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을 시작하는 날 춘천 오봉산을 넘어려고 배후령에 왔다, 이년전 구월에도 친구 열명이서 이곳을 지나갔다. 그 때는 춘천역을 나오자 바로 따라붙는 기사랑 밀당을 해서 택시 두대에 다섯명씩 포개 타고 배후령을 왔었다.
그 중에 옷,모자,베낭의 색상을 잘 맞춰 입어 괜찮다고 말해 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녀석 있었다. 작지만 야무진 체구다. 말은 별로 없어도 지긋한 눈빛으로 사람을 끄는 묘한 분위기의 녀석은 고등학교 동기다. 학창시절의 기억이 없어 아마도 그 때가 처음 본 듯하다. 미국에 식구들이 살고 있어 왔다갔다한다는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하기는 해도 시간이 가면 자연이 알아질 터이니 대놓고 물어 보진 않았다. 그리고 나서 모임에서 두어번 만났다.
친해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올 1월 13일 '꽃보다 남자'의 PD 전기상 새벽에 교통사고로 사망이라는 보도가 났다. 그 녀석의 얼굴이 비치는 화면을 보고는 얼마나 놀라고 안타깝던지. 이제 겨우 한갑자 돈 한창인 나이가 아닌가. 그제서야 이 녀석이 제법 이름있는 연출자임을 알았다.
구월에 이 친구가 생각나서 산행코스를 오봉산으로 잡는다. 팔뤌산행을 휴가가 겹치고 폭염이어서 쉬어간 덕인지 열둘이 동행을 한다.
아침 여덟시에 만나기로한 상봉역 경춘선 플랫폼에 들어서자 정식이가 버선발로 달려 나오 듯 마중한다. 일이 꼬여서 이년 남짓 보지 못한 얼굴이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밝고 건강한 모습이어서 고맙기도 하다. 안부를 묻고 아홉이서 인사나누는 사이 춘천행 전철이 들어온다. 두명이 조금 늦는다. 하나면 기다리겠지만 둘이라 동무가 될것이니 뒷차로 따라오라 하고 출발한다. 시간을 착각하여 차를 가지고 달려올 재석이도 춘천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택시를 나눠타고 배후령으로 가는 중에 기사양반 닭갈비의 유래를 얘기한다. 당시 돼지고기보다 가격이 싸고 구하기가 용이한 닭을 발라 양념하여 절인 것을 숯불에 구워, 닭불고기로 먹은 것이 닭갈비의 원조다. 그러다가 양념한 닭에 버섯 고구마 당근 양배추 깻잎 양파 파등을 넣어 철판에 뽁아 먹는 뽁음요리 대표주자의 하나로 변형되었다. 특히 춘천에 닭갈비가 발달한 것은 근교에 양계장과 도계장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택시가 배후령터널로 들어간다. 출발점은 분명 배후령 터널 위이다. 춘천 택시 기사면 오봉산 산행을 위해 배후령에 데려달라고 하면 모를리 없으련만 석연치 않는 이유를 달며 한참을 돌아간다. 일행의 택시보다 6,000원이 더 나와 왠지 속은 기분에 찜찜하다. 23,000원 남짓의 금액이 정상이다. 좋은 기분 상할라,한번도 넘지 못한 배후령터널을 지나 본 것으로 위안하고 만다.
1. 누구가 : 박경환,방주태,송승섭,안호섭,윤정식,이수기,이재현,이종철,임윤배,장원식,전병희,전재석
2. 언 제 : 2018년 09월 01일(토).
3. 어디로 : 춘천 오봉산
4. 얼마나 : 4시간 36분(휴식,식사시간 포함)
지난번에는 부용산까지 돌았다. 이번에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청평사를 구경하고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와 막국수는 맛보고 갈 참이다. 춘천닭갈비막국수축제가 춘천역앞에서 열리고 있어 그리로 갈까 추천을 받아 맛집으로 행차할까...
