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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칠구 전우들의 진주대첩[진주성 진양호]

자어즐 2019. 6. 4. 20:56

 

지난 18일 임모에서 결정한 진주대첩 계획을 아래와 같이 고지하오니 전우 여러분은 참조하기 바랍니다.

1.일시 : 6/1~6/2(1박2일)
2.장소 : 진주성 진양호 청학동마을
3.시간 및 이동 계획
《첫날》                                                       《둘째날》
1)7시 일산출발(임동석 카니발)                       1)07시 기상 
2)7시반 공항철도 계양역 주차장                     2)8시 지리산 산채나물밥 조식 
- 이종철 안호섭 채성병 장필수 합류                3)9시 지리산 청학동 마을 산책
3)8시반 서수원터미널 송창형 합류                  4)10시 출발 
4)10시 대전복합터미널 박희명 합류                5)12시 대전복합터미널 도착 및 중식
5)13시 진주수냉면 도착 및 중식                      6)15시 서수원터미널 도착
- 원귀현 곽철남 합류                                     7)16시 부평도착
6)14시 진주성 촉석루 관람                             8)17시 마곡 및 일산 도착
7)16시 진양호공원 산책
8)18시 오리백숙 석식
9)20시 숙소 도착, 소주한잔
10)22시 취침
4.참석비용 : 없음

 -작전 소요 비용은 연회비로 집행예정

 

이번에 작전을 주관할 원귀현 선배님, 그리고 작전차량을 제공해 주기로 하신 임동석선배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전우들의 작전 참가를 희망합니다.

 

임중위가 4월 국민연금 수령기념으로 저녁 한턱 쏜다고 모인 자리에서 얘기된 진주대첩의 작전계획을 안중위가 수립한 내용이다. 진주에서 소일하고 있는 원중위의 식당과 숙소 정보가 반영되어서 약간의 변동 사항은 있어도 첫날은 큰 오차없이 진행된다.중국에 나가있는 정중위, 전전날 모친상으로 참석 못하는 채중위, 피치못할 일이 있어 동행 못하는 장중위외 팔랑리 전우 일곱이 뭉친다. 작년 7월 창원 침투작전에 이은 두번째로 수행하는 작전이다.진주에 대한 기억은 한가지 외엔 생각나는 게 없다. 병과학교에서 교육받던 시절 김여사랑 이곳에서 데이트하고는 귀대시간에 맞는 광주행 직행버스를 놓쳤다. 할수없이 순천을 경유하다 보니 마음은 급하게 달렸는데도 조금 늦게 귀대했다. 그날 나의 원인제공으로 인한 구대원 전원이 야간 빰빠라를 해야 했다. 얼마나 미안하든지... 그 때의 진양호와 촉석루의 그림은 그려지질 않는다.

 

1. 누구가 : 원귀현,이종철,임동석,곽철남.박희명,송창형,안호섭

2. 언   제 : 2019년 06월 01(토)

3. 어디로 : 진주 진주성,진양호

 

▼ 진주냉면은 진주의 장어 비빕밥 헛제사밥등 진주별비 중의 하나란다.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란 것도 오늘에야 안다. 원중위가 추천한 진주수냉면에서 맛본 냉면과 육전은 명불허전이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소의 사골을 이용해 육수를 달이지 않고 고급 멸치에 속하는 죽방 멸치 또는 디포리와 바지락, 건홍합, 건황태, 문어, 표고버섯 등으로 해물장국을 만들어 육수를 만든다는 점이다. 또 벌겋게 달군 무쇠막대를 끓는 육수에 반복해서 담가 비린 맛을 제거한 후 15일간 저온숙성 시켜 깊은 맛을 낸다. 다른 냉면과 달리 잘 익은 배추김치를 다져 넣고 쇠고기 우둔살에 계란을 입혀 부쳐 낸 쇠고기육전과 지단 등 여러가지 고명이 얹어 모양새가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란다.

