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

도영산 화양구곡 가을 나들이

자어즐 2015. 11. 2. 22:12

 

10월의 마지막 밤이 있는 오늘 재경 고교 동기들 가을 나들이 간다. 회장의 배려로 버스가 인천에서 출발해서 서울 몇 곳을 경유하고는 충청북도 자연학습원을 향한다. 화양계곡의 가을길 걷다가 도명산을 오를 계획인데 여러가지 사연으로 못 나온 친구들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산행친구들 외에 모처럼 만나는 친구들과의 반가운 해후가 예전에 소풍가던 그런 기분이어서 분위기 아주 괜찮다. 작년 여름에 산행 후에 흘린 땀을 계곡물에 옷 입은 채 그대로 풍덩하여 시원하게 날려버린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데 화양구곡의 가을은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련지 기대해 보자. 

 

1. 누구가 : 재경 대건26 친구들 20명

2. 언   제 : 2015년 10월 31일(토) 예년보다 낮은 날씨에 하늘은 맑고 쾌청.

3. 어디로 : 도명산,화양계곡.

4. 얼마나 : 암서재 앞 식당까지 약5시간 (휴식.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자연학습원-파천-학소대-철다리-마애불상군-도명산 정상-첨성대-화양3교-암서제-(식당)-읍궁암-운영담-화양2교-화양동탐방

                지원센터-주차장 

 

 10:51 자연학습원 입구. 사당과 양재 쪽에 관광버스들의 행렬이 상당해서 약간의 지체는 감수해야 한다.

 

 

 출발 전 화이팅.

 

 

 

▼ 10:58 학습원 지킴터.

 

 

 

 

 

▼ 오가는 이가 많지 않는 화양계곡 고저녁한 길에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추색 정취 더한다.

 

▼ 11:15 화양구곡 중에 제 구곡 파천(파곶)[巴串]

 

▼ 파천의 전설을 찿아서 계곡 아래로 내려 선다.

 

조선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이 병자호란 이후 이곳에 은거하면서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떠 아홉 곳의 절경(경천벽·운영

   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하는 화양구곡이다.

 

▼ 흰바위가 더 없이 넓게 펼쳐저 있고 그위에 흐르는 물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듯 보여 파천이라 불리고 신선들이 술잔 나누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용의 비늘은 이렇게 무질서 하지는 않을 테고 아래 잔잔한 물결이 그것일 게다. 

 

▼ 파천의 글자가 새겨진 바위. 이것은 그래도 괞찮다쳐도 주위의 돌들에 흔적을 남긴 옛날 높으신 양반들의 이름이 곱게 비치지는 않는다.

   아주 높은 분들은 책에 새겨지지 이런 바위에는 이름 없으리라.

 

 

▼ 물흐르는 옆으로 길의 흔적따라 가기 잠시에 그 흔적 없어서 없는 길 만들어 길 찿아 간다.

 

▼ 11:44 제8곡 학소대. 화양1곡에서 9곡까지는 4km의 거리여서 걸으면 1시간 거리지만 눈에 담고 그림으로 남기다 보면 2시간도 모자란단다.

 

▼ 학소대옆 도명산 등산로 철다리.

 

 

▼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학소대가 되었단다.

 

▼ 鶴巢臺의 글자도 음각되어 있다.

 

 

▼ 파천에서 신선이 못된 우리 친구들 학소대 바로 앞에서 곡차 잔 기울이다.

 

▼ 웃는 얼굴에 여유와 관록이 묻어나고...

 

 

 

 

 

 

   

 

   

 

▼ 12:14 30분을 즐기다가 산행을 위해 전부가 철다리를 건넌다.

       태고의 신비를 안고              계절따라 몸단장하며
       님 기다리는 도명산            
 나는 그녀가 뿜어주는          

       산향기 개울바람 마시며        수정알 같은 냇물에 발 담고 서서
       그의 님 기다린다.                아 그러나 내마음 두렵구나
       누가 이 길을 걸어갈까          저 청순한 여인의 품같은 계곡속으로
       행인아 고이 다녀 오소서       흰구름 산허리 스쳐가듯
       봄향기 여인의 옷자락 스쳐 가듯

 

▼ 철다리를 건너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와룡암일 듯하다.

 

 

 

▼ 12:38 도명산 1.7km 표지목.

 

▼ 표지목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나타나는 커다란 바위덩어리. 장군바위라고 칭한 기억이 있다. 여기의 샘물은 마르지 않는다 했는데...

 

▼ 좀은 급한 경사길이 이어지고...

 

▼ 12:57 큰 숨 한번 쉬고 싶을 때 왼쪽에 시원스럽게 터진 철다리가 나온다. 

