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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이-소창체험관,조양방직

자어즐 2022. 9. 11. 22:45

승섭이랑 시간이 괜찮으면 강화나들길 14코스 '강화도령 첫사랑 길'을 걷고픈 마음이지만 김여사 바람 쇠러 가자는 작은 소망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파트너를 김여사로 교체하기로 한다. 무릎이 신통찮아서 자신은 없다면서도 무릎보호대를 하고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따라나선다. 걷다가 여의치 않으면 돌아서서 언젠가 가보려고 했던 조양방직에서 차 한잔 마시고 올 생각으로 시동을 건다. 

명절 연휴라 고향간 사람들이 많아서 강화 방향 길은 여유가 있을 것이란 지레짐작은 현실과 차이가 크다. 명절이라 고속도로 통행료가 0원으로 찍힌다. 강화대교를 건너 나지막이 솟은 남산을 보고 저것을 넘어가는 것이 14코스라고 했더니 높지 않아서 걸을만하겠단다. 그런데 한두 방울 씩 빗방울이 앞유리를 두드리니 핑계삼아 걷는 것보다 강화 시장과 차 마시는 쪽으로 생각을 돌린다. 용흥궁에서 철종외가까지 11.7km, 3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나들길은 다음으로 미룬다.

 

풍물시장 노외공영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강화풍물시장으로 구경 간다. 인천 유일의 5일장이 열리는 명물인 곳으로 2,7 장날에는 풍물시장 주차장이 전부 장터가 되는데 오늘은 주차장이 재기능을 한다. 1층에는 색깔 곱게 말린 고추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새우, 꽃게 등 수산물과 밭에서 나는 채소들이 호객을 한다. 김여사 배추 한 포기 살려고 물으니 상인 아줌니 왈 '한 포기에 2만 원을 하니 가져다 놓을 수가 없다'라고 한다. 장바구니 물가에 놀라 잘못 들었나 했다. 김여사 며칠 전에 집 까까운 시장에서 만원 하더라며 물가가 장난이 아니란다. 

2층은 식당가가 차지하고 한쪽으로 화문석 가게가 서너집이 붙어 있다. 김여사 시집올 때 가져왔던 반짇고리가 내용연수를 다했다고 지름 19cm쯤 되는 걸 10만 원에 구입한다. 세 군데 가게의 가격이 모두 다른데 20만 원, 12만 원, 10만 원으로 차이가 있더란다. 김여사 눈에는 같은 제품으로 보이는데...

집에서 늦은 아점을 먹고 나와 밴뎅이 회무침은 입맛만 다신다. 2인분에 3만 원이더라.

 

대한성공회 강화성당(大韓聖公會江華聖堂)

지난번에 진무영순교성지를 방문하고 들렀던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 이쁘더라는 김여사의 말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이 변한 것이 있는지 있는지 보러 왔다. 밖에서 보면 향교의 느낌이었다가, 절집의 냄새도 나고, 안으로 들면 성당으로 결론짓는다.

 

국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은 전북 완주의 되재성당이다. 약현성당에 이어 1985년 두 번째로 세원진 되재성당은 전쟁 때 소실되었다. 그래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24호로 지정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우리나라 현존하는 最古의 한옥 성당이다.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Corfe,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강화성당은 서유럽의 바실리카(Basilica) 양식과 동양의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내부 공간은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불교 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바실리카 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두 줄의 기둥을 세워 내부 공간을 3 분할하는 것이다. 

 

성당 오른쪽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가 심겨 있다. 영국 선교사 트로로프 신부가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리수나무는 불교의 상징이다. 맞은편엔 선비와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한그루 있었는데 아쉽게 2012년 한반도를 덮친 태풍 ‘볼라벤’으로 쓰러져버렸다고 한다.

 

성당 지붕 용마루에 십자가가 올라앉았다. 그 팔작지붕 합각 아래에 ‘天主聖殿’이라는 한자 현판이 있고, 정면 기둥에는 주련(柱聯)을 걸었다. 모두 성경 문구를 한자로 해석한 것이다. 불교의 범종을 닮은 성당의 종은 1914년에 영국에서 기증한 것이었으나 1944년 일제에 징발당해 지금의 종은 1989년 교우들이 봉헌한 것이다.

 

성공회 강화성당 정문 외삼문
용흥궁. 강화나들길 14코스 출발 스템프가 있는 도장함.

용흥궁(龍興宮)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왕족이 아닌 평범한 백성으로 살다가 종을 칠 뻔했으나 헌종이 23세에 후사 없이 요절하는 바람에 왕위를 계승한 인생역전의 대표적인 완이다. 강화도령으로 불렸던 철종이 왕위에 오르고 난 이후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궁의 이름을 왕의 잠저로서 '용이 흥하게 되었다' 하여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용흥궁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1,200명이 일했던 삼도직물 터 /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용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절비(殉節碑)

카페로 변신한 조양방직을 찾아가는 중, 중앙마트 옆에 서 있는 왕의 길 안내판을 보던 김여사 '소창체험관'을 봐야 한다며 강한 주장을 한다. 소창이 뭔지도 모르고 소창체험관(Sochang Fabric Experience Hall)을 찾는다. 약 170m 떨어진 거리여서 가까이 있다.

