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가기

시흥 관곡지 연꽃구경

자어즐 2014. 7. 29. 23:30

 

이른아침에 두리서 차를 가지고 감악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미적거리다가 늦어지는 바람에 동네산이나 가든지 아니면 듣기만하고 가보지 못했던 관곡지를 들러보든지의 선택에서 연꽃구경이 당첨되었다. 생각밖에 가까운 거리여서 의외이고, 연의 재배 면적이 재법 넓은데 놀랍워서, 이제서야 찿아 보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가지게 만든다. 7.26~27일 양일간 연성문화제(23회) 행사가 있어서 인지 길가에 주차된 차량행열이 상당하다. 산에 가려고 준비한 베낭을 메고 갔더니만 우리 같은 사람 눈 딱고 찿아봐도 안 보인다.

 

1. 누구가 : 집사람(김여사)이랑 두리서

2. 언   제 : 2014년 07월 27일(일요일) 흐림.

3. 어디로 : 시흥 관곡지,연꽃테마파크

4. 얼마나 :

 

관곡지(官谷池 시흥시 하중동,향토유적 제8호)

관곡지는 조선 전기의 관료이자 학자인 강희맹 선생이 세조9년(1463년)  명나라 사신(중추원 부사)으로 중국 남경을 다녀오면서 그 곳의 전당지에서 당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았던 전당연의 씨앗을 갖고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로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점차 퍼지게 되었다. 이는 당시 안산군(경기도 시흥시 수암동, 군자동 및 안산시 반월동 지역을 관장한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의 별칭을 세조 12년(1466)부터 ‘연성(蓮城)’으로 부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흥시에서는 관곡지가 갖는 상징성과 역사성을 기리기 위하여 시흥시 관내 논에 3만평의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하여 다양한 연과 수생 식물을 볼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재배단지 주위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조성하여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하였다. 6월 하순 피기 시작하여 7월 중순부터 8월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며, 10월 초순까지 감상이 가능하다.

 

 

 ▼ 서울외곽순환도로에서 제3경인고속화도로를 잠시 갈아타니 관곡지다.

 

▼ 도로 양가에 길게 주차된 차들을 사열하듯 한참을 지나서 주차하고 연밭으로 내려 오며 짧은 감탄사 나온다.

 

▼ 관곡 연꽃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연근 농장에 먼저 들리게 되어 백연잎차 하나 구입하여 챙긴다. 여자에게 특히 좋다나....

 

 

 

▼ 진흙탕의 좋지 않는 물에서도 깨끗하게 정화시켜 아름다운 꽃 피우는 연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느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커다란 연잎 사이로 새악시 마냥 수줍게 피어 있는 분홍색꽃, 부끄러워 닫고 있어도 참 이쁜 모양이다.  

 

 

▼ 연은 열매거 많아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고,

 

▼ 뿌리의 마다마디 잎과 꽃이 자라 화합과 화목의 꽃,

 

▼ 맑고 은은한 향기가 멀리 퍼지는 군자의 꽃이란 의미도 가진단다.

 

▼ 연의 특징 중에 하나가 해가 뜨는 아침에 맞추어 꽃이 활짝 열렸다가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닫아 봉우리가 되는 것이라니, 이런 줄 알았으면

   좀더 일찍 올 걸... 

 

▼ 우산대용해도 될 성 싶은 연잎 하나로 포즈 취한다.

 

 

 

 

 

 

 

 

 

 

 

 

 

 

 

 

 

 

 

 

 

 

 

 

 

 

 

 

 

 

 

 

 

 

 

 

 

 

▼ 관곡지가 어찌 생겼는지 보러 들어간다.

 

▼ 연성문화제 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어있고 리허설이 한창 진행중이다.

 

▼ ...못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이다.... 관곡지 설명간판이 세워져 있는 뒤는...

 

▼ 중앙에 소나무 몇그루가 있고 둘레에 연이 있는 연못이 있는데 이곳이 진짜 관곡지 인건지 아님 위쪽에 또 다른 것이 있는지 아리송이다

 

▼ 관곡지를 나와 길 건너에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어 무작정 그길로 오르니 벤치가 있고 관곡지 일대가 눈에 다 들어오는 명당자리가 있다.

