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에 대한 것은 여러번 들은 적 있고 근처를 지나치기도 했었는데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어서 기왕 덕숭산 나들이 길에 구경해 보기로 마음 먹는다. 저녁 7시가 가까워 지지만 잠시 읍성을 눈요기하고 해미IC로 올리면 약간 돌지는 몰라도 많이 남는 장사일 성 싶어 마음 이는데로 간다. 김여사 귀가시간이 너무 늦다며 빈말 던져도 한마디 뿐이고 잠자코 잘 따라 온다. 내일시간 많은데...
두세시간 여유를 가지고 구석구석 구경면서 주막 쉼터의 곡차 한잔 맛도 시원할 것인데 늦은 시간이 아쉽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8,348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 해미읍성은 이순신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천주교 박해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史蹟 제116호 라고 한다.
▼ 진남문[鎭南門]. 해미읍성의 남문이자 정문인 이 문은 예전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진 것이나 동문과 서문은 복원하였다고 한다.
진남문을 들어오면 뒷면 아치형돌 위에 皇明 弘治 4年 辛亥 造 라고 건축 년도를 알리는 붉은 글씨가 쓰여 있다. 명나라 제9대황제 효종의
연호로 홍치4년이면 서기 1491년 신해년이다. 18년간 홍치를 사용하였고 당시 중국 명의 연호를 사용한 사대주의적 시대상의 한 단면에
입맛 씁쓸하게 한다.
▼ 조선시대의 무기들.
▼원래 명칭은 회화나무인데 이곳의 발음으로 호야나무로 불려지는 300년 이상이 된 이 나무가 카톨릭박해의 목격목이다. 이 나무의 가지에
신자들이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었고,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있다. 천주교순교기념비가 옆에서 동무한다.
▼ 여기 옥사는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1790년부터 100 여년 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법
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하였다고 안내판에 적혀 잇다. 문이 닫혀있어 내부 보지 못했다.
▼ 동헌으로 들어가는 문의 누각엔 호서좌영 간판이 걸려 있다. 충청도에 있던 5개의 병영 중의 하나인 호서좌영의 누각 배경으로 포토죤이라
표시된 곳에 서서.
▼ 병마절도사 또는 현감의 집무실인 해미읍성의 동헌. 이곳에서 관할지역의 행정과 사법업무가 이루어 졌단다.
▼ 소원돌탑뒤에는 동문.
▼ 동헌 옆 계단을 올라서니 정자하나 눈에 들고 좌에 장성군과 우측 멀리에 가야산 자락이 펼쳐진다.
▼ 해미읍성 장승동상이 집단으로 서서 이곳 방문객을 맞이한다. 안내판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해미읍성은 1417년부터 1421년까지 축성된 성곽으로 충청도의 군사권을 관할했던 충청병마절도사 영이 설치된 곳이며. 그 당시 쌓았던 성벽은
지금도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에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렁100~200년 이상 소나무가 피해를
입었으며,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해미읍성과 역사를 함께 한 소나무를 의미 있게 활용하고자 장승 동산을 계획하게 되었다.제작된 대한민국
대통령 장승들은 대통령의 근엄한 이미지를 탈피하여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만들었고, 그 당시 국정지표를 장승에 새겨 역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외에 토속.해악적인 장승들을 만들어 그 의미를 더했다.위의 설명대로 근엄한 표정보다는 캐릭터 있는 장승 모습이
더욱 젬있고 해악적이더라고!
▼ 청허정(淸虛亭).청허라는 뜻은 "잡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이다. 청허 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에 올라서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과거 시회를 하거나 문인들이 시를 읊었던 곳이다.해미읍성 시설 중 하나인 청허정은 그 역사
가 오래되었는데.성현노백당 성현(盧白堂成俔 1439~1504)이 지은 청허 정기에 그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청허정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
한 조숙기(曺淑기)가 성종 22년(1491)에 세운 정자다. 현재의 정자는 과거 관련 기록을 근거로 2011년도 개축.
▼ 성곽 뒤로 가야산자락.
▼ 해미읍성 북쪽에 자리한 소나무숲길.
▼ 동헌 앞의 나무와 장독대
▼ 재현해 놓은 조선시대 민가의 모습들.
▼ 전통주막과 해미국수,전통찻집이 있는 먹거리 공간.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를 즐길 수 있다는데 시간이 늦은듯.
▼ 소원나무. 소원을 적어 자기 띠에 해당되는 가지에 열매(1,000원/개)를 걸면 이루어지나니.
▼ 애당초 늦은 시간이라 수박 겉 햝기식으로 한바퀴 돌아 본 해미읍성.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두루두루 구경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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