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가기

선무도의 본산 골굴사와 전촌항

자어즐 2018. 1. 23. 21:16

달반전에 모일 날짜를 잡으니 번개모임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경주로 번개를 친다.

울 친구들 경주는 몇번 갔다왔는데 이번에 또 선택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남부팀을 위한 배려는 아닌 것 같고, 그냥이다. 북부팀도 KTX를 타면 차가 밀리는 어중간한 곳보다는  낫다. 그런데다 철홍이가 4인분 KTX 비용을 부담한다고 자청하니 좋긴한데 뭔 이윤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 있는가 본데...

 

오늘 만나는 친구들 만큼 정을 많이 나눈 친구는 아니지만 올 들어 둘이나 잃은 싱숭생숭한 기분을 풀기에는 적당한 시간의 만남이다.

체육과를 나온만큼 다부진 몸매에 의지가 강했던 한 동기는 췌장암과 사투를 벌이다 해가 바뀌자말자 떠나더니 전주말에는 산행도 같이한 전기상이가 여의도에서 새벽 1시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택시에 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을 거뒀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뉴스로 듣는다. 전기상이는 '파파''보디가드' 배용준의 데뷔작'사랑의 인사' 이민호,구혜선,이민정을 스타로 만든 '꽃보다 남자''마이걸''아름다운 그대에게'등을 연출한 꽤나 알려진 PD였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이틀이 지나서야 들어와서 늦게 차려진 빈소를 찾으니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느끼게한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있는데 본인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님을... 

친구들과 이별하는 그자리에는 모두가 눈에 선하고 귓가에 쟁쟁하다. 좋은 곳에서 평화를 누리라고 빌었다.

 

남산으로 산행 얘기도 있지만 수영이가 감포 쪽 횟집에 저녁예약을 해서 그쪽의 해파랑길을 걷는 방향이 좋겠다고 코스를 알아보라는 명령에 검색을 한다. 한국의 소림사라는 골굴사에 호기심이 생겨 절집을 돌아 보고 선무도 공연도 구경하고 그라고 주상절리를 가보자고 말을 맞춰두고는 광명역에서 KTX를 탄다. 천안에서 현기가 타니 동반석이 꽉찬다.

영화가 라오스에 봉사활동간 대학생들 격려하고 새벽에 귀국해서 저녁에 숙소로 오기로 하고, 대구서 달이와 재정이 차로 나눠타고 경주 맷돌 순두부에서 수영이와 만난다. 이번 모임에는 치과치료로 대우만 못 참석이다.

오늘 내일 여덟이서 진하게 회포나 풀어 볼 참이다.

 

1. 누구가 : 패로우즈 친구들과 함께

2. 언   제 : 2018년 01월 20일(토)

3. 어디로 : 경주 골굴사, 전촌항

4. 얼마나 :

 

1천 5백 년 전 인도에서 건너온 광유(光有)성인이 함월산(含月 山)지역에 정착해 창건했다는 골굴사. 함월산은 남쪽으로는 토함산, 북쪽으로는 운제산과 이어져 있다. 토함산이 불국사를, 운제산이 오어사를 품고 있듯 함월산은 골굴사와 기림사를 안고 있다.  

 

골굴사[骨窟寺]라는 흔치 않은 이름은 산 중턱의 거대한 바위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본당인 대적광전(大寂光展) 옆 가파른 계단을 올라 좌측으로 우뚝하니 서 있는 바위는 그냥 바위가 아니라 산이다. 그 산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인골(人骨)과도 같다. 그래서 골굴사다.

바위산 꼭대기에는 문무대왕릉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마애여래좌상[보물 581호]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비록 천년을 넘어 갖은 풍파에 바위 면이 일부분 닳기도 했지만 신라의 숨결이 깃든 온화함은 여전해 잃지 않고 있다.  

 

▼ 골굴사 전촌항의 위치

 

 


 ▼ 천년고도 경주의 보문단지를 통과해서 달을 품은사 含月山의 골굴사[骨窟寺]에 도착한다. 일주문앞 기운이 다른  절간들과는 다르다.

 

 ▼ 한국의 소림사라는 별명을 증명이나 하려는 듯 선무도의 자세를 푶현한 상들이 입구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범종각과 연화당이 있고 오른쪽 앞에는 템플스테이사무실과 숙소인 원융당이을 지난다.

 

▼ 이 절은 원효대사가 열반한 혈사[穴寺]로 추정되는 곳이란다.