 

진주성을 구경하려고 공북문앞 주차장으로 이동. 공북문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와 진주지도에 북쪽으로 나 있는 문이다. 공북문의 공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여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고, 북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한다. 따라서 공북문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경의 뜻을 표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이다. 진주성의 실질적인 정문이며 주 출입문으로  2002년 5월 1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입장료 는 일반이 2,000원인데 자매도시 혁신도시시민등은 50% 할인이어서 김천시민인 박중위가 해택을 받는다.

 

오른쪽으로 북장대로 해서 박물관도 구경하고 촉석루를 한바퀴 돌아올 참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첩을 이루었으며, 충무공 시호를 받은 김시민 장군 동상

 

영남포정사 문루(嶺南布政司 門樓)

 

1618년(광해군 1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관문이었고 1896년 경상남도 관찰사의 정문이 되어 영남포정사라고 하였다. 1925년 경상남도도청이 부산부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도청 정문으로 사용되었다.(진주는 1896~1925년 경상남도도청 소재지였다.) 문루 앞에는 수령 이하의 사람은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뜻의‘수령이하개하마비(守令以下皆下馬碑)’가 있다.

 

진주성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시에 성내와 외성의 군사를 지휘하던 북장대[晉州城 北將臺].

 

북장대에서 보는 진주의 모습.

 

북장대를 일명 진남루라 칭하는 것은 내부 현판이 진남루로 되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성곽길을 가다 만난 포루.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다. 1607년 병사 김태허에 의해 진주성 내,외성에 포루 12좌가 설치되었는데 1969년부터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상징적으로 1개소만 복원하였다.

 

호국사[護國寺].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이 절은 원래의 이름이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고려말기에 왜구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기르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때는 승군[僧軍]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대에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서장대 성곽 아래에 음악분수가 있고 천수교가 남강을 가로 지른다. 

 

▼ 진주성 서장대[晉州城 西將臺]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과 한·일 교류사를 전시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으로 진주성 내에 위치한다.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지역 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임진왜란실, 역사문화홀, 두암실 등 기획 전시실과 3D 입체영상관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 건물은 우리나라의 목탑을 형상화한 것으로 우리나라 근대 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김수근이 설계하였다.

 

▼ 임진왜란실은 모두 보물로 지정된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 및 완구를 비롯한 임진왜란 관련 각종 무기를 중국과 일본의 무기와 함께 소개한다. 아울러 임진왜란 관련 다양한 주제와 전쟁 이후 동아시아 사회의 재편과 문화교류도 살펴볼 수 있다.

 

▼ 역사문화홀.  곳은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편안히 느껴보는 문화휴식공간이다. 도기바퀴장식뿔잔(보물 제637호), 청자상감매죽 학문매병(보물 제1168호)등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와 각종 역사 도서, 휴식의 공간을 복합 구성하고 있다.

 

3D 입체영화관에서 임진왜란 3대첩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진주대첩]을 입구에서 나눠 준 입체안경을 끼고 관람한다. 진주성 제1차 전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입체영화로 1592년 10월 5일부터 6일 동안, 김시민 장군의 지휘아래 민·관·군 3,800명이 합심하여 진주성을 지키고자 한 전투이며를 연출하고 있다.

 

촉석루를 등지고.

 

남강 건너에서 보는 촉석루 특히 야경이 좋다는데...

 

진주 촉석루(晉州 矗石樓).  미국 CNN에서 한국 방문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에 선정된 촉석루는 남강변 벼랑 위에 우아하고 위엄있게 서있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남강과 의암, 진주성과 어우러져 천하의 절경을 연출하며 진주 8경 중 제1경을 자랑한다. 벼랑 위에 높이 솟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촉석루는 전쟁 시에는 지휘 본부로, 평상시에는 향시(鄕試)를 치르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8호(6.25 불타기 전 국보 276호)

 

임진왜란 때 총지휘는 물론 남쪽 지휘대로 사용하여 남장대[南將臺]라고 하였다. 내부 현판.

