭義門), 서북에 창의문(彰義門), 동북에 혜화문(惠化門), 동남에 광희문(光熙門)을 두었다.

 

11:28 말바위 안내소

말바위는 삼청공원 안에 있는 바위로서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백악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여서 말(末) 바위라 하였다고도 하고,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전에 이 바위에 말을 매어 두어 말(馬) 바위가 되었다고도 한다. 동쪽 능선을 따라 백악에 오를 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을 매어 두는 바위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수조망소
성북동 조망 명소에서 와룡공원 가는 중간 쯤 체육시설이 있는 곳에서 거한 메뉴의 식당 차린다. 배가 빵빵해서 국수 잘 하는 집 가려던 게 없던 얘기가 된다.
취병(翠屛) 안내판이 붙은 울타리가 있는 성곽길을 따라 와룡공원으로 간다.

취병(翠屛)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대나무 울타리에 붙어 있다. 조선시대 식물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울타리로 궁궐의 핵심지역과 일부 상류층의 정원에만 사용했다고 한다.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 실물이 사라졌으나 창덕궁 후원에 복원된 바 있단다.

 

12:39 와룡공원. 와룡정
와룡공원에서 혜화로로 내려오는 길

마전터는 성북동의 옛 이름이다. 성북 2동에 있는 양쪽 골짜기의 물이 합하는 부근의 냇가. 이곳은 원래 물이 맑고 경치가 좋았지만 땅에 돌이 많아서 농토가 없고 시장이 멀어 사람 살기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조선 영조 때 김한구와 영의정 흥봉한이 건의하여 서울 각 시장에서 파는 포목에 대한 마전, 즉 광목을 삶거나 빨아 볕에 바래는 일에 대한 권리를 이곳 사람들에게 주어 생활을 유지하게 하였다고 한다. 

 

경신고들학교 뒷길. 혜성교회의 성벽 흔적들

경신고등학교 뒷길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골목길. 성벽이 심하게 훼손되어 군데군데 흔적만 남은 다. 경신고등학교 뒷길 초입에서는 성벽이 학교 담장으로 쓰인다. 경신중 · 고등학교를 지나면 ‘ㄱ자’ 모양으로 꺾인 주택 담장 아래에서 축대로 사용된 성돌들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혜성교회 계단 길 양쪽에도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하던 한양도성의 흔적은 100m 정도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가 두산빌라 건물 앞에서 다시 나타난다. 여기에서부터 구 서울시장공관 담장까지 150m가량 성벽이 이어진다.

 

첫 번째 유형은 14세기 말 태조 때의 성벽으로, 화강암이나 편마암을 거의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으며 수직으로 쌓아 올려 거친 느낌을 준다. 동북면의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서북면의 평안도의 민정 118,070명을 동원하여 지역별로 97개 구간으로 축성 구역을 나누어 쌓았다. 두 번째 유형인 15세기 초 세종 때의 성벽으로, 아랫부분은 2×3척의 긴 네모꼴의 다듬은 돌로 쌓고 윗부분은 작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중앙부가 밖으로 약간 튀어나왔다. 전국에서 322,400명의 민정을 동원하여 평지의 토성을 전부 석성으로 개축하고 성벽 높이를 보강, 여장도 완비하였다. 개천이 빠져나가는 부분도 水門을 2간 더 설치하였다.
세 번째 18세기 초 숙종 때의 성벽은 가로·세로 2척의 정방형 돌을 견고하고 치밀하게 쌓아, 성벽의 기울기가 일정하고 정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도성 수축의 필요성에 논의에 따라 북한산성을 다시 쌓고, 남한산성의 강화의 성을 보강하는 등 성역과 함께 진행되었다. 1704년(숙종 30년)에 시작하여 숙종 37년(1711)에 대규모의 도성 수축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13:14 혜화문

혜화문[惠化門]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년(1511)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문루가 없던 것을 영조 때에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에 새로 지었다.

 

서울 한양도성길 백악코스는 혜화문 까지다. 4.7km, 먹고 쉬고 해서 약 3시간에 왔다. 걷는 시간만 2시간 가량이면 되는 거리다. 낙산코스를 바로 잇는다.

 

13:18 혜화문 길 건너에 계단길로 낙산코스는 시작된다.
커톨릭대학교 뒷길.

도성을 따라 걷는 길은 대부분 성 안쪽에 조성되어 있어서 주로 어깨 높이 정도의 여장만 보인다. 그러나 낙산 구간은 전 구간이 성 바깥에서 걸을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물론, 암문을 통해 성 안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특히 가톨릭대학교를 따라 이어진 성벽길을 걸으면 한양도성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세종 · 숙종 · 순조 연간의 축성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13:36 낙산공원

장수마을에서 암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낙산공원 놀이광장이 나타난다. 낙산공원은 서울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릴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야경은 특히 아름답다. 백악과 인왕산에서 서울의 원경이 보인다면, 이곳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도심을 느낄 수 있다.

 

14:01 흥인지문[興仁之門]

흥인지문은 보물 제1호로 한양도성의 동대문이다.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의 지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동대문 바깥쪽으로 옹성을 하나 더 쌓은 것은 이 때문이다. 1907년 좌우 성벽이 헐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흥인지문에서 청계천 오간수문이 보이는 오간수교를 건너고 DDP를 지나서 제주 오겹살을 맛있게 한다고 추천하는 집 광희식당으로 들어온다. 1km가량 떨어진 거리의 식당이다. 친구가 주인장과 이야기 나누는 폼이 간간히 이용하는 단골 같다. 모처럼 칠친주를 말고 오겹살 안주가 친구들 이야기만큼이나 달달하다. 

멀리서 온 호상이랑 부족한 조금을 동대입구역 부근 뚱뚱이 할머니 족발집에서 보충하니 알코올에 몸이 얼얼하다. 한양도성길 걷는다는 게 핑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