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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시집 '왼손을 위하여'

자어즐 2020. 12. 23. 19:03

 

네 번째 징검돌이다

개여울 저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앞만 보고
가만가만 걷는다

희미한 불빛 한 점
설핏 보인다

2020년 초겨울 시인의 말이다.

 

조성순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며 “물자작나무 껍질에/ 밤새껏 쓰는/ 바람 편지” 같은 시를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고해의 바다에서 사느라 많이 흔들리면서도 생동하는 기운을 잃지 않고, 미망 속에서 길을 찾아가면서도 담백한 자세를 지니고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그의 상상을 따라가는 길이 즐겁다. 여름에도 눈이 내렸다는 내성천, 그리운 것들이 다 모여있는 옛집, 인디언 달력 같은 그만의 십삼월, 찬바람 몰아치는 세상에서도 오래 기억하는 따뜻한 온기가 내면을 채우고 있어서 좋다. 그의 상상을 따라 과거로 가도 맑고 서늘하며, 미래로 가도 흥겹고 신난다. 부디 백석이 살던 동네에 정착하여 살다가 우리들을 초청하여 왁자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도종환(시인)

 

책소개
조성순 시인의 시집 『왼손을 위하여』가 시작시인선 035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경북 예천 출생으로 2004년 『녹색평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으로 『목침』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나는 걸었다』가 있다. 『왼손을 위하여』에서 시인은 이전 시집들에서 보여 주었던 산업화 이전의 전통적 농촌 사회의 토속성을 이어나가면서도 존재의 회복을 모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보다 개진된 면모를 보여 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실존’을 도모한다.


한편 시인은 기술문명의 진화로 인하여 분리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시인은 인간이 자연을 소외시키는 작금의 상황을 성찰하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상생과 공존이 가능했던 지난날을 회억한다. 또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주면서 인간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모순, 소외와 비인간화의 거센 물결에 맞서 저항한다. 이처럼 시인에게 현실로부터의 탈출은 단순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단호한 부정과 저항을 의미한다. 현실과의 단절이 아닌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거리 두기인 셈이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왼손을 위하여」는 시인의 ‘저항’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시인은 익숙한 오른손 대신 배제된 왼손을 사용하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기존의 사회 질서에 대한 저항과 함께 본질적 존재에 대한 고된 탐색의 과정을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다. 해설을 쓴 최성침 문학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시인은 “여전히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전력을 다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전사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추천사를 쓴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고해의 바다에서 사느라 많이 흔들리면서도 생동하는 기운을 잃지 않으며, 미망 속에서 길을 찾아가면서도 담백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언어의 곡예사가 되어 절망적 상황 속에서 사랑의 환희로 가득한 그리움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인터넷교보문고]

 

탁자 위에 책이 든 우편물이 날 기다린다. 윤배 회장이 在京 大建 26回 이름으로 보냈다. 선 자리에서 개봉하니 성순이가 낸 시집 '왼손을 위하여'가 나온다.  

 

조성순
경북 예천군 감천면 장산리 찬샘골에서 나고 자랐다. 집 주변에 증조부께서 심은 늙은 감나무가 많다. 대구 대건고등학교 문예반과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석사과정에서 현대문학을, 박사과정에서 고전산문을 공부하고 수료했다. 2012년 한문전문교육기관 성균관 한림원 한림계제를 수료했다.

1989년 이광웅, 김춘복, 김진경, 도종환, 윤재철, 안도현, 조재도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창립하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문학나무 신인상을 받고 2011년 제12회 교단문예상 운문 부문에 당선됐다. 놀기를 좋아하여 일본의 알프스 산군과 후지산, 야쿠시마 등을 헤매고,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 오지 정글 투어를 여러 번했다. 몽골 고비사막, 북인도 라다크, 중국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실크로드 상의 여러 곳을 탐방하고, 네팔 랑탕 고사인쿤드 헬람뷰, 안나푸르나 라운딩 등 고산 트레킹을 여러 번했다.
2016년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메고 프랑스 생장을 출발하여 스페인 산티아고를 거쳐 대서양 북단 묵시아까지 한달 넘게 920km 남짓 걸었다. 2017년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사운드 트랙과 북섬의 통가리로 등을 방랑하고 현재 어디를 열심히 걷고 있다.
시집 『목침』을 상재했다.

 

기상이는 내가 아는 그 기상이 일게다. 2018년 1월 추운날 크지 않는 키에 다부졌던 그를 교통사고가 데려 갔다. 한 때 PD로 열심히 살았던 친구였는데... 

 

2016년 9월 24일 춘천 오봉산 산행에 동행한 전기상. 표지석 오른편에 비스듬이 기댄 친구다. 오른쪽 끝이 조성순이다.
다음 시집 맨 끝에 넣을 생각이라던 시 '피리'가 말한대로.

죽음과도 같은 외로움과 망각, 버려진 절망적 상황 속에서 사랑의 환희로 가득한 그리움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반전의 발생을 통해 시인이 도달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탈의 경지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랑과 그리움의 크기가 얼마만 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성순 시인은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리움을 노래하고 또한 그 그리움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기쁨 안에 거처를 둘 수 있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숙명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시집을 마무리하고 있다.        최성침(문학평론가)의 해설 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