 

 ▼ 길 지킴이 마냥 금강역사상이 길 양쪽에 서 있고 우측 건물은 공양간및 숙소로 사용되는 마하지관원.  

 

 ▼ 따라하기1. 금강역사 폼.

 

 ▼ 오늘 공연은 선무도 대학에서 한다했는데 대적광전 아래 극락보전에서 하는 바람에 나중에 두팀으로 나눠진다. 

 

 ▼ 오층석탑

 

 

 ▼ 따라하기2. 선무도 자세. 몸 따로 마음 따로여서 생각 같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연식때문인가...

 

 

 

 

 

 

 

  

 

 

 ▼ 조선 중기 화가인 겸재 정선은 이곳 석굴과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골굴 석굴도’라는 이름으로 화폭에 담았다. 단단한 화강암이 많은 우리나라에 골굴암은 매우 특이한 경우라는 얘기.  

 

 

 ▼ 포대화상과 동아보살이라는 진독개의 석상.

 

▼ 겨울에 태어나서 동아로 불리는 개가 막 되먹은 사람보다 나을 수가 있겠다.

 

 ▼ 세심단[洗心堂]

 

 ▼ 사찰 종무소

 

 ▼ 수십미터에 가파르게 형성된 석회암의 골굴암의 실체가 나타난다.

 

 

 

 ▼ 구멍을 연결하며 만들어진 계단길이 가파르다. 바위산에 뚫린 구멍만큼이나 역사는 깊고도 깊다. 골굴사와 같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인근의 기림사(祗林寺) 사적기를 보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온 광유(光有) 성인이 함월산에 정착하면서 골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절벽 꼭대기에 새겨진 높이 4m, 폭 2.2m 정도의 마애불상은 오랜 풍화로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다. 바위를 이루는 석회암의 약한 성질 때문에 더 쉽게 부서진다고 한다. 지금은 훼손을 막기 위해 비닐하우스 같은 둥근 모양의 투명한 보호막을 설치하였다.

 

 

 

 

 

 가파른 돌계단을 하나씩 딛고 올라서면 칠성단,라한굴,약사굴,관음굴, 지장굴,신중단,산신당 등 굴법당이 차례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석굴마다 기와를 얹은 전실이 있어 스님들이 염불을 하고 수행을 했다고 한다. 가장 규모가 큰 관음굴은 둥근 천장과 벽으로 된 석굴로 관세음보살과 벽면에 청동 108관음상을 모시고 있다.

 

 

 

마침내 바위를 딛고 일어서면 바위산 꼭대기에는 문무대왕릉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비록 천년을 넘어 갖은 풍파에 바위 면이 일부분 닳기도 했지만 신라의 숨결이 깃든 온화함은 여전해 잃지 않고 있다. 보물 제581호이다. 입체감이 뚜렷한 얼굴 윤곽에 견주어 신체는 다소 평면적이다.

 

 

▼관음굴. 골굴암에는 12개의 석굴 흔적이 남아 있고, 6개의 석굴이 불공을 드리는 암자로 활용되고 있다. 그 중 관음전은 깊고 넓으며 전실이 기와집으로 마련돼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석굴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마애여래좌상에서 관음굴법당으로 통하는 혈[穴].

 

 ▼ 지장굴.

 

 

 ▼ 마루 아래가 산신당의 여궁이란다.

 

 

 

 ▼ 남근바위

 

 

 

 

 

오륜탑. 옆에 있는 비석에 이런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오륜탑은 청정법신 여래불을 상징하는 만다라로써 모든 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을 뜻하여 오지륜이라고 한다. 불교의 수행법인 밀교에서 지.수.화.풍.공 오단의 형상은 물질계인 4대와 정신계인 공의 조화를 의미하며 중생의 육신과 오대를 대응시켜 자기 몸안의 오처에 오관을 관하여 육신이 곧 법신임을 체득케 한다. 천오백년전 인도로부터 불법을 전래한 골굴사의 창건주 광유성인을 받들어 이 탑을 조성하며 태국에서 모셔온 불사리 3과를 봉안하였다'.

 

 골굴사의 큰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

 

 

 ▼ 스님들의 거처인 화쟁요, 찻실인 일심당, 종무소,세심당이 내려가는 왼편으로 있다. 일심당 옆 간이 공간에서 커피 한잔하던 중에 오늘부터 오후3시 30분에 하는 선무도공연은 대적광전 아래 보재루에서 한단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내려간 친구들을 부르니 구경하고 오란다. 저네들은 감은사지로 가겠다며 두팀으로 나뉜다.  

