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에 얼굴 가린 봉화 청량산
여름날에 십이선녀를 만나 볼 요량으로 청운산우 동문들이 종합운동장역 약속장소로 하나둘 모여든다. 근자에 주말마다 내리는 비가 변수여서 약속시간까지는 빗방울이 한두방울 보이는 정도지만 언제 한바탕할 지는 모를일이다. 그러하니 오늘 일정의 순탄함은 담보되지 않는다. 두번 빠져서 근 육개월만에 만나는 선후배들과 반가움 나누는 사이 하늘의 질투가 설악산 전역을 통재하게 하여 급하게 행선지를 변경하게 만든다. 십이선녀대신 봉화 청량산으로 이황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청량산 가는 길에도 비는 오락가락하다가 줄기가 조금 더해진다. 차창에 떨어지는 그 녀석들 하나 둘 헤아리는데 김여사는 여기 비가 천둥과 합세하여 엄청 쏟아지는데 산에 가기는 하는지, 위험한데 어찌 등산을 할려고 하냐는 둥 잔소리?가 폰을 통해 귓전에 머문다.
전라도에 무진장이있으면 경상도는 BYC가 있었다. 물런 옛 말이긴해도 그 봉화 중에도 오지 명호면의 굽이길과 나란히 하는 낙동강에 레프팅을 즐기는 무리들의 웃음진 표정이 눈에 잡힌다. 물이 좀 더 많아서 물살의 세기가 더하면 좀 더 스릴이 있을 텐데...
가는 길의 낙동강 건너에 예던길[예던 혹은 녀던은 걷던의 고어]의 데크가 보이더니 삼거리에서 청량교를 건너 淸凉之門으로 들어선다. 가는 비는 그칠줄 모르고 운무는 사방을 스물스물 덮고 있다. 선학정에 내려서 우의 하나 걸치고 우중산행의 시동을 건다.
퇴계선생은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읊었다. '淸凉山 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白鷗로다. 白鷗야 훤사(喧辭)하랴 못미들손 桃花로다. 桃花야 떠나지마라 魚舟子알까 하노니'라고. 청량산은 기암괴석이 봉을 이루며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을 비롯해 선학봉, 자란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총립해 있고, 육육봉(12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다. 퇴계는 어릴때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이 산을 찾았다 한다. 또한 도산서원 건립당시 입지선정을 위해 청량산을 현재의 도산서원 중 어디에 건립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1. 누구가 : 대건청운산우회 동문들과
2. 언 제 : 2017년 07월 23일(일) 비.
3. 어디로 : 봉화 청량산[淸凉山,870m]
4. 얼마나 : 3시간 55분(휴식,간식,사진촬영시간 포함)
산행의 백미는 장인봉(의상봉) 정상에 올라 낙동강 줄기를 감싸안은 청량산 줄기가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조망하는 것과 정상 남쪽의 축융봉(845m)에서 바라보는 청량사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청량산 속에는 한때 30여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내청량사, 외청량사 두곳이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은 그림의 떡이다. 카메라는 베낭에서 바깥구경 못하고 폰카는 재멋대로 오락가락한다.
▼이동경로 : 선학정 - 청량사 - 뒷실고개 - 자란봉 - 하늘다리 - 선학봉 - 장인봉 - 전망대 - 청량폭포
▼ 선학정 길건너 청계사 오름길 입구.
▼ 10:58 우의에 우산...오늘 걷는 길 소개. 날이 알인 만큼 최단코스 오르기.
▼11:21 청량사 입구. 안심당은 사찰내 정통 다원으로 숨을 고르고 삶의 여유를 갖는 공간이다. 안심당의 차에는 바람소리가 녹아 있고
한지의 향기가 은은하게 녹아 있다는데 맑은 날 들러서 그 맛을 느껴보고 싶다.
▼1990년에 세워진 5층 석탑.
▼명호면 북곡리 청량산 한 가운데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동년 의상대사가 창건
했다는 설이 있는 고찰로 한때는 연대사를 비롯한 27개의 암자가 있어서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
면서 증·개축하였다고 전해져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온다.
붉은 색을 띠는 유리보전 앞의 석축이 이채롭다.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진력을 쏟고 있을 때 하루는 사하촌(寺下村)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농부가 뿔이 셋이나 달린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에 원효 대사가 농부에게 이 소를 시주하여 줄 것을 권유했더니 농부는 흔쾌히 이
뿔 셋 달린 소를 시주했다. 이에 원효 대사는 소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이 소는 절에 온 후 고분고분해지더니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밤낮없이 운반하더니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생(生)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 스님은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
우송',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
▼ 유리보전 앞의 삼각우총과 삼각우송
▼구름에 숨은 봉우리들에 둘러쌓인 산사에 20여분 머물다가 구름다리를 향해 간다.
▼ 12:21자소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뒷실고게.
▼ 12:31 청량산 하늘다리도 형체뿐이고...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통과폭 1.2m, 지상고 7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이다.
▼간식보따리 풀기. 이번 산행에 뭘 준비해 줄지 고민한 김여사가 마트에 갔다가 맛있는 문어를 발견해서 싸준 것이 풀자말자 순식
간에 팔려버린다. 아직 녹지 않고 슬러시가 된 맥주 맛도 환상이다.
▼이번에 동행한 울 공기들 합이 17人.
▼13:16 하늘다리 90m를 지나오는데 45분이 걸렸다. 막걸리,맥주,포도주,白酒...다양하게 조금씩만 맛보다.
▼12:22 청량폭포 갈림길. 장인봉을 올랐다가 다시 돌아와서 청량폭포로 내려갈 참이다.
▼1337 청량산 정상 장인봉. 외산(外山)의 주봉(主峯)인 장인봉은 청량사(淸凉寺) 유리보전(琉璃寶殿)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량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870m)이다.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장악
(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登淸凉頂(등청량정) 周世鵬(주세붕)
我登淸凉頂(아등청량정)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兩手擎靑天(양수경청천)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白日頂臨頭(백일정림두)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銀漢流耳邊(은한류이변)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俯視大瀛海(부시대영해)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有懷何綿綿(유회하면면) 감회가 끝이 없구나.
更思駕黃鶴(갱사가황학) 다시 황학을 타고
遊向三山巔(유향삼산전)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시계제로. 낙동강건너 풍광을 시원스레 감상할 것인데...
▼13:59 청량폭포 갈림길. 장인봉에서 0.3km. 내려오는데는 5분여면 족하다. 청량폭포까지는 1,5km.
▼ 운무에 섞인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칡향이다.
▼14:46 카페 청량산 두들마을이 근처에 있다. 혼자라면 커피 한잔의 여유도 가지겠구만...
▼14:54 청량폭포. 넉넉함도 부족함도 없는 적당함의 봉화 청량산이라.
遊山何所得(유산하소득) 산을 유람하며 무엇을 얻었나.
如農自有秋(여농자유추) 농부가 가을 수확이 있는 듯하네.
歸來舊書室(귀래구서실) 전에 있던 서실로 돌아와
靜對香烟浮(정대향연부) 조용히 향연을 마주했네.
猶堪作山人(유감작산인) 그래도 산사람 되어서
幸無塵世憂(행무진세우) 요행히 속세의 우환을 당하지 말았으면
▼ 청량폭포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에서 보면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명산인 봉화 청량산. 익히 소문은 있어 한번 와 보고자 했는데 어찌 그리 기회가 안 되든지, 12선녀 대신에 찾을려고 한 것은 분명 아니었어라. 우중산행에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도 육육봉의 멋진 경관을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다음 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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