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검단산,두이봉 용마산

자어즐 2016. 2. 3. 11:44

 

집사람하고 두리서 검단산과 용마산을 사부작사부작 걸었던 것이 2년은 지난 듯하다. 그 때 남한산까지 사정상 못가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오늘 남한산성 서문으로 해서 마천동으로 하산 계획을 잡는다. 08:30분에 올림픽공원역 1번출구에서 친구들과 상봉하여 30-5번 버스로 갈아탄다.종점(버스환승공영차고지)에서 내려 산쪽으로 오면 삼거리의 좌측은 안창모루 기점이고 우측은 유길준묘길의 들머리여서 우측으로 틀었다. 내일 아침가리 얼음 트레킹이 계획되어 있는지라 끝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 될런지...

 

1. 누구가 : 석준,성순,정식친구랑 넷이서

2. 언   제 : 2016년 01월 30일(토) 엷은 구름.

3. 어디로 : 검단산-두리봉-용마산-엄미1리버스정류장-(벌봉-남한산성서문-마천)

4. 얼마나 : 5시간 10분 (휴식,식사시간 포함)+3시간(마천까지)

 

▼이동경로: 월남전참전기념탑들머리-유길준묘-전망바위-검단산-두리봉(고추봉)-용마산-엄미1리 버스정류장-(벌봉-봉암성-북문

                 -서문-마천) 

 

09:22 들머리 입구의 월남전  참전 기념탑.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 검단쉼터의 어묵이 불러서 따뜻한 국물과 인당 2개씩 食하다.


▼ 유길준묘등산로로 건단산까지 3.5km 소요시간 1시간 50분.



09:43 산행준비. 출발

 

▼ 낙엽송 숲


10:02 유길준 묘.

구한말의 정치가·개화운동가. 개항기 최초의 유학생. 자는 성무(), 호는 구당(), 본관은 기계(). 서울 출신.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 의숙()에 입학했다가 83년 미국 보스턴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둘러본 후 귀국했다. 때마침 갑신정변으로 친일혐의자들이 소탕되는 가운데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이 구금기간에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인 <서유견문(西)>을 집필하여 95년에 탈고했다. 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 등을 지내고, 96년 내무대신에 올랐으나, 이른바아관파천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7년(융희 1) 귀국하여 흥사단()·한성부민회() 등을 통해 국민계봉운동에 힘썼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남작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1909년(융희 3) 국어학사장 최초의 문법서인 <대한문전()>을 간행했다. -한국근현대사 사전-


10:10 안창모루에서 오르는 등로와 합류 쉼터.

 

▼해발285m. 표지목 두개의 거리 차이가 오차 범위를 넘어도 한참 넘는다.

 

▼ 강 건너 나라히 가는 예봉산.



▼ 팔당대교. 여기가 전망바위일 성 싶다.



10:56 조망데크

 

▼ 장갑 낀 손에 먹이를 놓고  있으면 딱새가 찿아들기도 한다. 주위에 조그마한 새끼도 보인다.


▼ 검단산









새들 노는 모습 보며 10여분 쉬다 내려 서는 길에 이동매점 영업중.

 

▼ 하남시. 북한산이 어렴풋하다.




11:29 헬기장, 코앞이 검단산 정상


1130 그때나 지금이나 정상의 모습은 그대로 이고 오고가는 산객들만 다를 뿐이고...

 

▼ 예봉산.


▼ 두물머리 너머 뒷쪽에 중미산,유명산,용문산,백운봉...


 

검단산의 유래에 대해서 대략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백제시대 검단선사(黔丹禪師)가 그 산에 은거하였어서 선사의 이름을 따서 검단산(黔丹山)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중에 하나이다.