▼ 이동경로 : 배후령 - 청솔바위 - 오봉산정상 - 홈통바위 - 청평사 - 구성폭포 - 청평사선착장 -(배)- 소양댐
▼ 춘천역에서 뒤에오는 셋을 기다리며 곡차 한잔하다. 일찍 나와서 출출하던 차에 찹쌀꽈베기랑 먹는 맛이 상당하다.
▼ 춘천에서 오봉산을 넘어 화천,양구로 가는 고개 배후령. 해발 600m.
▼ 산악회 한팀이 이 지도로 코스를 설명하는 걸 보니 우리랑 같은 코스다. 경주00산악회 고리표가 붙어 있다.
▼ 10:48 배후령을 들머리로 산행 시작.
▼ 11:03 오봉산1 지점.
▼ 어제 철홍,희봉이랑 솔모로에서 운동하고 분당으로 나와 한잔한 것이 초기 오르막에 엄청난 땀으로 배출된다.
▼ 11:33 오봉산 2지점
▼ 용화산.
▼ 11:45 청솔바위
▼ 이곳은 주중내내 비가 오락가락한 탓에 개인 오늘 시계는 아주 좋다. 하늘도 푸르고 높아 이제 가을임을 예고한다.
▼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폭염도 가을 바람에 밀려 차츰 기억에서 사라져 가듯이 전에 이길을 같이 걸으며 멋진 풍광에 미소짓던 기상이도 차차 잊혀져 가지 않을까 싶다. 수 많은 이야기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 않음에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망각이 삶을 지탱해 주는 요인이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 12:00 오봉산 정상에 들어선다.
▼ 한무리의 산악회 사람들이 인증샷으로 정상석을 점유하고 있어 한참을 기다려 정상석 사진 한장 찍는다.
▼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이 차려지니 진수성찬이 상이 된다. 윤배가 가져온 포도주 향이 혀끝을 자극한다.
▼ 50여분 입이 즐겁고 나니 정상석이 비어 있다.
▼ 12:53 정상에서 청평사로 하산 시작.
▼ 12:57 부용산,청평사 갈림길.
▼ 13:02
▼ 옆으로 동행하는 부용산.
▼ 13:13 홈통바위.
▼ 13:24 청평사로 내려가는 두개의 갈림길. 원래 계획은 급경사로 내려가면서 천단 촛대바위를 구경하려던 것이고 경치도 그길이 좋을 것인데 앞선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니 계곡길로 내려가고 있다.
▼ 이 방향이 안내목에 청평시(완경사)로 표시된 곳이다. 근데 이것은 완만한 경사가 아니고 완전한 경사의 줄임말 같다.
▼ 13:30 오봉산 4지점의 지도를 보고서야 당초 가려던 길이 아님을 안다.
▼ 바위에 뿌리내린 나무.
▼ 계곡물을 만나자말자 고생한 발을 물에 담근다. 차갑진 않아도 온몸에 전달되는 시원함이 산행의 맛을 더한다. 신체 부위에서 저마다 중요하다는 내새우는 주장에 밀린 똥구멍이 의욕을 잃고 해야할일을 중지한다. 그리 삼일이 지나니 모든 신체 부위가 항복했다는 우스게소리도 하면서...
▼ 진락공 세수터의 표지판에는 이자현이 손과 발을 씻기 위해 네모로 두 개의 구멍을 파놓은 곳으로 설명돼 있다.암석에 가로 40㎝, 세로 30㎝ 규모의 직사각형 두 개가 파여 있고, 두 사각형 사이에는 작은 물길이 흐르는 모양이다. 춘천문화연구회는 진락공 세수터는 세수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닌 차를 좋아하던 고려 중기 시대 학자 청평거사(淸平居士) 이자현(1061~1125년) 선생이 찻물을 걸러 뜨기 위한 곳이었다고 명칭변경이 되어야한다고 한다.