   동네 주민 네사람이 먼저 선점하여 살아가는 이야기에 끝이 없다.   

 

 

▼ 조망처에서 바라 본 관곡지와 연꽃테마파크의 모습.

 

 

 

 

 자리깔고 식당을 만드니 양호하다.오능 메뉴는 비빕밥 되겠다.

 

 

▼ 산길로 계속 가보니 이정목에 매봉160m여서 그기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 정자하나 철탑이 덩그란 여기가 매봉인가 보다.

 

▼ 정자 옆에 핀 무궁화를 뒤로하고 주차된 차 찿으러 이정목으로 내려와 약수터 방향으로 향하니....

 

▼ 시흥 생명기술

 

 

 

▼ 연의 종류 

 

 

 

관곡지는 하중동 208번지에 위치한 작은 연못으로서 조선 전기의 유명한 관료인 강희맹 선생 이 명나라 남경(南京)에서 꽃은 흰데 끝부분만 옅은 붉은 빛을 띠는 전당강(錢塘江)의 연꽃씨를 가져다 심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로 말미 암아 지역의 이름을 ‘연꽃고을(蓮城)’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시흥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더구나 2004년에 관곡지 주변 논에 연꽃을 많이 심어 수도권의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니, 역사적 유래와 함께 시흥을 홍보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46년에 관곡지를 수리하고 쓴 책이 남아 있어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그 책이 바로『연지사적(蓮池事蹟)』이다. 『연지사적』의 저자는 당시 안산군수였던 권용정(權用正, 1844년 11월 6일~1848년 6월 25일 재임)이란 분인데, 이 분은 강희맹의 사위로서 관곡지를 소유하게 된 권만형(權曼衡)의 직계 후손이다. 연성정수장을 지나 물왕저수지 쪽으로 가다보면, 비석 세개가 길가에서 있는데, 그중 1848년에 세워진 비석에 “군수권후용정영세불망비(郡守權侯用正永世不忘碑)”라 쓰여져 있다. 여기에 기록된 권용정이 바로 『연지사적』을 쓴 그 분이다. 권용정은 안산군수로 부임한 뒤, 조상의 사적이 깃든 연못(즉, 관곡지)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잡풀이 무성하여 연꽃을 못 살게 하는 것을 보고 1845년 봄에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을 시켜 연못을 수리하게 하였다. 수리하고 나니 그 해 여름에 다행히 강희맹 선생이 심은 것과 같은 전당홍(錢塘紅) 두 줄기가 자라났다 한다. 권용정은 관곡지를 잘 관리하기 위해 다른 일체의 부역(賦役)없이 오직 관곡지만 관리하는 연지기 6명을 두도록 하고 이 사실을 경기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허락을 받아냈다.『연지사적』에는 그 여섯 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도문(李道文), 황차돌(黃次乭), 김춘복(金春福)?황해금(黃海金)?김만돌(金萬乭)?김삼손(金三孫)이 그들이다. 이 여섯 명은 앞에서 말했듯이 일체의 부역은 물론 군역(軍役)과 환곡(還穀)도 면제받는 특혜를 받았고, 그것이 영구히 계속된다는 증명을 경기도 관찰사로부터 받을 정도로 관곡지 관리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만약 연지기에 결원이 생기면 해당 마을인 하중리의 백성중에서 충원토록 하였는데, 이들에게도 역시 같은 혜택을 주었다. 또 연지기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매를 쳤고(笞刑), 큰 죄를 지으면 쫓아내어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도록 한 조항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처럼 특정한 곳을 관리하기 위해 지키는 사람을 두고, 혜택을 준예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에 『연지사적』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은 비단 시흥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쓰는 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관곡지란 명칭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 및 관곡지의 현 소유주인 안동권씨 화천군파의 족보에는 모두 이 지역을 직곶(職串)으로 기록하고 있고, 실제 주민들도 ‘베실구지’, 또는 ‘벼슬고지’로 부르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벼슬(베실)’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를 ‘직(職)’에서 ‘관(官)’으로, ‘구지(고지)’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는 ‘곶(串)’에서 ‘곡(谷)’으로 바꾸어 표기함에 따라 ‘관곡지(官谷池)’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관곡지를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 못지않게, 원래의 이름을 찾아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