또 하나는 '검(黔)'은 한자 뜻이 '검다'인데  고조선 때 단군왕검같이 제사와 정치의 기능을 겸한 제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를 '왕검(王儉)' → '임검(壬儉)' → '임금'이라 불렀듯이 '검(黔)'은 '금'이 되어 즉, '크다, 신성하다'는 뜻이라 해석하고 단(丹)'은 현재의 한자 뜻인 '붉다'와는 다른 '제단'이란 뜻으로 '검단산'은 '신성한 제단이 있는 산'이란 뜻으로 해석했다. 한때는 검단산의 검(黔)을 '금'으로 읽어 '금단산'으로 부르기도 했고 실제로 한성백제(漢城百濟) 시절에 왕이 검단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검단선사는 고개 마루 길가의 편편한 바위에 앉아 자기가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놈이 오늘은 왜 이리 늦노."
한참인가 기다리며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하고 있을 때 풀을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고개를 올라오는 소년이 보였다. 검단선사는 얼굴에 기쁨과 안도감이 일며 마치 옛 동무라도 만난 듯 소리쳤다.
"빨리 좀 오너라, 목 빠지겠다"
"오래 기다리셨군요.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벌써 올 것인데 어머니께서 오늘은 더 아프세요. 미음도 안 잡숫고 눈을 감고 계시잖아요. 돌아가시는 줄 알고 혼이 났는데요."
십여 세 되어 보이는 소년의 얼굴엔 근심이 잠겨 있었다.
"할아버지 오늘은 시간도 늦었는데 바둑은 그만 둘까요?"
"네가 싫으면 할 수 없지 뭐냐."
"아니에요 할아버지,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래요."
"그럼 너의 어머니 병환만 나으시면 나하고 매일 바둑을 둘 수 있겠니?"
"그럼요. 하루 종일 아니 밤을 새워서도 둘 수 있지요."
매일 해가 중천에 뜨는 이맘 때면 이 소년과 만나서 바둑 두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있던 검단선사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잠시 후 무슨 말을 할 듯 하다가 심각한 눈초리로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네의원 말씀이 어머니의 병은 대추하고 곶감이 약이래요.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넣고달여 먹으면 병이 낫는데요. 그래서 그것을 구하러 내일 길을 떠나려고 해요."
"길을 떠난다고? 이 여름철에 그것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북쪽으로 멀리가면 그곳은 가을일 테니까 있겠지요. 빨리 약을 구해 와야 되니까요. 오늘 당장 떠나 밤을 새워서라도 부지런히 가서 구해 와야지요."
노인과 소년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검단선사는 도인이다. 속세를 떠나 살고 있으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이 소년과는 혈육이상으로 정이 들어왔다. 자기가 도인인줄 모르는 이 소년의 고난을 바라볼 때 검단선사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 소년의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정체를 계속 숨기고 싶은 검단선사는 번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소년이 자기의 정체를 알게 되면, 이제까지 갖고 있던 순진한 심성을 잃고본능에 가까운 인간 속성으로 자기를 대하게 될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되면 속세와 인연을 끊은 자기로서는 이 소년과도 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검단선사는 한동안 깊은 시름에 빠졌다.
"얘야, 네가 길을 떠나 약을 구하자면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내가 갔다오마."
"네! 할아버지 가요? 몸도 약하실텐데, 어떻게 먼 길을 가신단 말이에요. 그러지 마시고, 제가 다녀올 동안 우리 집에 와 계시면 좋겠어요."
"아니다, 얘야. 네가 없는 동안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어떡하겠니…. 그리고 내가 갔다 오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할아버지 정말이세요? 정말 다녀오실 수 있으세요?"
"암 다녀올 수 있지! 오늘부터 칠 일 후에 해가 네 머리 꼭대기에 오거든 이곳에 와서 날 기다리려무나."
"그렇게 빨리 다녀오실 수 있어요?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매일 이곳에 올라와 보겠어요."
"아니다, 틀림없이 그날 올 터이니 잊지 말고 오려무나. 자 그럼 난 가봐야겠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어요."
"자 그럼 난 이쪽으로 내려 갈 테니 너도 가보아라."
"할아버지 몸조심하세요, 흐흐흑"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 소년을 뒤로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검단선사! 그러나 소년의 어머니 병은 날로 더해만 갔다. 홀어머니를 단신으로 봉양해 가는 소년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노인과의 약속 날짜를 기다렸다. 그러나 검단선사가 떠나간 지 닷새째 되던 날 갑자기 악화된 소년의 어머니는 운명을 하고 말았다.
한편 검단선사는 축지법을 써서 묘향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대추와 곶감을 구해가지고 약속된 날짜에 돌아왔으나 소년이 보이지 않았다. 온 종일 기다려도 소년은 끝내 소식이 없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소년은 오지 않았다. 마을에 내려가 수소문을 하니 어머니를 장사지낸 소년은 울면서 어디론가 떠났다는 얘기였다. 검단선사는 약 자루를 힘없이 땅에 떨어뜨리고, 넋을 잃은 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상한 생각에 잠긴 채 힘없이 산으로 돌아와 그곳에 절을 짓고 절 뒷산에 올라 멀리 가물대는 산천을 바라보며 불쌍한 소년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아직도 깨우침이 미치지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능선을 따라 하염없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다 해질녘에 닿은 곳이 지금의 검단산이고 이곳에서 검단선사는 작은 암자를 짓고 도를 닦다 타계하니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 산의 이름을 검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11:51 곱돌약수터 갈래길을 지나 산곡초교 갈림길의 안부.