 

 ▼ 선무도 공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조선 중후기에 불이 나면서 쇠락의 길을 걷던 골굴사는 현세에 이르러 ‘선무도(禪武道)’ 도량으로 명성을 얻으며 다시 살아났다.

 

 

▼ 선무도는 ‘위빠사나’라고 불리는,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에서 전하는 전통수행법이다. 적운(寂雲) 주지스님은    “안반수의경의 가르침이 곧 몸과 마음과 호흡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며 “선무도는 이를 발전시킨 수행법    이다”고 설명했다.

 

 

선무도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명상, 선기공, 선무술을 아우르는 수행법이다. 수행은 현대인의 정신적 고뇌와 스트

   레스, 육체적 불균형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현대인들이 골굴사를 찾고 있다. 골굴사는 이들을 위해

   경내에 선무도대학을 설립하고 템플스테이 체험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 날아오르듯 발차기하는 스님의 절도 있고 날렵한 동작들은 보니 헉소리가 난다.

 

 

 ▼ 선무도 공연을 포함해서 2시간10분 정도 골굴사를 구경하고 감은사지로 간 팀과 합류하러 감포방향으로 나간다.

 

 ▼ 전촌항의 거마상[巨馬像]. 이곳 북쪽 산세가 멀리서 바라보았을때 큰말이 누워있는 형상이어서 '거마산''거마장'이라고 하고 신라때 이곳에서 외군의 침입을 막기위해서 말을 키우고 관리하던 곳이리고 해서 옛지명의 유래를 담아 조형화한 것이다.

 

▼ 감은사지로 간 넷과 만나서 전촌항으로 들어온다.

 

▼ 전촌항은 경북 경주시 감포읍 전촌리 있는 어항이다. 감포항 남쪽 2km의 돌출부 서쪽 만입한 곳에 있는 어항이며 물양장을 공원화하여 아름다운 조경을 이루고 야외공연장도 갖추었다.914987; 129.4949522 (전촌항)

 

 

 

 ▼ 이 곳은 해파랑길11코스의 한 지점이다.  경주 해파랑길(10~12코스)은 동해안 용암주상절리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양남 파도소리길이 화려하게 시작되고, 그 뒤를 그림들이 2㎞쯤 도열한 읍천항 벽화마을이 잇는다. 파도와 몽돌이 빚어내는 경쾌한 소리가 일품인 나아해변을 지나면 신라의 중요한 세가지 유적을 차례로 만난다.
신라 30대 왕으로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수중릉이 그 첫 번재요, 용이 된 아버지가 머물
수 있도록 신문왕이 지었다는 감은사지의 삼층석탑이 그 두 번째다. 문무왕이 용으로부터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건네 받았다는 이견대가 마지막을 장식하며, 문무왕 전설의 3단 구조를 완성한다.
 세가지 유적을 모두 거친 해파랑길은 해안을 따르며 동해가 들려주는 파도소리에 젖으며 동해 남부의 중심 어항인 감포항에 다다른다. 이후 길은 여전히 바다를 길동무 삼아 굽이굽이 이어진다.

 

 ▼ 적백 한쌍의 등대가 서 있고 방파제에서 낚시를 드리운 조공들이 고기를 기다린다.

 

 

 

 

 

 

 

 

 

 

 

 

 

 

 

 

 

 

 

 ▼ 여기서 10여분만 가면 숨은 비경 용굴이 있다지만 여기까지다. 예약해둔 횟집으로...

 

 

 

▼ 노부부가 운영하는 횟집 간판도 없고 아는 사람만 찾는 집이란다. 15만원 회를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12만원 정도면 될 것이라는 할머니의 정직한 말씀에 감동을 먹는다. 할아버지가 그날 잡아 온 녀석들로 막 썰은 회가 나오기 전에 밑 반찬으로 올라 온 홍게,소라,미역으로도 참 소주가 몇병이 없어졌다. 

 

▼ 메운탕까지...게 라면을 할 거라고 홍게랑 싱싱한 미역 포장을 부탁했더니 푸짐하게 주신다. 보문단지까지 대리운전비가 대당 4,5만원 줘도 가성비가 괜찮다.

경주보문단지의 한화리조트에 들어와서도 우리들의 얘기는 끊이지 않는다. 라오스에서 새벽에 들어와 부곡의 상가를 들러서 늦게서야 합류한 영화까지 더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