 

▼ 진주 의암(晉州 義巖). 촉석루에서 남강쪽으로 계단을 내려오면 바닥넓이 3.5m×3.3m의 바위를 만난다. 의암이다.

 

의암은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다. 당초 위험해 보여 위암(危巖)으로 불리다가 논개가 순국한 뒤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조 7년(1629년)에 정대륭이 바위의 벽면에 의암이라고 새겼다.

 

진주의암사적비[晋州義巖事蹟碑]의 비각에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현판을 걸었다.

 

정식은 의암이라는 글씨를 쓴 정대융의 종손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외로이 가파른 저 의암 그 바위 위에 우뚝이 선 저 논개여! (獨肖其岩 特立其女)
저 여인인들 저 바위가 아니더면 죽은 곳을 그 어디에서 찾았으랴 (女非斯岩 焉得死所)
저 바위인들 저 여인이 아니었던들 무엇으로 의롭다 이름 하였으리오 (岩非斯女 焉得義聲)
남강 속에 외로운 의암이여! 만고에 꽃다운 논개의 이름이여! (一江高岩 萬古芳心)

 

의기사[義妓祠].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의기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다산 정약용의 중수기, 매천 황현 및 진주기생 산홍의 시판이 걸려있다.

 

 

 

 진양호[晋陽湖]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진양호는 맑고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서부경남의 유일한 인공호수로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전망과 아침에 피어나는 호반의 물안개와 황홀한 저녁노을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진양호는 서부경남의 대표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진양호공원, 휴게전망대, 봄 벚꽃터널, 경남유일의 동물원, 남강댐물문화관, 어린이 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 진양호전망대. 3층 규모의 현대식 휴게 전망대로 시원하게 트인 넓은 호반과 주변 시가지, 지리산, 와룡산, 자굴산, 금오산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 진주8경 중에 진양호의 석양이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 날씨도 꾸무리한데다 해가 지는 시간도 남아 있어 가슴에 남는 상상의 뷰는 아니어서 발걸음을 잡아 두질 못한다.

 

남강댐.경남 진주시 판문동()과 내동면() 삼계리() 사이의 남강에 구축된 다목적 댐. 1962년 4월에 착공하여 1970년 7월에 완공했으며, 길이 977 m, 높이 21 m이다.

 

▼ 일년계단(소원계단). 이 365계단을 이용하면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진양호에서 진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오리전문점 숭어리맛집으로 이동


▼ 오리고기전문점. 큰조롱오리백숙,산약초오리백숙,생오리,생오리불고기,용압탕,정식...용압탕이 생소해서 물으니 오리에 찹쌀, 대추를 넣고 한약재와 함께 푹 끓인 탕 요리란다. 삼계탕의 닭 대신 오리가 들어가는 것으로 대충 이해한다.

 

▼ 산약초오리백숙.

 

원중위가 마련한 오늘의 숙소는 주방시설 식당이 있고 노래방기기가 갖춰진 지리산 청핟동의 삼학양조,이지워터 공장. 청암면사무소에서 하동호를 끼고 청학로 굽은길을 따라 십리를 가다보면 오른쪽에 두동의 건물의 푯말이 서 있다. 청학동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 물이 있고 뒤로 지리산에서 뻗어내린 한자락의 봉우리에 둘러쌓인 산수가 수려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지역인 지리산 천연 암반수를 사용하여 소주를 제조하고 있다. 공장장이 여기의 물 하나는 죽인다고 침이 마른다.

 

▼ '언제나 좋은 벗'은 지리산 야생녹차 추출물이 함유된 혼성주. 희석주 '녹차소주'. 

▼ 이곳에 온 덕분에 증류주,희석주에 다양한 도수의 소주를 맛보고 소주에 대한 얘기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