▼ 묘한 포즈의 나무.



12:17 저심준비. 2시간 30여분 경과다. 40분 앉은 시간에 땀이 식어 한기를 느낀다.


검단산에서 용마산으로는 한적하다. 낙옆이 상당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어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푹신하다.


13:04 두리봉(고추봉)으로 이정목에 표시되어 있다.




13:46 용마산.하남시와 광주시 남종면에 걸쳐 있는 높이 595.7m의 산이다.



▼ 발 아래 팔당호수 표면이  파장을 만든 형태 그대로 정지된 얼음이라 묘하다.




 

▼ 각화사 갈림길.


 

▼ 직진하면 희망봉 중부농협으로 가고 우리는 엄미1리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우틀.

 



14:36 버스정류장까지 20분 걸리니 미리주문하시란다.


▼ 임도를 만나 산길은 끝.




▼ 꽁꽁 언 낙시터라 사람이 있을 덕이 없다.



▼ 중부고속도로와 제2 중부고속도로를 굴다리로 연이은 통과.


14:53 '친구야 벌봉 가는 길은 그쪽이 아니니 돌아 와.' 선험자의 자료를 보니 그리로 가면 한참을 재미없는 포장도로로 가서 의안

    대군묘로 가는 등로가 신통치 않으니 그 쪽으로 가지 않기를 권한다. 그래서 일단은 엄미1리 버스정류장으로 올라간다.

 

▼ 버스 정류소 옆에 있는 용마산 안내도. 여기서 은고개삼거리로 가서 건너편 교차로 신문사쪽으로  길을 건넌다. 그 옆에 이정표가

    있어 벌봉 들머리로 하면 된다고 일러주는데...


▼ 정식 친구랑은 내일 아침가리 얼음 트레킹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다. 지금시간 오후 3시인데 마천까지 빨라야 3시간 혹은 3시간 반은

   걸릴테고 그기다 대방어회에 주가 한잔 첨가되면 8시가 넘어서야 겨우 귀가에 오를 성 싶다. 집에가면 거의 열한시라...

   그래서 둘은 여기까지만하고 두친구는 마천행한다. 


거의 6시가 다되어서야 집에 도착하자 금방 두친구가 벌봉,서문으로해서 마천의 식당에 들어섰다고 통지가 온다. 우리랑 있었으면 대방어 먹는데ㅎ 한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구 다음에 한번 더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