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비슬산대견사.

자어즐 2018. 7. 23. 20:18

아버지 일곱번째 기일이 어제다. 김여사랑 둘이서 내려온 이곳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기온이 38도를 넘나드니 더위에는 유난스럽다. 대구 어느백화점 앞에 설치된 2.8m 길이의 대형 삼선 슬리퍼와 길바닥 위에서 그대로 익은 달걀 후라이, 더위에 녹아내린 라바콘의 조형물이 대구의 더위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 함께하지 못하는 아들내외가 사는 일본은 더 심해서 40도를 찍은 곳이 몇군데가 된다는 보도에 걱정스런 마음을 숨긴다. 일찍 출발할 수 없는 사정상, 저녁 아홉시가 넘어 도착하니 허리가 불편한 엄니가 제수를 장만하느라 애를 쓴 흔적이 눈에 보인다. 이른 시간에 도와 주러 오신 이모도 고맙고 송구스럽다.

에어컨이 식구들이 모이니 잘 돌아간다만 엄니 혼자 있을 때는 전기세 땜에 이 더위에 전시품으로 전락하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엄니가 외가가 있었던 현풍을 돌아봤으면 하는 눈치가 있어도 시간핑계로 못 갔는데, 일요일 고종사촌 혼사까지 볼 요량이라 오늘 한바퀴 돌아보자고 내려오는 길에 김여사랑 말을 맞추어 놓았다. 그래서 일찍 가시려는 이모의 발걸음도 잡는다.

 

앞산터널을 통과하면 빠르다고 일러주는 엄니의 말이 있었는데도 길을 지나쳐서 앞산순환도로를 올렸다. 거리는 별반 차이는 없지만 신호대가 시간을 조금 지체한다. 그래도 잘 뚫린 도로덕에 한시간이 안걸려 현풍으로 들어선다. 아파트숲으로 변한 모습에 눈이 크지고, 현풍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되면서 예전에 외가집이 있던 지도와는 완전히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이구동성이다. 현풍초등학교에서부터 한번 찾아보자시기에 그기서 더듬어 간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그때 서대구시외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월배,화원,논공,위천으로 낙동강을 따라 현풍까지는 2시간이 족히 걸리고 현풍다리에서 현풍천옆으로 봉동까지 또 한시간 작은 걸음 옮기던 기억이 선명하다. 돌들 사이로 흐르는 냇물 가로 작은 대나무숲은 어디에도 없다. 몇아름은 됨직했던 당산나무라도 있었으면 쉬이 알아볼텐데...

여기쯤이라고 짐작해서 좁은길 들어서니 마침 나오는 차가 여기로 길이없다는 말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뜨거운 날씨라 내리기를 붙잡는 엄니는 여기저기를 가르키며 소싯적에 놀던 일들을 회상하고는 이모랑 이야기 죽을 맞춘다.

 

유가사로 가는 길에 있는 상성폭포는 엄니의 국민학교[보통학교('06),소학교('38),국민학교('41),초등학교('96)]시절 소풍장소 중의 하나였단다. 한번은 남학생이 장난치다가 넘어졌는데 다행이 크게 다치지 않아 선생님에게 쉬쉬하고 아무 일없는 듯 왔다는 둥 기억을 하나씩 꺼내기도 한다. 유가사에 크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며 두리번거리다 찾아내고는 좋아라하는 모습에 나도 웃는다.

 

우리 엄니 1000m 이상에 자리잡은 절중에 하나인 비슬산 대견사에 언제 가 볼 수 있을까 싶어 이참에 3년전 참꽃축제를 보러 오르며 봤던 반딧불이 전기차의 힘을 빌어 그기까지 가볼련다. 좌우가 트인 전기차가 달리며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1. 누구가 : 어메,이모,김여사랑

2. 언   제 : 2018년 07월 21(토)

3. 어디로 : 현풍 비슬산 유가사,대견사

 

▼ 실선이 반딧불이 전기차의 운행 노선이다.

▼ 유가사에 들어서면 산재한 돌탑들이 먼저 객을 맞는다. 돌탑의 돌 한 개 한 개를 올리면서 소원을 빌었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의미를 곁들여 108돌탑을 세운다는 석비를 4년전에 본적이 있다. 

▼ 유가사 현판이 걸린 사천왕문과 범종루를 지나면 유가다원이 있는 시방루가 있고 그위에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입을 경계하는 글.

    말해야 할 때는 말하고 / 말해서는 안될 때에는 말하지 마라 /

    말해야 할 때에 말 안해도 안되고 / 말해서는 안될 때에 말해서도 안된다 /

    입아 입아 그렇게 말하여라

▼ 조용한 분위기에 차 한잔하고, 목수건도 사서 두르고...

▼ 노년의 지혜. 

▼ 찻집 관계자가 여기 밥이 맛있으니 공양하고 가라고 권한다. 내려가서 먹기에는 시간이 늦고 어정쩡해서 점심 신세를 지기로하고 공양간에서 나누어 주는 비빔밥을 먹는다. 맛이 담백하고 괜찮다. 각자의 식기는 설거지를 해두고 나온다.