▼ 식암폭포. 높이가 10m 되는 이단폭포다. 아랫쪽 폭포 위에 선동암 터와 윗쪽 폭포 위에 진락공 이자연의 세숫터가 있다.
▼ 수행자들이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도록 참선수도했다는 척번대(滌煩臺). 씻을 척滌, 번거로울 번煩, 대 대臺,
▼ 여기서 잠시 길을 놓쳐 업는 길 돌아 나간다.
▼ 모든 괴로움과 헛된 생각의 그물을 벗어나 아무 거리낌이 없는 진리의 깨달음을 얻는 문 해탈문. 휑한 느낌이다. 분명 있어야 할 지붕이 없다. 어디로 갔을꼬.
▼ 어제까니 내린 비에 계곡 물이 소용돌이 치며 세차다. 아래가 공주탕.
▼ 14:39 청평사 돌담
▼ 청평사 재일 위에 자리한 극락보전. 청평사는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오봉산에 있는 절이다. 973년 승현선사가 창건하여 백암선원이라 했던 곳으로 1550년 보우가 청평사라 개칭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청평사 회전문과 극락보전, 불각 1동이 있다. 극락보전 앞에는 830여년이 된 보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 통상적으로 대웅전 앞에는 탑 하나는 있을 법 한데 여기 대웅전 앞은 그냥 앞 마당 모습이다. 고려시대 이자현, 원진국사 승형, 문하시중 이암 나옹왕사 등이 또 조선시대에는 김시습, 보우, 환적당, 환성당 등이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청평사 이름도 이지헌의 호를 따서 지었단다.
▼ 우리나라의 절들 중에서 청평사에서만 볼 수 있는 회전문(보몰 제 146호)은 일주문이 없는 청평사에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것으로 중생들에게 윤회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자 만든 마음의 문이다. 문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은 아이다.
▼ 절구경하고 청평사에서 터덕터덕 내려오다보면 그리 별나 보이지 않는 연못을 만난다. 설명하는 표지판이라도 없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이자현이 청평사 주변을 방대한 규모의 정원으로 가꾸면서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만든,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강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고려정원의 한 흔적이란다. 연못에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비친다고하여 그림자 영자를 써서 영지라 한단다.
▼ 영지에서 계곡의 물소리 들어며 4,5분 내려오다 보면 유난히 큰 물소리를 듣는다. 구송폭포다. 주위에 손나무 아홉그루가 았어 九松瀑布로 불린다.
▼ 환경 변화에 따라 아홉가기의 소리가 들린다하여 九聲瀑布라고도 한다.
▼ 구성폭포는 삼악산의 등선폭포, 문배마을의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란다.
춘천 청평사 고려성원[春川淸平寺高麗禪園]은 고려 초기에 선(禪)을 수행하는 도량으로 창건된 오봉산 청평사의 원림(園林; 자연에 인공을 가미하여 정원처럼 꾸민 숲)으로 명승 제 70호 이다. 청평사를 중심으로 계곡·폭포·소(沼; 물 웅덩이)·기암괴석·너럭바위·석굴 등의 자연과 연못·사찰·석탑·암자·석축 등의 조성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청평사는 973년(고려 광종 24) 창건될 때부터 불교의 선 사상과 도교의 은둔생활 기풍이 깃들어 있던 곳이다. 고려 선종 때 문인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 이곳에 들어와 선을 공부하며 현재의 청평사를 문수원이라 칭하고 주변 골짜기 일대를 선원(禪院)의 정원처럼 가꾸었다. 그는 전각을 짓고 골짜기 곳곳에 암자· 정자를 세웠으며, 좌선·휴식을 위해 석축을 쌓아 대(臺)를 마련하였다. 또 영지라는 연못을 조성하며 선원의 영역을 넓혔다. 지금은 영지와 바위에 새긴 몇몇 글자, 유적의 터와 흔적만 남아 있다.