 

▼ 코끼리바위와 그 능선에 시선이 잠시 쉬어 가고

 

 

▼ 13:10 수직 암벽에 선각되어 있는 삼체불과 조우하다.

 

▼ 고려시대 유행하던 선각마애불상과 같은 경향을 보이므로 그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 공림사 갈림길.

 

 

▼ 13:34 철다리에서 1시간 20분 걸려 도명산 정상석에 서다.

 

 

▼ 크고 작은 바위 다섯이 모여서 정상을 이룬다.

 

▼ 화양계곡의 주차장도 보이고 주변 풍광 돌아보다.

 

▼ 속리산 방향

 

 

 

 

 

▼ 정상석 바로 아래 철봉가이드를 넘어에 자리잡고 정상주 한순배. 베낭에 들었는 것 다 꺼내기.

 

▼ 정상석 옆에 있는 물건인데 교체하려고 공수해 온 모양이다.

 

▼ 14:31 한 시간여 시간이 후딱이고 소나무들 사이로 하산길에 보니 행여 우리가 법에 저촉되는 일 할까봐 산을 관리하는 직원 둘이가 예의

   주시하고 있더라.

 

▼ 좁은 철계단을 내려와서 바위문도 통과하고...

 

 

▼ 아랫도리를 벌거벗은채 내놓고 생이 그리도 힘들어서 어찌할꼬. 불쌍하고 애처러워라...포기하지 않는 끈기에 박수라도 쳐 주랴.

 

▼ 육산인데 정상부분만 바위로 되어 있는 도명산의 꼭데기.

 

▼ 14:47 도명산 1km 표지목 15,6분 소요.

 

▼ 무릎이 편치 않아서 안 올라 올려다가 중간에 지름길로 빠질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에 속아서 어거지로 여기까지 왔노라는 친구.

 

 

 

▼ 암서재가 멀지 않으니 화양3교가 지척이다.

                                   

                                   ▼ 첨성대 옆구리를 통과.                                

 

 

▼ 15:48 화양3교로 하산 완료. 대략 3시간 반을 오르고 쉬고 먹고 놀고 내리고...

 

▼ 제 5곡 첨성대 공기돌을 쓰러지지 않게 올려 놓은 모양새다.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어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수 있다하여 첨성

   대라 부른단다

 

 

▼ 오늘 걸은 길 선으로 이어보니 길이가 길지 않다.

 

▼ 등산로와 화양3교.

 

▼ 15:56 암서재를 배경해서...

 

 

 

 

▼  구곡의 중심이된다는 제4곡 금사담(金砂潭)과 암서재(岩棲齋).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이라는 의미로 금사담

   (金砂潭)이라 불리우며, 조선 숙종(肅宗, 1661~1720) 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정계를 은퇴한 후 이곳 바위들이 호위

   하는 반석위에 집을 지어 이름을 암서재(岩棲齋)라 하고 이곳에서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였다. 이 서재도 우이산에 있던 주자의

   운곡정사를 따라 한 것이다. 우암 선생께서 따라하지 말고 독자적인 것이 되었으면 어떠했을까...북벌정책을 추진하던 양반인데.

 

 

금사담 앞의 예약 식당에 도착하니 염소 한마리가 잘못되어 둔갑한 닭과 오리들이 발가 벗고는 탕속에 다소곳이 들어 앉아 기다리고 있더

   라. 일반 산악회에선 먹기 바쁘게 쫓기 듯 일어서야 하지만 우리 친구들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우의 다지니 두시간 가지고도 모자란다.

 

건배사에 큰大 세울建 하면 다같이 빳빳이 한다. 나이를 먹어도 우리끼리는 여전하다. 두시간을 채우고 자리를 일어선다. 몇 발자욱에 괴산

   화양서원 묘저비가있고 그 옆으로 읍궁암이고 자리하고 있다.

 

우암 송시열의 유적 앞에 있는 제3 읍궁암(泣弓岩).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읍궁암에서 매일 새벽과 효종 (孝宗,

  1619~1669)의 기일에 한양을 향하여 활처럼 엎드려 통곡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암은 효종과 함께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

  (청나라를 정복론)을 도모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효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그의 대업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한이 바위에 서린

   것일까? 읍궁암 곳곳에 사람이 앉은 자리 크기의 움푹 팬 데가 여러 곳이다.

 

▼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

  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

  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모여서 소를 이루고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이름 지워 진 제2곡 운영담[雲影潭]. 구름 그림자보다 땅그림자가

   운영단을 채우기 시작했다.

 

▼ 화양 제2교를 지나서 주차장 가는 길에 자동차 불빛에 묘하게 단풍터널을 만든다.

 

▼ 팔각정 휴게소가 있는 넓은 주차장에 우리를 태워줄 버스와 소형 버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