 

소창체험관 입구.

강화도는 1970년대까지 직물 산업이 번성한 고장이었다. 1933년 조양방직이 문을 연 이래, 평화직물과 심도직물, 이화직물 등 직물 공장이 들어섰다. 크고 작은 직물 공장이 60여 곳이고, 강화읍에만 직물 공장 직원이 4000명이 넘었다. 심도직물은 직원이 1200여 명이었다. 하지만 1970년 중·후반부터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대구로 중심이 옮겨 가면서 강화의 직물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금은 소규모 소창 공장 7여 곳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소창스템프 체험. 30분 단위로 무료로 소창 손수건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소창이 뭐냐 하면, 면사로 만든 강화 특산 면직물을 말한다. 면사는 목화로 자아낸 실을 평직으로 짠 원단으로 보드라운 재질과 수분 흡수성, 항균성 등이 뛰어니 속옷, 손수건, 배냇저고리, 이불보, 거즈 등 주로 피부에 맞닿는 직물로 활용하고 있다. 소창스템프 체험을 설명하는 젊은이 왈 '소창이 요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유해물질이 함유된 생리대 논란이 커지면서 친환경 섬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순면 생리대와 기저귀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란다. 김여사가 손수건, 행주 만든다고 동대문 시장에서 구해와 수를 놓고 있는 천이 소창이라서 관심을 가지는 구나 한다. 

15:00에 김여사가 신청해서 손수건 만드는 체험에 동참한다. 오래전 미술시간으로 돌아간 느낌. 순무, 인산, 강화 쌀밥, 진달래 등 스탬프에 잉크를 묻려 찍으면 나만의 손수건이 된다.

 

강화소창기념품 전시관

강화소창기념품 전시장 1층에는 고려시대 입었던 의상들을 직접 착용해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층에는 방직공장 사진 전시 및 소창 관련 영상 상영실이 마련돼 있어 과거 번성했던 강화군 직조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금 기념품은 판매되고 있지 않다.

 

소창기념정시관과 다도관 사이 공간.
다도관.

다도관 앞에서 차를 한 잔 할 수 있으려나 하고 지나는데 담당하는 사람이 코르나 상황이라 순무차는 시음할 수 업지만 들어와서 구경하란다. 들어서는 왼쪽으로 일견종정(一見鍾情)은 '첫눈에 반하다'는 뜻의 액자가 걸려 있다. 다기와 찻잔 덮게 등 옛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대로의 생활용품과 걸어 놓인 소창 제품을 보고 이쁘다를 연발하는 게 김여사를 보니 이 사자성어가 붙은 존재의 이유를 알겠다. 여기에 있는 것들을 소창체험장인 듯한 이 사람이 대부분 만든 작품이란다. 한옥 정취와 함께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반닫이가 예사롭지 않아서 보니까 연미정에 있던 보호수 느티나무가 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진 것을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이수자 양석종 씨가 제작한 것이라고. 크기는 95*53*83cm이다.

 

다도실 옆으로 작은 다도실이 하나더 있다. 염색한 소창들이 창문 가래게로 장식되어 있다.

간혹 소창이란 용어 대신 무명이나 무녕, 문영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 소청이라 불리기도 한단다. 소창은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을 이용해 만든 23수 면직물이다. 일회용 기저귀가 나오기 전에 사용한 천 기저귀가 소창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소창은 무슨 뜻일까? 소창의 뜻은 정확히 나와 있는 곳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강화의 직물, 소창」에 따르면 소창이 일본의 고쿠라오리(小倉織)에서 파생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소창보다 무명이라고 하면 더 좋을 듯한데...

 

소창전시관

깨끗하게 세척한 원사에 풀을 먹이고 사나흘 햇볕에 말린 뒤 옷감 짜기까지 공정이 10단계나 된다. 원사와 원사 풀기, 표백, 풀 입히기 등 과거 소창 제조공정을 그대로 재현해놓았고, 1890년대부터 시작해 1950년대까지 소창 제조에 쓰였던 옛 재봉틀과 기계식 직조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통 베틀을 짜는 아낙네도 있다.

 

직조 시연. 소창스템프 체험에 사용되는 소창이 만들어 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소창체험관은 1938년 건축된 한옥 건물과 옛 평화직물의 염색 공장을 구입 후 체험관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2018년 개관했다. '살아서 한 필, 죽어서 한 필'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사용되던 소창이 강화도의 화문석과 인삼에 비견되는 강화의 자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양방직  레트로 카페

 

전파를 타면서 강화에 인상적인 곳 중에 하나가 조양방직이다. 일제 때 잘 나가던 섬유공장 중 한 곳인데, 복잡한 자본구조와 화재 등으로 어려워져 1958년 문을 닫고 단무지 공장, 젓갈 공장 거쳐 얼마 전만 해도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것을 고미술을 전공하고 골동품 사업을 하던 이가 2017년 사들여서 카페이자 문화미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다고 해서 단순한 카페로 보면 안 되고, 세계에서 수집한 미술작품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 준한다.

