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년 부터 따라 붙은 감기에 신년 연휴는 집에서 푹 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일을 책 한권 집어들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니 몸은 아우성한다.
전날도 고교 청운산우회의 근교산행(사폐산)에 석연찮게 포기하니 허전하기도 하다.
오늘도 김여사 오전에 성당간 사이는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과 시름하다가 얼마전에 정상 개방한 문학산으로 산책나간다.
이태에 걸친 김기가 누그러지니 올 한해 액땜한 셈이라 감기 걱정 없을 게고 올 한해도 하고픈 것은 많지만,
아마도 욕심 뿐인 희망사항이다.
이를테면 책 한권에 산 한번 오르는 것 一讀一登이라고 할까.
헬스장에 출근도장 열심히 찍어서 예전의 몸으로 만들어 보는 것
또 누구마냥 가끔 결혼을 후회하는 남편과 가끔 결혼을 만족하는 아내가 안되도록...
1. 누구가 : 김여사(집사람)랑 두리서
2. 언 제 : 2016년 01월 03일(일요일). 흐림.
3. 어디로 : 인천 문학산
4. 얼마나 :
▼ 이동경로 : 선학역3번출구-문학산법주사-갈마산-문학산성-돌먹는 나무-정상-선학역
▼ 옆에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제할일만 하는 것을 보니 산비둘기인가 보다.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가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내가 이 시점에 이 시를 옮긴 것은 김여사가 알고 내가 안다.
▼ 갈마산 전망대
▼ 문학 월드컵경기장과 야구장이 안개바다에 둘러 쌓여 섬되다.
▼ 문학산성. 저 돌은 얼마나 지나야 연륜이 묻어날꼬...
▼ 돌 먹는나무.
▼ 문학산 정상 개방시간은 동절기에 09:00~17:00로 나머지 시간은 군사보호시설이라서 출입통제다. 둘레길에서 정상 통하는 문
▼ 문학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인천 남구 학익동 쪽에서 이번에 개방한 군부대 작전도로를 통해 올라가는 길과 둘레
길을 따라 오다가 정상 쪽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 개방행사를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봉수대 모형.
▼ 문학IC. 송도방향이 영~~
▼ 처음 올라온 문학산 정상은 철조망부터 초소같은 시설물...언제 부대 냄새가 없어질련지? 전봇대도 여기서는 흉물이 아닌가.
▼ 지난 10월 15일 인천 시민의 날을 맞아 50여년 만에 개방된 「문학산(성) 정상부」를 많은 분들이 가보셔서 아시겠지만, 문학산
정상부는 지역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갖추었으며, 해발217m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인천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둥지이다. 또한 비류백제,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로 유서 깊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 문학산 이름의 유래.
예부터 ‘문학산’은 고을 관아 남쪽의 안산(案山)으로 여겨져 ‘남산(南山)’,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 하여 ‘학산(鶴山)’, 산성이 있어서 ‘성산(城山)’이라 불렸다. 문학산이라는 명칭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인천 부사로 재임 중 학문과 교화에 힘썼던 이단상(李端相)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학산에 만들어진 ‘인천서원’이 1708년(숙종 34) ‘학산서원’이라 사액(賜額)을 받게 되는데 이때 ‘문묘(文廟)’와 ‘학산(鶴山)’의 음을 따서 ‘문학’이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지도서』와 『해동지도』 등 18세기 중엽 이후의 지지(地誌)와 고지도에 ‘문학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문학산성은 인천의 대표적인 관방 시설이다. 테를 두른듯한 모양의 테뫼식 산성으로 정상 부분에 석성으로 축조됐으며 미추홀 고성,
남산성 등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토성이었던 것이 삼국 말 또는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석성으로 개축되었고 이것이 고려와 조선시대
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성 전체 구간을 일정한 크기로 자른 돌을 다듬지 않은 상태로 자연 지형을 최대한 잘 이용해 가며
쌓았다. 아래는 무겁고 긴 돌을, 위로 올라갈수록 작고 가벼운 돌을 뒤로 물려가며 쌓는 전통 방식을 사용하였다. 1997년 실측조사
에 따르면 성곽의 길이는 577m였으나, 339m 정도만 남아 있다. 면적은 20,790㎡이다. 1986년 인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 선학역에서 올라온 능선.
▼ 떨어질라. 돌아가니 주인은 강아지를 모델로 사진 찍기한다.
▼ 문학산법주사라 적힌 절간의 담벼락에 붙은 인천둘레길 표지판. 문학산 들머리이자 날머리의 하나다. 두시간 반 쉬며 걸으며 첫
일요일 가벼운 산책 마치다. 걸으며 내내 올해는 움직일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사진만 보고 연고 하나 처방해 준 배려가 고발 당해
의료법 위반으로 얼마의 손실을 감수해야 될지 모를 마음씨 좋은 의사 마냥 재발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머리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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