▼ 대웅전 앞에 선 엄니. 작년까지만해도 사부작사부작 다닐만 했는데 올해는 걷는 것이 불편하다고 한다. 일년 반동안 병원 치료도 했는데 더 이상 호전될 기미가 없다니 걱정스럽다.

▼ 대견사 오르는 길은 아래서 통제를 한다. 반딧불이 전기차랑, 대견사 절차외에는 통과가 안된다. 돌아 나와 전기차를 탄다. 차비가 편도로 인당 5,000원이나 한다. 상행은 거의 매시 20분과 50분에 출발한다. 30분 가량 소요된단다.

▼ 전기차정류소. 여기서 대견사까지는 420m정도 거리다.

대견사는 설악산의 봉정암, 지리산의 법계사와 더불어 1,000m이상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이다. 유가면 용리 산1-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층석탑, 석축, 우물, 마애불 등만 남아 있던 절터에 부지면적 3,633㎡, 건축면적 186㎡로 총 50억원의 동화사 예산을 들여 대웅전 64.17㎡, 선당 58.32㎡, 종무소 58.32㎡, 산신각 5.04㎡등의 4동 규모로 2014년 3월 1일에 준공된 건물이다.
일연스님이 1227년 22세의 나이로 승과에 장원급제하여 초임주지로 온 이래, 22년간을 주석한 곳으로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 강제 폐사된 후 100여 년만인 2014년 삼일절에 달성군에 의해 중창되었다.

 

  대견사() 는 어느 때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었을 것이라고만 추정되는 이 절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문종이 절 지을 곳을 찾고 있었다. 하루는 세수를 하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신하들을 파견하여 그곳을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람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였다. 이 터가 중국에서 보였던 절터라 하여 절을 창건한 뒤 절 이름을 대견사라고 하였단다.

▼  비슬산 조화봉(해발 1천57m)에 설치된 홍수예보용 강우레이더 관측소.

▼ 대견사 입구에 있는 부처바위. 비슬산 해발 1000m 고지에 있는 고찰 대견사에서 천년을 이어온 자연 샘물이란 뜻의 천천수(千泉水)가 있어 그 시원함을 맛본다. 높은 절집이라도 물은 있을 터, 대견사에는 용천수라는 샘이 있다. 이 원래의 샘은 봉인해 두고 땅 속으로 관을 묻어 물길을 절 입구로 돌려 놓은 것이 천천수다.

▼ 琵瑟山大見寺重創碑.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 크게 깨우친다'는 뜻의 大見寺.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절내의 여러 석재들과 더불어 쓰러져 있던 것을, 1988년에 겨우 복원한 것이다. 일반적인 탑과 달리 절벽의 높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그 위로 기단과 탑신을 올려놓았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둔 것 외에는 거의 꾸밈을 하지 않아 소박하다.

만들어진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하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로 추측된다. 오랜 세월 무너져 있었으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산세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 위엄이 우러난다.

 

▼ 대견사에는 불상이 아닌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어 적멸보궁이라 한다. 대견사에 봉안한 진신사리는 2013년 11월 동화사가 스리랑카 쿠루쿠데사원에서 모시던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기증받아 이운한 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서기 103년부터 스리랑카 도와사원에서 보관해오다 1881년부터 쿠루쿠데 사원에 모셔진 사리 4과중 하나란다.

▼ 대견봉

▼ 대견사 남쪽 낭떠러지 벼랑을 받치고 있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1200년 동안 이 절터를 지켰다.

 ▼ 대구의 명산으로 팔공산과 비슬산이 있다. 산세로 보아 팔공산은 아버지산이고 비슬산은 높이 우뚝 솟아 주변을 끌어안고 덮어주는 어머니산이다. 절옆으로 돌개단 60여개를 오르면 트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비슬산 정상인 장군봉이 있고 오른쪽으로 월광봉, 앞은 참꽃(진달래)군락지이다.

▼ 하늘을 닿을 듯 벼랑 끝에 도도히 서 있던 석탑이 이렇게 보면 바위에 뿌리 내린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산하를 굽어 보는 명당자리에 앉아서 좋겠다만 내 옷 같지 않은 울타리 돌이 어색하다. 시간이 내옷으로 만들어 주겠지...  

▼ 참선굴에서 바라보는 석탑. 

▼ 3층 석탑과 함께 대견사터를 지킨 지킴이 마애불[大見寺 磨崖佛]이 굴의 남쪽입구 우측바위 위에 음각되어 있다.

친환경 전기 셔틀버스가 운행되어 노약자가 비슬산을 구경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국 최초로 해발 1,001m 고지까지 운행되는 전기차는 기존 스타렉스 차체에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장착된 산악형 하이브리드 특수차량이다.  운전자를 포함해 23명이 탈 수 있다. 최대 등판 각도는 16도, 최대 속도는 시속 25㎞다. 운행 노선은 비슬산 자연휴양림 공용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해 소재사~휴양림 주차장~비슬산 등산로 삼거리~임도~대견사 입구까지 왕복 11.6㎞ 구간이다. 편도 5,000원 경로할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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