소문은 들은지라 강화나들길 걸으며 지나칠 때 들어가 봐야지 하면서도 못 간 여기를 오늘에서야 김여사랑 구경하게 된다. 소창체험관에서 약 550m 거리에 있다.

 

조양방직 입구. 조양방직의 다른 이름은 신문리 미술관이다.

조양방직은 1933년 강화도 지주인 홍재묵·홍재용 형제가 국내 자본으로 설립한 강화 최초 인견 생산 공장이다. 조양방직이 생기면서 강화 직물 산업은 가내 수공업에서 기계화로 바뀌었고 강화도에 전기와 전화 시설이 들어왔으니,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10여 년 뒤 경영이 어려워지자 다른 사람에게 경영권이 넘어갔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명맥을 잇다가 1958년 개띠 해에 문을 닫았다.

 

입구의 화살표를 따라 들어간다. 오래된 버스가 옛날 그대로 모습으로 주차되어 있고, 건물로 들어가니 눈길이 방향을 잃는다. 회색 벽 가장자리와 중간에 탈곡기, 펑튀기, 서류함, 물지게와 물통, 기중기, 선거홍보 액자, 전기박스 등이 재멋대로 놓여 있는데도 그게 재자리인 듯 어색함이 없다. 

 

별관.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벽 안에 아기예수 탄생의 구유. 각각 다른 탁자에 모양 다른 의자, 어디를 찍어도 그림이 된다.

레트로, 뉴트로, 빈티지, 엔틱의 단어들이 사용되는데 차이가 뭔지 알아보자. 레트로는 옛날 문화가 다시 유행하는 현상 즉 복고를 의미하며 retro 영어 단어 뜻 그대로다. 뉴트로 혹은 영트로는 젊은 세대가 레트로를 새롭게 접목하여 즐기는 유행을 의미한다. 신세대들은 신비한 과거의 유행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즐기는 현상이다. 정식 단어는 아니고 retro에 new, young을 결합하여 탄생한 말이다.  빈티지(Vintage)는 낡고 오래된 것. 또는 그러한 느낌이 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빈티지는 오래된 기간을 지나도 광채를 잃지 않고 광채를 잃고 낡더라도 그 매력을 지닌 것을 일컫는다. 엔틱(antique)은 아주 오래된 귀중한 물건, 골동품을 의미한다. 빈티지 뜻은 어떤 분위기, 무드 자체에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만 엔틱 뜻은 오래된 고풍스러운 특정 식기, 집기, 가구 등에 사용하는 단어이다

 

건물 안팎을 걸으면 다양한 전시품,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오래 전의 전화부스, 놀이기구에 오르내리락 하던 말들, 팔 없는 비너스 상이 마당 가운데 있고 담벼락에는 게으른 황소가 울음 우는 듯, 잡동사니의 집합소가 여기구나 하다가 조화를 이루니 작품이 된다. 젊은이들의 하루 데이트 코스로는 그만이겠고 나이 든 사람들은 오래전 기억을 소환할 수 있어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보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되니까 적당히 시간 분배를 하자.

 

차와 베이커리를 주문하는 입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연휴여서인지 사람들이 북적된다. 아메리카노 7.0 고구마라떼 8.0과 몇 개 남지 않은 빵 중에 하나를 골랐다. 사람이 많아서 빵의 재고도 바닥이 보인다. 가격은 원두가 괜찮은 커피 5,6천 원인데 여기 꾸민 것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닌 것 같다. 

 

주문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고 주는 알람 되는 장치를 받아서 베이커리로 이동해 빵을 선택하고 내부로 들어간다. 사진으로 봤어도 넓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에 우선 놀란다. 기계가 올라져 있었던 것이 탁자가 된 듯 길이가 많이 길다. 중간에 건널 수가 없어 마주 앉으려면 한참을 돌아야 한다. 내부의 꾸밈도 예전에 직물공장이 아니라 소품공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우려는 기우였고, 앉을자리는 나오게 마련인 모양이다. 한참 두리번거리며 들어온 안쪽으로 단독 탁자 하나가 비어 있다.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도 있는데 복질 복이다. 

 

조양방직 직물공장이 리모델링을 거쳐 레트로 감성의 카페로 재탄생했다. 활용은 달라졌어도 이름은 처음과 같이 '조양방직'이다. 여기저기 갈라지고 떨어져 나간 허름한 회색빛 시멘트 건물과 천장의 목재 트러스 구조 역시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인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 소품은 이곳을 개조한 이용철 대표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골동품들이다.

 

영업시간은 평일 11:00~20:00, 휴일 11:00~21:00 입구에 시간 전에 들어 오지 말라는 사정조의 문구가 있다.

김여사 나인블럭 규모 정도로 생각했던 김여사 상상외의 규모와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에 한 번 와 볼만 한 곳이라고 엄지척한다. 차를 찾으러 간 공영주차장도 오늘은 공짜다. 횡재한 기분. 

김포CC 인근에 있는 강릉해변메밀막국수 집의 칼국수가 생각난다.