▼ 거북바위.
▼ 청평사에서 부터 내려오는 계곡에는 당나라 공주와 관련된 설화가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이 조형물도 그 중 하나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다.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여러 치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주는 궁궐을 나와서 방랑을 하다가 한국의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은 공주는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 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하였다. 이에 공주는 당나라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짓고 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세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고 하며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15:08 헝평사 매표소. 산행 덕에 인당 2,000원씩 24,000원 번다.
▼ 이 안내판 앞에서 그 친구랑 여섯이 웃으며 찍은 사진이 생각난다. 오늘 여러 군데서 그런 기억을 끄집어 낸다.
▼ 매시 정각과 30분에 배가 있어 15:30분 배를 타러 감자전에 막걸리 한사발을 생략하고 선착장으로 직행한다. 한번 타는 데 3,000원.
▼ 소양댐 선착장. 왠만큼 찬 소양호의 물를 시원하게 가르며 15분 정도 달려 왔다.
▼ 닭갈비,막국수 축제가 진행중인 춘천역에서 먹으면 절약되는 것이 있을 거지만 축제장의 음식은 별로라는 중론에 밀린다. 해서 윤배가 지인에게 춘천 닭갈비 맛집으로 안내 받은 코구멍다리[세월교] 부근 쌈쌈에서 만나기로 한다.
▼ 택시기사에게 코고멍다리 쌈쌈을 예기하니 계속 거절당해서 할 수 없이 돈을 더 줄테니 가자고 하니 그제서야 탈 수 있다. 코구멍 다리가 소양댐 아래 있어 거리가 얼머되지 않아 시내까지 손님을 태워 가야할 기사 입장에서는 그럴만하다 싶어도 속은 씁쓸하다.
▼ 버스시간표를 보니 춘천역까지는 20분 간격으로 있다.
▼ 맥반석 숲불닭갈비 쌈쌈. 고추장양념닭갈비에 소맥 한잔 시원하게 들이키니 산행 후 갈증이 한방에 잡힌다. 당사자들에게 설명을 듣고 굽기를 잘해야 맛이 배가 된다는 사실. 맛이 있어 추가로 종목을 바꿔 소금양념달갈비로 했더니 맛이 덜하다. 순서의 실수다.
고추장의 자극적인 맛에 즐거운 혀가 순한 맛의 소금양념으로 바뀌니 맛이 탕감될 수 밖에는. 그러니 주문 순서는 소금양념-간장 양념-고추장양념 순으로 해야 딘다. 값은 모두 1인분 250g에 12,000원. 마지막으로 맛보지 않으면 후회할 막국수까지 곁들여서 부른 배는 임신초기 증상을 넘어간다.
산행시간 보다도 전철 타는 시간이 많은 하루였다. 전철에 소비한 시간이 6시간이다. KTX 타면 팔공산 가는 시간도 되겠다며 그리로 산행계획을 잡자는 친구도 있다. 팔공산을 못 올라 본 친구들이 몇이나 있어 언제 한번 방법을 만들어 봐야겠다.
오늘 그 녀석을 추억하고 그 녀석이 보우하사 열둘이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였다. 초입의 가파른 오름길에 흘린 땀을 말려 주는 봉우리에는 시원한 풍경이 반기고 그기에는 항상 그녀석이 있었다. 청평계곡의 설화도 그녀석이 연출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굴 생각하고 누굴 기억하며 하는 산행은 이번 한번으로 족하고 싶다.
열외 없이 친구들 모두가 산행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잔차도 타고,당구도 치며 히히낙낙하면 남은 시간 심심치 않을텐데...
그려.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열심히 살았고 하나 둘 품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남은 앞으로의 시간은 김형석교수의 말과 같이 인생 황금기의 시작인데 울 친구들 그 시기를 함께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만남의 낙을 오래 나누려면 건강한 몸,건강한 마음이 먼저라, 스스로 챙겨보는 수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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